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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Nov 07. 2017

먼 옛날의 작은 서커스가 보고 싶다

여전히 한켠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 조각들

부모님은 예부터 문화생활과 가까우셨다. 병아리 모자를 쓴 아들의 손을 잡고 영화관, 미술관 등을 돌아다니셨는데 사실 개중 기억에 남는 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고결함과 감동을 모른 채 세상 배우기 바쁘던 어린이에게 그런 교양이 무슨 소용이었을까. 아이에겐 그에 맞는 문화수준이 요구 된다. 한없이 비싼 몸을 자랑하며 그 기세를 드러내는 것보다, 끝없이 몸을 낮추고 단 한 번의 손길이라도 내미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어느 날 토요일 저녁이었다. 새천년이 얼마 지나지 않았고, 그래서 아직 학교도 떼지 않은 때였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하던 나는, 보면 재밌을 거라는 어머니의 말만 믿고 아무 생각 없이 생글생글 웃다가 마침내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가 교차하는 어떤 대형천막에 다다랐다.


사진으로 설명하자면 이런 느낌. 출처 Depositphotos

나는 이 때 이후로 그 주변에 천막이 세워진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마 전국을 유랑하는 서커스단이었을 것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설치 되어 변변한 화장실 하나 없었으며, 나를 위한 자리에도 의자 대신 방석이 고작. 무대 또한 원형이었고, 단원들은 관객 코앞에서까지 특기를 발산하며 몇 번이나 내 간담을 서늘케 했다.


푹신한 좌석 속에서 직사각형 무대만 바라보다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간 부모님이 보여주셨던 어린이 연극은 모두 재기발랄한 대사와 연기로 점철 되었지만 가깝지는 않았다. 너는 너고, 나는 나였다. 배우는 배우고 관객은 관객이었다. 그 간극은 결국 추억이 되지 못 했다. 기억이 추억이 된 건, 무대의 주인공들이 내 앞을 왔다가며 온갖 묘기를 부릴 때, 그리고 온갖 불가능한 일을 해내면서도 환한 웃음을 유지하던 바로 그 때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서커스를 정밀하게 묘사하는데 재주가 없다. 이 이후로 서커스를 본 건 태양의 서커스가 내한한 2007년이 마지막이니까.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파란 천막의 서커스는 내게 친구였다. 광대란 무엇인가. 언제나 웃는 얼굴로 대중을 즐겁게 하는 귀한 존재다.

 

그 때 이후로 본 서커스는 '태양의 서커스 - 퀴담'이 전부다

마지막에는 커튼콜 비슷하게 모든 단원들이 나와 무대를 형형색색 수놓았는데, 그 광경은 유치찬란하면서도 아이들을 즐겁게 하기엔 더없이 좋기도 했다. 서커스복을 입은 여성 단원이 반경 1m 안으로 접근했을 땐 얼굴을 붉히기도 했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그랬다. 수없이 떨어지는 조명에 넋을 잃다가도 눈앞에 단원을 보며 화들짝 놀라고 와 하고 웃었다. 다시는 보지 못해 특별한 기억이다. 그 이후로 서커스는 급격히 사장 됐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때 묻은 어른에게는 유치하고 식상할 수도 있는 묘기들이다. 그러나 어린이에게는 그런 유치함과 가까움이 매력이었던 것 같다. 이 기억을 후대에게 대물림 하고 싶은데, 화려함이 아닌 친근함을 먼 훗날 내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의 서커스는 어디로 갔는가? 사람들은 커가며 웃음을 잃는다. 울지도 못 하니 웃어보려 해보지만 그걸로만 현실을 지탱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문화생활은 가볍기보다 웅장하다. 하나하나 비장해서 가깝지 못하다. 우리를 동심으로 돌릴 수 있는, 투박하게 웃음짓게 하는 가벼운 문화생활은 이제 없는가. 단 하루 만났지만 더 이상 볼 수 없는 나의 '친구들'이 그립다. '지금은 뭐하면서 살까?'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그 시절의 광대는 나를 친구로 만드는데 성공한 셈이다.


어른들이 봐도 입이 쩍 벌어지는 머니쇼보다, 동작 하나만으로 사람을 즐겁게 하는 광대가 보고 싶다. 우연찮게 서커스 영상을 보다가 끄적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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