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 관람기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최근 저는 모 콘텐츠 기업을 도와 현대자동차 연수원의 아카이브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작은 프로젝트를 하나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말을 이용해 겸사겸사 공부도 할 겸 머리도 식힐 겸 다녀왔습니다.
서울 강남의 도산대로 한복판에 있고요. 지금은 하남 스타필드와 고양에 몰링 형태의 더 큰 스튜디오가 만들어졌지만, 당시 모터스튜디오 서울은 꽤 유명했죠. 강남, 그것도 고급 외제차 전시장이 즐비한 학동 인근에 현대자동차가 과감히 진출한 것만으로도 큰 뉴스가 되었고, 이 사진도 꽤 유명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현대자동차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은 말 그대로 '애증'에 가까울 텐데요, 전 세계 TOP 5 완성차 업체로서의 자부심과 여러 가지 부정적 이슈로 인한 실망감과 배신감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점차 고급화를 지향하고 있는 현대차에게 여전히 존재하는 '값싼 국산차', '브랜드 가치 없는 기업', '판매에만 몰두하는 장사치'와 같은 몇몇 따끔한 지적은 여전히 현대차가 성취한 결실에 비해 브랜드 가치가 턱없이 모자람을 의미하는 것일 겁니다. 아울러 현대차가 여전히 고객의 마음을 사는 브랜드 활동에 조금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주문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현대 모터스튜디오에 가기 전에는 사실 큰 기대는 안 하고 갔습니다. 정말 일 때문에 간 거니까요.
그런데.
솔직한 제 감상평입니다.
하나하나 말씀을 드려볼게요.
제가 좋았던 포인트와 공간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곁들어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현대 모터스튜디오는 관람 목적으로 방문 시 두 시간 주차 무료입니다. 게다가 발레 파킹을 무료로 해줍니다.
두 시간 무료 주차 후엔 10분 당 1,000원 정도가 추가 부과됩니다. 둘러보면 알겠지만 두 시간 이상 있을 일은 잘 없으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강남 한 복판에 두 시간 주차 무료라니 이런 놀라운 혜택이 또 있을까요? (악용하지는 맙시다)
게다가 도움 주시는 분들은 매우 친절하게 주차를 도와주십니다. 주차 걱정을 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고민이 쉽게 해결되어 마음이 한층 가볍습니다.
처음 로비에 들어서자 크리스마스 그리팅용 배너와 트리가 보이는데요, 크리스마스는 이제 한국의 4대 명절쯤은 되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현대 茶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車와 茶의 동음이의어를 이용해서 뭔가 하는구나 싶은 촉이 오지만 그냥 '차 한잔 타 주겠지' 싶은 생각이라 큰 감흥은 없습니다. 나중에 좀 더 이야기하기로 하죠.
모터스튜디오 서울은 건물 한 채를 사무실과 전시장으로 사용합니다. 넓은 몰링 형태의 수평적 구조가 아니라 수직적 구조로 각 층마다 전시 콘셉트를 다르게 가져갈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현대 모터스튜디오 서울은 모든 층의 인테리어와 구조를 동일하게 가져가서 최대한 브랜드와 업종의 아이덴티티를 고수합니다. 각 층마다 전시 차량만 변경하고 모든 층의 구조와 인테리어가 메탈 중심입니다. 다소 심심해 보일 수는 있지만 중구난방이 되지 않는 점에서는 일관된 공간의 구획과 구성, 인테리어의 통일성은 분절된 층을 하나로 통합하는 효과를 주는 것 같습니다. 반면, 각 층의 전시가 거의 동일하다 보니 심심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단점이었고요.
모든 층의 구성과 기획이 동일하다 보니 디테일한 부분에서 고객을 배려하거나 재미를 느끼게 하는 구성 요소들을 많이 비치해 두었습니다. 우선 강남이라는 지역적 특색과 주로 방문하는 3040대 이상의 가족단위 고객을 고려한 다양한 배려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끔 자연스러운 관람과 시승이 가능하도록 디테일하게 힘을 쏟은 기운이 역력합니다. 그리고 직원들은 항상 웃는 모습으로 고객의 지근거리에서 무심한 듯 섬세하게 지켜본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약 5미터 인근까지 접근하지 않습니다만, '도움이 필요한데' 싶을 때에는 어김없이 다가옵니다.
작은 로컬 공간의 고객 배려보다는 전형적이지만 세련된 느낌입니다. 마스터의 호불호에 의한 큐레이팅이나 오모테나시보다는 철저히 지역과 타깃을 분석하고 대기업의 고객 응대 시스템이 접목된 형태입니다. 건조한데 견고한 느낌이랄까요. 가끔은 그런 것이 더 편할 때가 있습니다.
이 공간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현대자동차의 구매는 목표일 것입니다.
이 공간의 목적은 그 목표에 다다르게 하기 위한 수많은 좋은 경험을 심어주는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을 점유하라 - 마음을 점유하라 - 시간을 점유하라
점차 마케팅은 조금 더 인간 친화적으로 디테일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주말을 가족과 보내기 위해 온 고객들을 대상으로 모터스튜디오 인근에 있는 극장, 레스토랑, 복합 문화공간과의 이종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해서는 시간을 최대한 점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다양한 콘텐츠가 더더욱 필요할 텐데요, 고객에게 알맞은 정보의 제공, 쉴 거리의 제공, 그리고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는 데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섬세한 노력들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제네시스는 현대자동차의 독립된 럭셔리 브랜드입니다.
비싼 가격만큼이나 자동차 내외부를 보면 일반 현대차와는 다른 고급스러운 맵시가 눈에 띄는데요
내부 공간의 구성 역시 일관된 톤 앤 매너 안에서 최대한 고급감을 뽑아냅니다. 메탈의 차갑지만 믿음직스러운 느낌과 우드 계열의 따뜻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적절히 배열합니다. 저는 이 밸런스가 참 보기 좋았습니다.
브랜드의 전통과 이상향을 볼 수 있도록 구성해 둔 여러 오브제들도 매우 인상적이었고요.
다만, 아쉬운 것은 한 공간 내에 제네시스 관이 위치한 것입니다. 아직까지 제네시스는 현대차의 후광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여긴 것일까요, 아니면 아직까지 제네시스 별도 독립 전시관을 꾸미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현대차와 제네시스를 분리하는 (토요타 - 렉서스) 정책을 위해서는 공간의 분리가 시급해 보입니다.
로비에서 봤던 배너의 실체입니다.
2층 라이브러리 한 코너에는 현대 자동차와 국내 티 블렌딩 기업과의 컬래버레이션 코너가 기획되어 있었는데요, 차, 탄다, tea의 동음이의의 요소가 매우 절묘하게 잘 조합된 형태였습니다. 저도 광고를 했던 입장에서 Relavance (연관성)은 고객 설득과 동화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인데요. 말장난처럼 여겨지거나 억지스러운 연결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훌륭한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운전 중 화가 나는 상황에서 마음 진정에 유용한 스위티(애플파이 티) △졸음운전 예방에 도움을 주는 상쾌한 느낌의 세이프티(페퍼민트 루이보스 블렌디드 티) △장거리 운전으로 피로한 기분일 때 마실 수 있는 액티비티(캐모마일 레몬밤 블렌디드 티)로 구성됐다.
직접 내린 차를 마실 수도 있고, 찻 잎을 조합하여 차 내 방향제를 만들어 가져 가 볼 수도 있습니다. 티백을 나눠주는 사은품도 있었고요. 놀랍지 않나요?
궁금해서 몇 가지 내용을 구체적으로 여쭤봤더니 현장에 계신 분께서 매우 적절하고 친절하고 자세하게 응대해 주셔서 궁금증도 많이 풀렸습니다. 현대차 직원 분은 아니시고 티 블렌드 전문가라고 하시더군요.
각자의 전문적 영역에서 합심하여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몇몇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공간의 협소함으로 더 많은 차량을 구경하기 어려웠고, 너무 일관된 기획과 구성으로 점차 시간을 보낼수록 약간 지루하다는 느낌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고, 무엇보다 자동차에 관심을 갖고 온 사람이 아닌 일반 관람객을 위한 콘텐츠가 조금 더 풍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또한 라이브러리에 있는 자료(책)들은 많이 개선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현대적으로 구성해 놓은 모터스튜디오는 전반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현대차에 대한 그동안 '투박하다, 남성적이다, 저렴하다'와 같은 인식이 조금은 바뀐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공간에 대한 해석이나 구성, 그리고 적절한 소규모 브랜드와의 협업도 꽤 인상 깊었고요. 많은 공부가 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