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 (2)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남들이 보기에 좋은 글이 좋은 글일까, 내가 스스로 만족하는 글이 좋은 글일까.
그 두 개가 양립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로 포괄할 때 좋은 글이라는 답은 이미 잘 알고 있으니 우문현답을 스스로 하는 것이겠지.
세상에 문재(文才)가 넘치는 사람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내게는 일종의 '벽'이 생겼는데,
그것은 잘 알지 못하면 아예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다.
어쩌면 자존감과도 연결되는 지점일지 모르겠다.
내가 가진 재능과 기반을 되짚어 보았을 때 일종의 도그마가 형성된 것인데
1. 나는 이 사회에 내 목소리를 낼 만한 '주장'을 가지고 있는가
2. 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명확히 댈 수 있는가.
3. 그 '근거'가 과학적으로나 학문적으로 틀림이 없이 입증된 '사실'이거나 '사실'에 가까운가.
4.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나 학문의 분야를 계속 연구하여 그 깊이나 전문성이 더욱 두터워졌는가.
5. 나는 그런 '주장'을 할 만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가.
이 정도가 되니 좀처럼 어떠한 것도 이야기하기가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도그마 속에서 허우적거렸던 이유는 사실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는 글을 잘 써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 평소의 생각이나 경험의 사유가 '글'이라는 결과물로 나왔을 때,
누군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내 글을 통해 나에 대해 인지하고 내 글에 대해 영감을 얻고 좋은 정보와 지식을 얻었고, 그것에 깊이 감응하여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마음. 결국 '욕심'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결국 내가 가지고 있고 내가 성취해 온 것에 대해 매우 보잘것없다고 생각하게 하였고 내 글에 대해 많은 반박과 오류를 지적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압도하게 된 것이었다.
꼭 '글'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무형의 생각과 이상이 글이나 목소리, 몸동작을 포함한 텍스트와 영상 등의 매개체로 매체를 통해 나타나는, 그러니까 그것은 책이든 팟캐스트든 유튜브든 뭐든 세상에 드러내는 것 자체에 대한 포비아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어떠한 강연을 나가게 되면서 그 생각은 조금씩 허물어져가기 시작했는데 내가 가진 보잘것없는 작은 지식과 경험,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의 가장 기초적인 어떠한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몹시 간절하고 꼭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이었다.
무작정 높은 곳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도 알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것을 하나씩 전파하자
소수의 스페셜리스트보다는 다수를 위한 제너럴리스트가 되자는 생각. 그리고 내가 전하는 것이 그렇게 대단하고 놀랍고 새로운 것이 아님에도 그것을 듣고 조금씩 변화하고자 노력하고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그 수강자 분들을 보면서 나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과거 내가 쓴 글, 내가 한 말에 대해 좋아하던 한 줌의 반응들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놓쳤을까.
아무튼, 위에서 보여준 6개의 뾰족한 필수요소는 잊기로 했다. 조금은 덜 뾰족하고 뭉뚝하면 어때.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내가 경험한 것으로 더욱 성실하게 하나씩 하나씩.
그래서 뾰족한 것은 좀 안으로 들어오더라도, 전체적인 볼륨이 확장되어 통통해질 수 있도록.
한 번에 확실히 긋지는 못하더라도 여러 번의 시도와 도전을 통해 덧씌워지고 마침내 모양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을 만들자.
그래서 앞으로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는 이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브런치를 통해 쓸 글들은 팩트 기반의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것보다는 내가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소재와 관찰의 결과, 경험 등을 나누는 글이 될 것이다.
내가 공부하고 해온 일에 대한 나름의 경험과 자부심을 토대로 모두를 만족시키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지식의 시작이 되고 길라잡이가 되는 그런 글을 쓸 것이다.
용기를 가지고 둥글게 둥글게 앞으로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