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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웅주 Sep 02. 2018

보편적 취미의 회복을 위하여

1막.

이건 오래된 이야기다.


연초마다 새학기가 되면 작성하던 생활기록부의 양식은 초-중-고교를 지나서도 지독히 변함 없었다. 갈수록 머리가 굵어지면서 부모님 학력과 직업, 취미 / 특기란을 마주할 때마다 더욱 곤혹스러웠다.


취미란 단어를 입 밖으로 소리내 말한 마지막이 언제인가 가만히 되돌아 보니 작년 한 소개팅 자리였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 소개팅이다.) 


잠깐의 침묵이 무거웠던 시간, 딱히 궁금하지 않았지만 "취미는 혹시....?" 

미처 문장을 마무리 짓기도 어려운 어색함과 민망함. 상대의 취미를 묻는다는 것은 '저 그쪽에 사실 궁금한 게 별로 없어요'의 고백에 다름 아니니까. 내가 그쪽의 취미를 안다 한들 그 다음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든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노력에 취미는 늘 필수조건으로 포함되는 희생양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다 큰 성인이 특기를 묻는 건 그건 정말 아니니까.


취미는 어느 순간 나의 삶에서 사라졌다. 나의 입에서 사라졌고, 나의 생각과 인식에서 사라졌고, 나의 궁금함에서도 사라졌다.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생활기록부에 적어야만 했던 취미는 늘 독서와 농구였지만 그래도 그때 까지는 내 삶에 취미란 온전히 존재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농구의 자리에 음악감상이나 영화감상 등의 일반적인 취미가 대체한 후에도, 그러나 나의 취미나 당신의 취미나 단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아니 어쩌면 더 이상 내게 누구도 취미를 묻지 않은 이후로 나에게서 취미는 멀리 떠나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내가 그 동안 취미를 너무 박대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내가 내 삶 자체를 무료하게 너무 방치하거나 나태하게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남들의 번듯했던 수 많은 멋지고 튀는 취미들 (예를 들면 - 그 학생 때에는 전자라디오 조립, 프라모델 조립, 우표수집, 곤충채집 등이 멋있어 보였고 나중에 나이가 더 들어 고등학생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해외여행, 신발수집 등이 폼나 보였다. 종종 수학문제 풀기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취미를 가진 너드 들도 있었다.)을 동경하며 살아왔을 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이런거라도... 이미지 무단펌

사는 게 바빴다. 주어진 시간표대로 살아가기도 벅찼고 그렇게 살면 취미 따윈 나중에 돈과 여유가 생기면 즐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가끔 친구들과 종종 만나 술이나 마시고 시시껄렁한 사랑과 연애와 정치와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매번 술잔과 함께 술술 넘어가버렸다. 비교적 전문직인 광고를 했지만 그건 나의 취미가 발현되거나 나의 취미로 인해 선택했던 직업은 아니었다.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고 그렇다고 세밀하거나 섬세하지 않고 손재주도 없고 끈기도 모자르니 나만의 독특한 취미가 생겨날 리 없었던거겠지.


수제맥주 제조, 스포츠 댄스, 여름에는 서핑-겨울에는 보드, 전 세계 포인트를 돌아다니며 다이빙, 일러스트나 만화 그리기, 글쓰기, 가죽이나 목공예, 전자제품 수집 등등. 세상에 이렇게나 좋은 취미가 많은데! 심지어 이런 취미는 삶을 정리한 이력서와 자소서에서 한 페이지 정도는, 면접 자리에서 30분은 너끈히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한 소재이기도 하고, 나의 진취성과 모험심과 재능을 뽐내기에도 매우 적절한 아이템일텐데 왜 난 아무것도 갖지 못했나 후회가 몰려왔다.

결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고민만 열심히 했다. 이미지 무단 펌

취미란 나에게 끊임 없는 투쟁을 요구하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과 같은 존재였다.


2막.

이건 최근의 이야기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35년의 삶은 1막이었고, 2막은 최근 1년의 이야기이자 미래의 다짐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다 보니까 좋은 것은 뭐든 극단적이지 않아진다는 것이고, 나쁜 것은 점점 자기합리화에 능해진다는 것이다.


근래 나는 인생을 살아가고 바라보는 관점을 많이 바꾸고 있는 중이다. 꽤 치열하게 살아오며 지금의 내 모습을 바라보니 남은 것은 부실한 건강, 밥 빨리 먹는 습관, 그리고 온갖 나쁜 것으로 중독 되어버린 몸 밖에 없었다. 이제는 돈이 없지는 않은데 정말 하고 싶은 것에 잘 쓰지는 못했던 것 같다. 늘 치열하게 경쟁하고 버텨내야 하는 이 곳에서 건강과 기억력이 한창 때 같지 않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이제는 마흔이 낼 모레다.


최근까지 나의 삶이 컴플렉스와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 삶이었다면 앞으로의 삶은 점점 더 맑고 담백해 질 것이라 생각한다.


사전에 나와 있는 취미의 개념을 찾아 보았다.

1)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2)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3)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4) 재미로 즐겨하는 일


내 삶에서 취미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고민했다. (아래 그림 참고)


유지의 관점)

내 삶에 있어 밥벌이란 지긋지긋하게나마 계속 가져가야 하는 것이라면, 그 순간을 벗어나 잠시나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꼭 특출난 것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보다는 보통의 사람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꿈꾸면서 나에게 있어 모든 것은 보편성의 기준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꼭 맛있는 음식, 비싼 집, 좋은 차, 모두가 부러워할 경제력, 미모의 여자친구가 아니더라도 나의 삶을 풍족하게 채워줄 일상의 것들.


그 일상의 보편성이 나의 앞으로 인생 2막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취미는 그 과정에서 나의 삶을 보편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연결시켜주는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하찮게 보일지라도.


모멘텀의 관점)

위대한 나만의 이론. 이건 무단 펌 아니고 내가 직접 그렸음.

취미는 취향에서 기인한다. 취향은 ‘어떠한 것을 하고 싶어하고 선호하는 성향이나 마음’이고, 취미는 그것의 ‘실질적인 행위나 결과물’을 상징한다.


모두가 제각각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 시대. 취향은 존중되어야 하고 취미는 장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고 나의 관심과 취향도 변한다. 그리고 나의 일도 인생도 변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꾼, 바꾸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의 위대한 결실은 보편적 취미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보편적 취미를 다시 회복하고자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나와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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