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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Mar 27. 2020

외로운 사람끼리 먹었던 밥

그녀 나이는 올해 96세. 30대 초반에 막둥이 뱃속에 남기고 떠나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오 남매 먹이고 키우느라 재혼할 생각도 못 하고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제는 혼자가 더 편하다 한다. 행상에 남의 집 밭일에 안 해본 것 없이 살던 중 부산에서 밀양으로 채소 팔고 오던 늦은 밤, 철길 위에서 누군가 떨어트리고 간 지폐를 주워 장사 밑천 삼아 성공했단 말을 내 나이 사십 먹도록 두고두고 들었더랬다. 옛날 TV프로그램 “똑 사세요” 육남매가 절로 생각이 나는 그녀의 인생 구절구절들은 매번 들어도 그렇게 재미나고 또 슬프고 안쓰럽다. 자식들은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에이~ 또 또.” 하며 말을 끊어버리지만 나는 그녀와 만나면 밤새 이야기하고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맞지~ 맞아하면서 맞장구를 쳐준다. 그럴 때면 “아이구 니랑 이야기하면 내 속이 확 풀린다 아이가” 하면서 좋아한다.

     

1월 설에 그녀를 만나고 와서 아이 셋 키우랴 일하랴 바쁘게 보내고 있던 중 코로나19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 혼자 있는 그녀가 걱정되어 전화하면 “나는 이만 살아도 되니 부디 니랑 배서방은 천세만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된데이” 하며 오히려 우리들을 걱정하며 울먹였다. 그러면 나는 “천세만세 살라믄 돈 많아야 되겠네~ 열심히 일해야 되겠다” 하며 괜스레 농담을 한다. 대구에서 본격적으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그녀의 걱정은 날로 더해져 매일같이 전화를 한다. “내 돈 보내 줄 테니 아끼지 말고 몸에 좋은 거 많이 묵고 지발 일하지 말고 집에만 있그라이” 그러면 나는 “참나 구십 먹은 할매가 돈도 못 벌면서 맨날 돈이 어디서 나오노? 우리는 컴퓨터로 하는 일이라(쇼핑몰을 이렇게 설명함) 사무실밖에 아무 때도 안 나가고 일하니까 걱정 말래이” 하며 그녀를 달래본다. 하지만 뉴스 보니까 걸리면 다 죽는다 카더라고(아니라 설명해도 자꾸만 잊으시고 ㅜㅜ) 또 걱정에 걱정이 더해져 매일같이 전화해서 확인하고 또 한다.

     

그녀는 지금까지 살면서 남편과 두 명의 자식을 잃었고 사위도 두 명 잃고 동생과 오라버니도 잃었다. 그리고 그 외 친척들 친구들 많이도 먼저 보냈다. 그러는 중에 자신은 이리 오래도록 살고 있다고 매일같이 자는 숨에 죽으면 좋겠다고 기도하지만 막상 나와 이야기할 때는 내가 수십억 부자가 되는 것도 보고 싶고 증손자 증손녀들 시집가는 것도 보고 싶어 한다. 이리도 좋아지는 세상이 신기하고 자손에 자손이 커가는 것도 마냥 좋고 바라보고 싶은 그 마음이 나이가 들수록 더 간절해지는 것일까? 삶에 대한 그녀의 의지는 내가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은 부분이다. 누구보다 철저히 자신을 관리하고 자신의 자손들을 위해 늘 기도하는 그녀의 삶은 내가 살아가고픈 삶이다.

     

십 원 하나 아끼는 그녀는 계모임이나 누군가의 잔치 이외 절대 외식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등 때가 되면 둘이서 함께 놀이하듯 만들었다. 아직도 내 후각에 깊이 새겨져  있는 노오란 메주콩 삶는 냄새. 푹 삶긴 콩을 한 그릇 떠 달라고 해서 후 후 불어 먹던 그 맛 입안에 퍼지는 고소함이 문득문득 그립다. 면포에 가득 담은 콩을 버선 신고 둘이 손 마주 잡고 꾹꾹 밟던 그날의 기분 좋음이 내 삶에 늘 베여있어 음식에 대한 소중함, 음식을 만들 때의 기쁨과 누군가에게 대접할 때의 만족감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참 위대한 유산을 받은 셈이다.

     

자식들 다 키워놓고 살림도 크게 일구어 놓고 보니 남은 건 여기저기 아픈 몸과 헛헛한 마음뿐 곁에서 따뜻하게 정을 나눌 누군가도 없던 그녀는 친손녀인 나를 백일도 전에 데려와 딸처럼 친구처럼 키우고 의지하며 그렇게도 행복한 날들이었다고 한다. 매일 혼자 먹던 밥상에 작은 내가 함께 앉아 조잘거리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조금 커서는 학교에서 받은 간식을 먹지도 않고 가져와 “할매 요거 새로 나온 빵이라 같이 묵자” 하던 그 따뜻했던 사랑이 참 고맙고 눈물 나더라 한다. 크면서 엄마 사랑도 그립던 나는 그래도 할매를 배신할 수는 없다는 두 가지 마음을 오가며 나름대로 외로웠고 그걸 알면서도 보낼 수 없던 할매도 참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 그렇게 우리 둘은 여러 가지 마음으로 부둥켜안고 지금까지 서로를 사랑하고 안쓰러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녀가 나에게 해 주었던 많은 음식들을 다 익히진 못했지만 그 음식을 만들던 정성과 사랑은 분명히 기억하고 내 안에 있기에 나의 남편과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전달해 본다. 매일 저녁 가족을 위해 밥을 하면서 나는 몇 번이나 그녀를 위해 상을 차려 보았는가 생각해보니 울컥 눈물이 났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 해도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특별할 것 없는 집 밥. 겨우내 집 마당에서 말린 시레기 넣은 된장찌개와 몸이 약했던 나를 위해 장날이면 꼭 가서 신선한 선지를 사다와 끓이던 소고기 선짓국, 자연산 미꾸라지를 사다 울 아버지 오실 때 내어놓던 추어탕.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나 둘 떠오른다. 그녀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들. 그 모든 음식들도 그녀가 좋아했는지 그녀가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하던 음식들이었는지 둘이 일치하는지 알 수가 없으나 자신이 먹고 싶어 이리 하였다는 말은 딱히 듣지 못했으니 이제라도 뭘 좋아하는지 물어야겠다. 그리고 그 음식들을 배우고 또 대접해야겠다.

     

“샘한테 잘 어울리는 책이야” 하며 건네받은 책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는 정말 나에게 그녀와의 추억을 꺼내어 되새겨보게 하는 나에게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음식 하나하나의 사연들과 그때 그 음식과 함께했던 주인공의 추억들을 읽어 나가며 나에게 베여있는 고맙고 따뜻한 그녀의 향기가 내 몸 내 영혼 구석구석에서 느껴졌다. 나쁜 바이러스가 창궐해 혼란스러운 지금이지만 아스팔트 조그만 틈에서도 꽃들은 피어난다. 그 강인한 생명력이 담긴 밝은 음식을 그녀에게 만들어 대접하고 싶다. 어서 빨리 이 시기가 지나가고 외로운 우리들이 다시 만나 따뜻한 집 밥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조금씩 속이 썩은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먹는 것이 배추적이었다. 날것일 땐 달았던 배추도 밀가루를 묻혀 구워놓으면 밍밍하고 싱거워졌다. 생속을 가진 사람은 배추적의 맛을 몰랐다. 배추적을 입에 넣어 “에이 뭔 맛이 이래? 싱겁고 물맛만 나네!”하면 자기 속이 생속이라는 고백이었다. 곱게 자란 처녀들이 그랬고 남자들도 대개는 그랬다. 외로움에 사무쳐봐야 안다, 배추적 깊은 맛을.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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