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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Apr 01. 2020

25년생 최외금

80년생 문선주가 듣고 쓰다.

니들이 인생 맛을 아나?

천지 것 다 묵어도 나이 묵고는 못 살것는데 니들은 다 맛본 양 내 앞에서 떠든다. 괜찮다 괜찮다 어린애 돌보듯 눈 가리고 아웅해도 소용없다. 나는 안다. 이제 곧 끝이라는 거를.

     

오빠 학교 가는 뒷모습 쳐다만 봐도 싸리 빗자루로 울 엄마한테 오지게 두드려 맞고, 서울 유학 갔던 동네 오빠가 야학을 열어 한글 알려주다 서울 가실 때, 한글을 다 못 배워 원통해서 얼매나 울었던지. 할부지 밥상에 올랐다 내려온 생선대가리 맛나게 홈쳐먹고 엄마한테 실컷 맞고 곳간에 갇혔을 때, 맞은 데는 쓰라려도 밀린 잠 늘어지게 잘 수 있어 좋았네.

     

아이고 언젠지도 모르것다. 중매쟁이 왔다 가더니 결혼하라 해서 결혼했는데 시댁식구 눈치 보니 엄마아래 있을 때가 그립더라. 그래도 남편은 좋아서 악착같이 발버둥 치며 벌어봐도 애가 넷에 살림은 맨날 늘지를 안던데, 친정아부지한테 쌀 얻으러 갔다가 울 엄마 고약하게 ‘이 년이 친정 재산 야금야금 빼먹는다’고 한마디 한 것이 어찌나 못 박히던지 그길로 다시는 친정 안 갔다. 울 아부지 돌아가시던 날, 날 찾으며 눈도 못 감으신다 하여 몇 년 만에 친정 가니 이미 돌아가시고 그 한이 아직 남아 맴이 찌그러져 펴지지가 않는다.

     

밀양에서 부산까지 걸어걸어 돈 되는 거는 뭣이든지 가져와서 팔았는데 내가 또 뭣이든가 하면 잘 돼가지고 돈이 벌리는데 재미나드라 돈 버는게. 그라다 그날도 물건하고 캄캄할 때 집으로 돌아오는데 앞에 가는 우리 올케는 걸음이 빨라 못 봤는가, 땅에 돈이 주루룩 흘러 있는 게 아이가? 남편이 ‘만날 니는 땅만 보고 그래 다니노? 고개 쫌 들고 댕기라이~’잔소리해도 사는 게 뭐이 그리 쨍쨍해가 고개 쳐들고 댕기노. 나도 노란 해바라기마냥 꽃같이 살랑살랑 고개 들고 아나 키우고 안 싶었겄나. 들라캐도 들 힘이 없어서 마냥 숙이고 댕기던 내가 그날 뭔 복인지 만져 보도 못한 큰돈을 길에서 줐었다 아이가.

     

그 돈 갖고 땅을 쪼매 사가지고 배추도 심고 파도 심고 뽑아다 부산에 식당 많은데 가서 파는데 좋다고 가져가자 말자 그대로 다 팔고 오고 그 돈으로 또 땅 사고 농사짓고, 아이고 돈 들어오는데 일하는데 재미가 나드라 재미가. 큰 딸아가 밑에 동생들 뒷바라지하고 다 키우고 나는 돈 번다고 암것도 몬했다 가들한테. 그것도 생각하면 내 속이 시커멓다.

     

여편네가 돈 번다고 그래 설치면 안 되는기라. 아무것도 몬한다 카고 남편한테 목을 맸어야 되는데 내 참 바보메로 내가 다 했다 아이가. 그라니까 남편이라는 사람은 허구헛날 노름방 가서 버는 돈 다 써뿌고 술이나 묵고, 내 팔자가 와 이렇노 카다가 오늘은 니 죽고 내 죽자 칼라고 노름방 가서 판을 확 엎어뿌고 그 작자를 델꼬 오는데 그 날이 내 남편 잡은 날이 될줄 난들 알았것나. 화가나가 씩씩 거리고 앞서 오는데 뒤 돌아 보이 이미 황천 가싰드라.

     

새끼 넷에 뱃속에 새끼 하나 더 있는데 우째 따라 죽겄노. 정신없이 살았다. 팔자가 드럽니 남편 잡아 묵은 년이라고 수군 거리도 그때부터는 고개 쳐들고 댕깄다. 즈그들이 내 새끼들 살릴끼가? 귀막고 눈감고 살았다. 생때같은 막둥이 공부 잘하던 그놈, 꽃도 못 피고 열아홉에 갈 때도 나는 살았고 고생만 하다 일찍 간 큰 딸년 매일같이 생각나도 살았다. 와 사노? 니 뭔데 그래 질기게 사노? 그카 거들랑 니도 이 나이 묵도록 살아 봐라, 더 살고 싶고 더 보고 싶고 끝이 없다. 그래 그래 살고싶다.

     

살라꼬, 눕고 싶어도 하루에 꼬박 3시간은 운동하고 살찌믄 인공 다리 무리 갈까 봐서 하루에 두 끼만 묵고, 스트레스 받아가 고혈압 올라갈까봐서 불같은 승질머리 내려놓고 좋은 것만 생각할라고 한다. 근데 내 죽을 때가 다 돼가는가 수십 년 성에 안차던 며느리가 인자 와 그리 좋노. 안 오믄 보고 싶고 그기 해주는 밥도 제일 맛나고. 하기는 내 생애 젤로 꿈같던 때가 우리 선주 안았을 때 아이가. 그래 반대했는데 덜컥 손녀 안고 보이 차마 못 살게는 몬하것드라. 그 이쁜 거를 젖도 안 떼고 델꼬 와갔고 내 빈젖 물리고 그래 금이야 옥이야 키우매 참 이기 행복이구나 싶드라. 돈 번다고 내 새끼는 어째 크는지 쳐다볼새도 없이 세월 갔는데 고거 키울 때는 가는 시간 붙잡고 싶데. 그런 거를 낳아줬으니 고맙다 이 말을 자주 했어야 했는데 인자는 미안해서 말이 안 나온다. 지도 유복자로 피붙이 하나 없고 하나 있는 친정엄마도 고생시키다 돌아가싰는데 마음 한 곳 붙일 때도 없는 거를 와 그리 구박하고 미워했는지 내가 인간이 덜 되가 안카나. 내 새끼 귀하믄 남의 새끼도 귀한 거를 와 인자 이 나이에 깨닫노.

     

미안테이. 미안테이. 고맙데이. 고맙데이.

내 쪼매만 더 살다 간란다. 우리 선주 팔자 확 피가 떵떵거리고 사는것도 보고싶고, 밤톨같은 선주 새끼들 고등학교, 중학교 드갈 때 교복도 사주고 싶고, 선주애비 안 아프고 명줄 질게 사는것도 보고싶고 내 가믄 선주애비 니가 헌 짚신 버리듯이 버릴까 봐 걱정도 되고 세상 신기한 것도 더 보고싶고 더 맛보고 싶다.      

무신일이 생기도 죽고 살고할 일은 아니드라. 살아지드라. 또 다른 곳에서 내가 살 이유가 생기드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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