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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Apr 03. 2020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2019년 7월 20일에 씀

삶은 마치 회전목마 타기 같다.

천진난만한 아이 때는 끊임없이 타고 또 타고, 그저 재미있기만 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팍팍한 생활 중 어쩌다 들린 놀이동산에서 잠시나마 어린 시절을 추억하려고 타본다. 백발성성한 늙은이가 되어서는 감히 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 없이 그저 삶이 즐거운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삶을 살아나가는 동시에 죽음에 대한 걱정, 두려움, 막막함이 생기는 것 같다.


남들보다는 조금 더 빠른 시기에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때로는 동경하였다. 아버지의 결혼을 무척이나 반대하던 친할머니는 어머니가 나를 낳은 후 그제야 며느리로 인정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나와의 첫 대면에서 정말 숨길 수 없어 ‘진짜 못생겼다고’ 한마디 하셨는데 어머니는 그때 많이 서운하셨단다. 나도 어린 시절 그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서운했다. 그 못난 아이가 나의 친할머니 에게는 마치 자신이 배 아파 낳은 막둥이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고 하셨고 그 감정이 지나쳐 내가 돌쟁이가 되던 무렵 자신이 키우겠다고 반강제로 데려오셨다. 이때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때 할머니의 나이는 오십 중반이었는데 결코 그 나이 또래로 보이지는 않아서 나를 업고 나가면 마치 늦둥이처럼 보이기도 하였고 굳이 사정을 모르는 남들에게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 후로도 그녀는 몇 차례 수술로 아흔이 넘은 지금도 함께 나가면 나는 여전히 늦둥이이고 그 사실에 매우 기뻐했다.

    

한 동네에 살았지만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아버지 어머니와 남동생 둘은 다른 집에서 살았다. 물론 여행이나 각종 행사에는 부모님과 함께 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나 부모님 그늘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일들로 부모님이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을 때, 그때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때였다. 나는 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렇게 그녀를 떠났다. 반반인 내 마음이 너무 울렁거렸다. 그렇게 내 나이 열다섯에 할머니와 헤어져 그리던 부모님과 동생들과의 삶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마치 낯선 이방인처럼, 물과 기름처럼 둥둥 떠있었고 항상 외로웠으며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 자주 학교에서 조퇴하고 기차를 타고 그녀에게로 갔다. 그때마다 우리 둘은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듯 서로 끌어안고 한동안 펑펑 울었다.

     

그렇게 섞이지 않은 채 나의 우울한 유년시절이 흘러갔고 내 또래의 친구들보다 좀 더 빨리 가정을 꾸리고 이제는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아직도 나는 나의 가족(부모님과 남동생들)과 완벽히 섞이지 못하고 있다. 언제였던가 일곱여덟 살 즈음 할머니가 잠시 여행을 가서 그날은 부모님 집에 있게 되었는데 남동생이 ‘왜 우리 집에 와서 밥 먹는데? 누나 집으로 가야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말도 않고 뛰쳐나와 이곳저곳 울며 헤매다 부모님에게 발견되어 다시 집으로 갔는데 아직도 그때의 감정이 생각나 울컥하는 때가 있다.

생각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것처럼.

   

나는 언제나 부모님과 동생들과의 삶이 그리웠으나 결국 섞이지 못하고 늘 할머니를 그리워했으며 돌아갈 곳은 그녀의 품 밖에 없다 생각하고 그녀가 늙지 않기를,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맞아 주기를 기도했다. 젊은 날 다섯 아이와 함께 과부가 된 그녀가 밤낮없이 일하여 얻은 육신의 병으로 고통받을 때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다리를 주무르고 그때마다 나는 어리니까 내가 대신 아프면 나중에 커서 수술하면 좋은데, 제발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밤마다 간절히 기도했으며 그 기도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일찍 가정을 꾸리며 나의 분리불안 증세는 밤마다 나를 누르는 악몽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남편이 흔들어 깨우면 그게 꿈이었다는 걸 한동안 눈물범벅이 되어 어깨를 들썩이다 차츰 가라앉았지만 할머니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고 나서야 꿈에서 깬듯했다. 나에게 할머니의 수명은 백 살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조금씩 더하고 있다. ‘일찍만 발견하면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데 그러니까 조금만 아프거나 해도 바로 병원 가야 돼‘ 고장 난 카세트테이프처럼 매일같이 반복해서 그녀에게 들려준 덕분인지 이제는 119 구급 대원들과도 꽤 친해서 할머니가 잘 계신지 수시로 방문해 확인도 해준단다.


다행이다. 정확히 올해 아흔넷이 된 그녀는 가족들 생일을 항상 먼저 살피고 미리 용돈도 입금해 주며 삶에 대한 의지가 굉장히 강하다. 올해 예순여덟인 나의 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버림받을까 너무 걱정되어 아직도 용돈을 쪼개어 아버지 앞으로 적금을 넣는다. 그래서 자신은 더 오래 살아야 된다 하며 매일같이 두어 시간 운동을 하고 저녁 여섯 시 이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주일에는 성당에 가서 자식들 잘 되라고 기도를 한다. 그 강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나의 원동력이며 나를 밝혀주는 빛이다.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건 너무 강한 그 빛 때문이다. 그 빛을 잃으면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나를 잃어버릴 것 같고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덮을 것만 같다. 한때는 나도 그녀와 함께 죽음으로 빠질까 수없이 고민한 적도 있다.  

   

며칠 전 할머니는 종합검진을 받으셨다. 의사는 따로 어머니를 불러 이제 심장의 수명이 다해가며 수술이나 약으로는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고 나에게 연락하셨다. 어머니는 우셨는데 왜 우신 걸까?

그토록 구박하고 오늘날까지도 별로 좋은 말을 안 해주는 시어머니인데 말이다. 그리고 또 나는 왜 울지 않았나?  언제부턴가 나는 꼭 할머니가 내 나이 서른아홉 되는 해에 돌아가실 것 같았다. 그 해가 지금이다. 그냥 막연히 드는 생각이었는지 애써 그렇게 맞춘 건지 알 수 없으나 그렇게 생각하고 울었다가 또 감정을 추슬렀다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한동안 정신이 없는 나 대신 나의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부탁도 하고 남편에게 그때의 나를 곁에서 지켜주고 지켜봐 달라는 경고 아닌 경고도 했다.

이런 예행연습이 나를 담담하게 만들었나.


나도 알고는 있다. 영원은 없다는 걸. 언젠가는 지나가야 될 일이라는 걸. 그렇지만 너무나 두렵다.     

하지만 그녀는 늘 나에게 ‘어떠한 일에도 해결책은 있다’ 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나는 이 책과 만났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는데 요즘 나의 고민을 작가가 알고 있는 듯 써놓은 제목이 이 책을 집어 들게 만들었다. 작가는 평소 자신의 가족사와 작가 개인의 사생활이 노출되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꽤나 상세히 말하고 그들의 죽음에 대해 느꼈던 감정들을 말한다. 내가 보기에 작가는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고민하다 세상 모든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이 죽음에 관해 써놓은 글들과 작품들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답을 얻은 것 같다. 마치 나의 고민을 이 책 한 권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문제는 나의 수준이 작가의 발뒤꿈치에도 못 미쳐 전교 꼴찌인 학생이 1등의 요약노트를 보는 것 같은 불편한 심정으로 내내 이 책을 읽었다. 성적 향상을 위해선 어떻게든 노력해야 하니까.

무려 407페이지라니! 한편으로는 마냥 심각하지 만은 않았는데, 특유의 위트 있는 말들로 키득키득 웃게도 만들어 주었기에 고마운 생각까지 들었다.


 쥘 르나르가 이런 말을 남겼다. “죽음과 마주할 때 우리는 어느 때보다 책에 의지하게 된다.” p69

이 글을 읽었을 때 내심 안심이 되었다.

내가 올바른 방향을 찾은 것 같았다.      

무신론자에서 불가지론자로 전향한 작가는

신을 믿지 않음에도 신을 그리워한다.

신념은 밝혀진 모든 원칙들에 의거해보면 다름 아닌 ‘일어났을 리 없는 일’을 믿는 것이라고 하며 신자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의 영지주의를 선망한다. 그래 이런 느낌 나도 알 것 같다.

정작 나는 불경도 좋고 성경도 좋은데

누군가 절이나 교회에 가자 하면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다.

그저 매일 밤 그 누군가에게 그녀의 수명연장에

대해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몽테뉴는 죽음을 물리칠 수 없는 우리가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너의 말이 넘어지거나 지붕에서 타일 한 장이 떨어질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라. 네 입안에선 언제나 죽음의 맛이, 네 혀끝에선 언제나 죽음의 이름이 감돌아야만 한다. 이런 식으로 죽음을 예견할 때 죽음의 예속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있다. P75   

  

언제부턴가 매일같이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예행연습을 나름대로 해본다.

혼자 살고 있는 그녀가 아무 연락이 되지 않을 때

대처하는 방법이나 길에서 갑자기 쓰러져

누군가에게 연락이 온다면 등등 각종 설정을 하고 머릿속에 절차를 그려본다. 이제 나도 마냥 겁먹은 어린애가 아닌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니 그녀를 따라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가면 안 되지 않겠는가.     


그녀의 눈이 멀어 나를 데리고 온 그날의 선택을 원망했던 내가 참으로 부끄럽고 싫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지금껏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녀에게 행복을 주려했다. 남은 날들도 더 최선을 다해 갚을 것이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그녀와 많은 추억을 만들어 두고 싶다. 그 추억의 무게가 먼 훗날 짐이 될까 두려워 일부러 피한 시간들도 있었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를 선택해줘서 고맙고 사랑합니다.

최외금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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