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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Apr 16. 2020

남편을 울렸다.

지난봄. 운영하는 책방에서 '시'를 배우며

읽은 책 무한화서.

시인의 따뜻한 한마디 한마디 가르침에

일단 쓰고 본다. 걱정 없이. 내가 아닌 무엇이 되어.


야단맞은 아이들 자면서도 훌쩍거리던 모습, 잊히지 않아요. 그렇게 풀어주지 못하고 떠나온 것들 참 많지요. 이번 가을 오고 또 가고, 내년에 다시 올 것 같지만 영영 안 올 수도 있어요. 사랑을 못 받아도, 못 주어도 응어리가 남아요. 그 응어리를 뒤늦게 풀어주려는 게 시예요.

-무한화서 p108


글을 쓸 때는 내가 글의 품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세요. 글은 내가 맺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맺어지게 돼 있어요. 글쓰기는 머리가 아니라, 말이 하는 거예요. 써나가다 헛소리가 튀어나올까 봐 겁내지 마세요. 너무 튀면 나중에 잘라주면 되니까요.

-무한화서 p119     


<145kg>     

내 등에 적게는 20kg 많게는 55kg까지

주렁주렁 넷이 달려 있다.

나는 고작 68kg인데 넷의 무게는 145kg.

세월이 갈수록 무게는 더 늘어나고

내 등은 더 휘어간다.

내가 그들을 선택해 이 무게를 짊어진 것인지

이 무게가 나를 지금껏 살게 한 것인지

그녀를 만나서 남편이 되었고

자식이 태어나 아버지가 되었다

역마살 잠재워 주고 불같은 성질머리

찬물 끼얹어 주고

온기 없이 차가운 세상에 따뜻한 아랫목이

되어준 이 무게.

새우등이 되어도 좋아 웃을 수 있는 이 무게.


남편은 이 글을 읽고 피식 웃음 지었다.

그러더니 '너도 늙었나 보다. 내 맘을 잘 아네' 한다.

그래 같이 산 세월이 16년인데

이제는 알 때도 되었지.     


<빙의>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어린것들 두고 눈 감았던 나는

오죽 서러웠겠냐마는

남겨진 너희들은

오죽 원망스러웠을까     

저승 가지도 못하고

내내 주위만 맴돌다가 그 아이 보았다

너만큼 외로이 상처 입어 쉬 내어 주더라     

내가 해준 음식 같다고 잘 먹는 너를 보면

애기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그저 좋더라

등 돌리고 자는 네 모습 보며 눈물 흘리고

무슨 까닭인지 생각하는 애기에게

미안하지만 그게 어미 마음이란다     

애기야 네 덕에 꽃다운 나이도 살아보고

내 새끼 원 없이 안아도 보았으니

꼭 내가 떠나온 나이에 너를 떠나마

영문 없이 눈물이 흐르거든

네가 아닌 내 넘치는 한이거늘 두려워 말아라


남편의 부모님이자 나의 시부모님은 한 날 한 시

사고로 돌아가셨다. 남편 나이 열아홉 보름 만에

겨우 찾은 부모님 시신 확인하고 수습하고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안되었지만, 나는 알았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그 아픔 내가 다 씻어줄 것이라는 걸.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갖 대학 졸업하자마자 남편과 결혼했다.

지금도 한 번씩 잠든 남편의 모습을 보며 훌쩍거리는 나는 아마도 시어머니가 가끔 빙의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시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나에게 들려줄 것 같던 이야기들 몇 자 적어보고 남편에게 보여 주었다.

그날 남편은 말없이 눈물만 계속 흘리더라.

     

2019.03.04



#시 #무한화서 #남편 #눈물 # 독서일기 #부부 #가족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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