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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Feb 26. 2021

너희가 최고야!

지난 토요일 달콤한 사탕발림으로 유혹하여 예비고딩, 예비중2, 예비초4, 예비쉰짤을 데리고 청도에 있는 사리암으로 향했다. 사리암은 청도 운문사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호거산을 오르고 오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쯤 나타나는 작은 사찰인데 나반존자님이 기도를 하시던 곳으로 유명하다. 초입부터 심한 오르막 경사에다 좀 쉴만하면 1,008개의 계단이 반겨준다. 쉬지 않고 오르면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면 삼십 분 안에 도착이지만 예비고딩께서 워낙 집콕만 하시던 터라 우리는 거의 한 시간 만에 도착했다.

결혼 전 친정엄마가 이곳에 세 번 가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뤄준다 하니 한번 가자 해서 엄마와 남편과 함께 새벽이슬 맞으며 올라 둘이서 눈물 주륵주륵 흘리며 천배 공양을 하고 내려왔다. 남편도 나도 왠지 가슴이 뻥 뚫리고 머리가 맑아진 신기한 경험을 했었다. 결혼 후 아이를 바라며 둘이 올라 열심히 기도하고 내려와 지금의 큰딸이 생겨 기뻐했고, 세 번째는 사업 잘 되게 해달라고 이제 네 살과 돌쟁이를 안고 업고 하며 넷이 다녀왔더랬다.


그 이후 살기 바쁘고 지금껏 좀 잊고 지냈는데 문득 지난달부터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 가면 이뤄준다 하시던 소원을 우리는 갈 때마다 척척 들어주셨는데 이번에도 좀 들어주시겠지'라는 얄팍한 마음과 그곳의 신선한 공기와 신묘했던 그날들의 느낌을 다시 받고 싶었다.


역시 일등으로 도착한 막둥이는 "아이~ 계단이 1,000개쯤 더 있으면 좋겠는데!"라고 망언을 하여 주위 숨넘어가던 아줌마 아저씨들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고, 제일 늦게 도착한 큰딸은 곧 부러질 것 같던 다리가 자동 개다리춤을 추었다.

우리는 관음전에서 경건하게 일곱 번 절을 하고(남편이 왠지 그렇게 하고 싶다 하여 단체로 따라 함) 산신각에 올라 공양을 하며 각자 소원을 빌었다. 나는 언제나 교회나 성당 또는 절에서 기도를 드리거나 제사 지내며 절을 할 때 '열심히 살 테니 지켜봐 주세요'한다. 높으신 분들 앞에서 일종의 다짐 같은 걸 하는 것이다. 모태신앙이라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천주교 성당을 종종 갔는데 왠지 하느님은 너무 피곤할 것 같았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도와 달라고 하니 얼마나 피곤할 거며 몸이 한 개인데 어떻게 다 도와주지? 그럼 나라도 안 해야지... 이런 생각이 있었다. 오~ 생각해 보니 참 착하구나 너! 칭찬해~ ㅋ


자판기 커피와 캔콜라를 뽑아 다섯이 조르륵 앉아 산 아래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것이 정말 행복한 거구나 싶었고, 포기하지 않고 다 함께 와준 아이들이 너무 대견했다. 힘들다며 잊고 있었던 것들이 진정으로 나를 버티게 해 주었던 것들인데 말이다.


아! 집에 돌아가기도 전에 벌써 소원을 들어주셨구나!

큰 깨달음을 얻었다.


고맙다. 사랑한다. 자주 말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자주 서로 부둥켜안아야 한다.

너에게 하는 말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 되고

너를 안는 일들이  나를 안는 일들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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