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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장 May 29. 2021

멜랑꼴리 한 멜론

나 다시 돌아가지 않을래~~

그 녀석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뭔가 큰일이 났나... 우리 나이쯤 되니 카톡만 하던 친구가 전화가 오면 가슴이 덜컥한다. 또 누가 돌아가셨나...


예상밖에 녀석은 뭔가를 보내 줄 테니 주소부터 부르란다.

뭐지? 요 짠돌이 녀석이 뭘 줄라나.

얼른 톡으로 주소를 보내주고 이틀 동안 설렘 ㅋ



때마침 남편과 일 하고 있는데 택배가 도착해서 보니 고것은 친구 녀석 왈 천안의 명물인 멜론!

으쓱하며 남편에게 자랑했다.

봐라~ 나는 남자 친구가 멜론도 보내준다! 라며.

남편은 이 짜쓱이 아직도 첫사랑을 못 잊고 확 마! 하며 허허 웃는다.


그 녀석은 국민학교 5학년부터 사십이 넘은 지금까지 쭉 연락이 이어져오고 있고 내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녀석을 생각하면 지금은 그저 웃지만 사실 꽤 우울하고 슬프기도 하고 딱 멜랑꼴리 하다.


일곱 살에 조기입학을 한 나는 또래보다 체구도 많이 작고 아주아주 많이 소심해서 늘 학교 가기가 싫었는데 5학년 같은 반이었던 녀석은 내가 좋다며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알게끔 떠들썩하게 떠들고 다녔고 화이트데이에는 노란 병아리 인형을 주고 매일 내 책상 앞에 와서 관심을 끌었으며 소풍 가는 날이면 초점도 맞지 않는 파파라치 사진을 찍기 위해 필름을 기본 2-3개씩 썼다. 후에 안 일이지만 내가 녀석 때문에 학교 가기 싫다고 엄마에게 매일같이 한탄을 하자 울 엄마가 녀석 엄마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들었는데 집에 형체모를 나의 사진들이 두꺼운 앨범 2개 넘게 꽉 차있었다고...


그때의 나는 매일같이 아팠고 죽도록 학교가 가기 싫었으며 항상 우울했다. 전교에 소문이 나서 일명 학교 일진들인 여자 아이들이 질투인지 뭔지 매일 괴롭혔고 심지어 생일인데 집에 못 가도록 교실문을 한참 잠가두기까지 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녀석을 더 미워했고 철저히 외면했다.


대학생이 되어 내 연락처를 알아낸 녀석과 다시 만났다. 내 우울의 한 가지 원인이었던 녀석은 많이 달라 보였고 밝았고 착했고 친근했다. 심지어 나를 찾아줘서 고마웠다.

그렇게 친구로 지금까지 서로의 경조사를 챙기며 지내오고 있다. 이번 멜론은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얼마 전 내 생일에 축하 톡을 못 보내서 보내준 선물인 것 같다. 그날 상중이었던 녀석을 그것도 모르고 이제는 꼬박꼬박 챙기던 내 생일을 까먹었냐 한마디 한 것이 걸렸나 보다.


이제 너는 두 아이의 아빠 나는 세 아이의 엄마.

같이 늙어가는 우리들.

네가 내게 주었던 순수한 마음들을 그때는 받아주지 못해 미안해. 하지만 너도 알지? 평생 나한테 갚아야 한다. 아직 그 멜랑꼴리는 사라지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멜론보다 빵을  좋아한다규~~~


#멜랑꼴리 #국민학교 #오랜만에 #추억 #친구 #학교폭력 #일진 #가스나들 #미워 #에세이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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