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점을 본 날, 내 연애는 멈췄다.

[나는 오늘도 운명이라는 핑계에 숨는다 #2]

by 감자댄서

1. 헤어진 적보다 시작하지 않은 연애


"아쉽네요. 그녀는 당신에게 이성적 감정이 크지 않아보여요."

연애점을 봐달라고 한 회사 후배는 펜타클 4번 카드를 뽑았고, 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펜타클은 동전 모양으로 생겼으면서,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의미한다. 심플하게 말하면, 이성적 떨림이 없는 관계에서 많이 나온다.


그는 고민을 하는 듯한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여기서 멈출 것인가 또는 무모하게 도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아마도 그는 멈출 것 같았다. 왜냐하면, 멈추기 위한 명분을 얻기 위해 타로점을 봤을 가능성이 크 때문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나 역시 늘 그렇게 멈춰왔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돌이켜보면, 내 연애도 헤어진 적보다 시작하지 않은 적이 더 많았다.


누가 나에게 연애가 잘 안 됐던 이유를 물어보면, 나는 늘 그녀들과의 관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들과의 점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녀들에게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연락을 기다렸고, 답장을 곱씹었고, 약속이 잡히면 괜히 옷장을 두 번 열었다. 연애를 할 준비가 된 사람의 전형적인 행동을 나는 꽤 성실하게 해냈다.


그러나, 문제는 늘 같은 지점에서 생겼다. 그녀들과의 관계가 이름을 갖기 직전, 나는 습관처럼 점을 봤다.

“이 사람이랑 잘 될까요?”

질문은 단순했고, 답은 늘 애매했다. 아주 나쁘지도, 그렇다고 확실히 좋지도 않은 말들. 조심하라거나, 시간이 필요하다거나, 지금은 인연이 아니라는 식의 문장들.


그리고, 나는 멈췄다.




2. 대학 4학년, 처음으로 멈춘 썸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취업 준비라는 말이 연애보다 먼저 인생의 중심에 올라와 있던 시기였다.


나는 A와 썸을 타고 있었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고, 1대1로 두세번 만났다. 아직 서로 아무것도 어긋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만나는 사람 있잖아. 그 사람이랑 조금 있다가 만나면 안 될까?”

이유를 묻자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취업운을 방해한대. 신녀님이 그러셨어.”

어머니는 내 점을 보고 오셨고, 그 신녀님이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도 나는 한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이 분명히 주춤했다. 그날 이후, A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다음 약속을 잡지 않았고,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연애를 선택하면 인생이 흔들릴 것 같았고,
연애를 포기하면 인생이 안전해질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썸은 싸우지도, 고백하지도 않은 채 그냥 멈췄다.




3. 점은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다.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A와의 썸은 내가 처음으로 점에게 결정을 넘긴 관계였다. 그 이후로 연애와 관련된 중요한 순간마다 나는 점을 보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는 주변 사람들의 연애점을 봐주기도 했다. 그렇게 경험이 쌓아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패턴이 보였다.


사람들이 연애 관계에 대해 점을 볼 때는 대부분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둘이 한창 좋을 때는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요?”를 묻고,
마음이 식기 시작하면 “이 인연, 여기까지일까요?”를 묻는다.


이미 이별을 생각하고 있을 때는 그 결정을 밀어줄 말을 찾고, 다른 이성이 마음에 들어왔을 때는 죄책감을 덜어줄 문장을 기대한다.


그렇다. 연애점은 불확실할 때 보는 게 아니었다. 이미 관계의 흐름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을 때 점을 보는 거였다.


나 역시 그랬다.

A가 정말 취업운을 방해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왜냐하면, 확인한 적이 없으니까.

어떻게 보면, 점은 미래를 예언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내가 이미 도망치고 싶어 하던 마음에 ‘운명’이라는 면죄부를 붙여주었을 뿐이다.


나는 사람을 떠난 게 아니라, 가능성을 떠나보냈다.





4. 에필로그 - 연애점의 쓸모에 대하여


나 자신에게 조금 불편한 질문을 던져 본다.

그건 정말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선택을 미룬 결과였을까?


나는 책임질 용기가 없었던 선택을 점에게 맡겼다. 그 선택은 안전했지만, 내 인생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깨달았다. 연애가 나를 떠난 게 아니라, 내가 연애를 떠 보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연애점은 의미없는 도망일 뿐일까? 아니다. 연애점은 확실히 쓸모가 있다.

그런데, 그 쓰임새가 우리가 기대하는 그것과 다를 뿐이다. 연애점은 미래를 예언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왜 망설이고 있는가?'를 확인하라는 질문 말이다. 운명 뒤에 숨어 있는,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연애점은 내 연애 관계가 끝나고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본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연애점을 보면, 당연히 안 좋은 미래가 나온다. 그러나, 나는 행동을 해야 한다. 기껏해야 거절 밖에 더 당하겠는가? 연애점으로 미련을 정리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고, 한 번 거절당하는 편이 훨씬 덜 후회가 남는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운명은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한 번도
운명을 시험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참고] 연애점을 보기 전에,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볼 것


연애점의 쓰임새는 따로 있다. 점은 나 대신 결정을 대신해주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방향을 점검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점을 보기 전에 이 질문부터 던져본다.

이 점이 나에게 용기를 줄 것 같은가, 아니면 핑계를 줄 것 같은가

이 사람에게 직접 묻지 않은 질문을, 지금 점에게 대신 던지고 있지는 않은가

이 점괘가 내가 이미 느끼고 있는 마음을 확인해주는 건지, 가려주는 건지

이 질문 앞에서 조금이라도 머뭇거린다면, 그 점은 답이 아니라 내가 피하고 싶은 선택을 보여주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