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운명이라는 핑계 #3] 퇴사 점을 보지 않는 이유
퇴사 고민하면서 점을 본다는 말은,
회사를 떠나겠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선택할 용기도 준비도 없다는 자기 고백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퇴사에 대해 점을 볼 때,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이직이 가능할까요?”
하지만, 나에게는 그 질문은 이렇게 들렸다.
“지금 이 회사에 더 다니기 싫은데, 나가도 될 명분이 있을까요?”
우리 회사에는 희망퇴직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내 나이 또래 기준으로 대략 3억에서 4억을 한번에 받고 퇴직할 수 있었다. 회사 분위기는 묘했다. 모두들 “나는 신청 안 할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도 슬쩍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 중 동료 '영식'이 있었다. 그는 희망퇴직에 진지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희망퇴직을 할까말까 점을 보러 다니는 데 진지했다. 사주, 신점, 타로 등 유형을 가리지 않고 무려 다섯 군데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의 질문은 단 하나였다.
“이번에 희망퇴직을 하면 내년에 재취업을 할 수 있을까요?”
즉, 그는 재취업 확률이 높다는 점을 확신하면, 퇴직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점집에서 돌아온 그의 표정은 늘 비슷했다. 기대와 실망이 동시에 섞인 얼굴이었고, 그가 들은 답변들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이직운이 좀 있네요.”
“변동수가 있긴 한데요.”
“이직 가능성이 있는데, 확실하다고 보긴 어렵고요.”
점집 특유의 부정도 긍정도 아닌 문장들, 들으면 들을수록 더 헷갈리는 말들의 총집합이었다.
영식은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
영식은 5번의 점집 순례를 마치고 나에게 타로점을 봐달라고 찾아왔다. 나는 마음 속으로는 거절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도 궁금한 것이 있어요?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점을 보는 거 아니어요?"라고 웃으면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이라면서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타로 카드 1장을 뽑았다. 그가 뽑은 카드는 '매달린 사람' 카드였다. 카드 속 주인공은 행동을 하기 보다는 가만히 지켜보는 것을 선택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행동할 마음이 없다고 말하네요. 정말 그런가요?"
내가 이렇게 대답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퇴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이직 시장에서 통할 만한 전문 지식도 없고, 컨설턴트와 같은 탁월한 역량도 없다고 말이다. 그 대신 이런 부족함을 보완해 줄 휴먼 네트웍을 기대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즉, 일을 그만둔다는 관점의 퇴사보다는 희망퇴직금을 일단 받고 계속 일을 할 기회를 찾겠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그는 이직을 조금도 준비하지 않았으면서 퇴사 후 이직운에 대해 계속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점은 그에게 답을 주는 대신 간접적으로 말해줬을 뿐이다.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는 말로 말이다.
그에게 더 질문을 하는 대신, 나 자신에게 질문을 했다.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퇴사를 할 것이냐고... 그리고,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춰진 상황이라면, 퇴사 판단을 위해 점을 볼 것이냐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퇴사를 할까요?"라고 타로점을 보았다. 작년 희망퇴직 때는 아니고, 10여년전 MBA를 졸업한 직후였다.
주말에 MBTI 일반강사 자격증 과정 강의를 들으러 갔다. 점심을 먹고 강의실에 들어오는데, 수강생 한 분이 타로카드를 꺼내서 다른 사람 타로점을 봐주고 있었다. 뭔가 신비해 보였다. 나는 슬그머니 그 분 앞에 섰다. 그리고, 나도 궁금한게 있다고 말했다.
"어떤 것이 궁금하세요?"
"저는요.. 퇴사를 해도 될지 궁금합니다."
그는 타로카드를 쫘~악 펼치더니 1장을 뽑으라고 했다. 나는 눈을 감소 심호흡을 3번 한 다음에 1장을 뽑았다. 카드 이미지를 보자, 뭔가 좋아 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카드는 '월드' 카드였다. 파아란 하늘에서 천사들이 나팔을 들고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그 천사들 주위를 하얀 구름이 솜사탕처럼 감싸고 있었다.
"퇴직해도 잘 되실 것 같아요. 선생님이 원하는 모습을 완성된다고나 할까요."
이 말을 듣고, 긴장했던 내 마음이 샤르르 풀어졌다. 내가 퇴사를 해도 잘 된다니... 음하하하
그 때 이후로 10여년이 흘렀다. 나는 아직도 회사를 다닌다. 그러나, 더이상 "퇴사해도 될까요?"라는 질문으로 점을 보지는 않는다.
왜일까?
점을 보고 미래를 알게 되어서일까?
아니다. 그 질문이 나를 아무 데도 데려가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퇴사해도 될까요?"라는 점을 보기 전에 먼저 이런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하기 시작했다.
‘내 실력은 지금 어느 정도지?’
‘이 시장에서 나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할까?’
나는 이 질문들을 점집으로 가져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퇴사 점을 믿지 않게 된 게 아니라, 그 질문을 하지 않게 된 사람이 되었다.
10년 전의 나는 회사를 나가고 싶었지만,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퇴사할 준비가 안 되었다고 느낀 이후로는 "퇴사해도될까요?"라는 질문으로 더 이상 점을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점은 '로또'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로또는 아무런 노력 없이도 행운 폭탄을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점은 인과관계의 영역으로 로또와 다른 세계관에 있다. 점의 세계관에서는 어떤 action이 없다면, 미래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러던 내가 오늘 10년만에 타로점을 보았다. "퇴직해도 될까요?"라고 말이다. 타로가 내게 보여준 미래이자 질문은 '정의' 카드였다. 사람이 저울과 칼을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카드다. 저울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심플하게 말하면, A와 B를 비교하는 것이 저울이다. 그것도 객관적으로 말이다. 즉, 타로카드는 나에게 '퇴사를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고민을 해보세요.'라고 말해준다.
아마도 타로카드는 알아챈 것 같다. 내가 진지한 고민 없이 그냥 재미삼아 미래를 물어보았다는 것을 말이다. 살짝 아쉽고 서운하다. 10년전 '월드' 카드처럼 내가 꿈꾸던 세상이 펼쳐진다는 답을 듣고 싶었나보다. 내 마음은 그런 장미및 미래를 은근히 꿈꾸고 있었구나.
그러면, '퇴사할까요?'와 같은 미래에 대한 점은 소용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점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을 '점'에게 하지 않게 된 사람이 되었다.
그 대신, 그 질문을 '나'에게 하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