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직딩의 필살기 #12] 통역이 필요한 마음
[3줄 요약]
ㅇ <이 사랑 통역 되나요?>에서 주호진이 차무희의 마음을 통역하는 장면이 멋있었다.
ㅇ 나는 내 마음을 잘 통역하지 못한다. 망설이다가 의도와 맥락없는 말을 짧게 하고 만다.
ㅇ 누구에게 그리고 이 세상에 내 마음을 멋지게 통역할 수 있을까?
말은 이어지는데, 마음은 통역되지 않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이 되나요?>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시리즈 안의 방송 프로그램인 <로맨틱 트립>의 일본 남자 주인공 '히로'가 한국 여자 주인공 "차무희"에게 일본어로 말한다.
"나는 진심으로 차무희씨를 좋아합니다."
"... (통역 없음)"
"주호진씨, 통역을 해줘야 내가 말을 하죠?"
"... (통역없음)"
"주호진씨?"
"(주호진) 나는 차무희씨를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이렇게 일본어와 한국어를 사용하는 시리즈 속 주인공들은 '주호진'이라는 통역사가 없으면 서로 소통을 못한다. 오죽하면 '히로'가 한국어를 공부했겠는가?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 주호진은 통역사다. 이성적이고 정확한 말만 고른다. 불필요한 감정은 배제하고, 의미가 분명한 문장만 남긴다. 그의 통역하는 언어에는 여지가 없다.
반면 차무희는 감성적인 사람이다. 자기 마음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걸 어려워하고,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할까 봐 늘 망설인다. 그래서 종종 진짜 마음과 다른 말을 내놓는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은 초반에 자주 엇갈린다. 말은 이어지는데, 마음은 통역되지 않았다.
이런 차무희의 스타일을 알아챈 주호진이 차무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긴장하면 아무 말이나 하는 스타일이군요.”
그 말이 이상하게 아팠다. 아무 말이나 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숨긴 거였는데.
그러면, 나는 왜 소통이 안 될까?
내 MBTI 유형으로 변명을 해보면, 나는 INFJ다. 그래서, 맥락을 읽고, 의도를 추측하고, 말하지 않은 감정의 방향을 감지하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늘 이렇게 생각해왔다.
“이 정도 말했으면, 의도는 보였겠지.”
“이 말의 맥락까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문제는, 상대도 그럴 거라고 믿었다는 점이다. 나는 시시콜콜한 설명을 하지 않는 편다. 그래서 늘 망설였다. 이 말을 여기까지 해야 하나. 이 마음을 이렇게까지 풀어야 하나. 그 망설임 끝에서, 나는 자주 말을 줄였다. 이유를 빼고, 배경을 빼고, 감정을 생략한 채로. 그 결과는 늘 비슷했다. 나는 전달했다고 느꼈고, 상대는 이해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어쩌면 나는 말을 한 게 아니라,
힌트만 남긴 셈이었다.
돌이켜보면, 소통의 오류는 거기서 시작됐다. 상대는 남은 빈칸을 스스로 채워서 셀프 통역을 해야했지만,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 통역은, 종종 내가 원하지 않던 방향이었다.
드라마 속 차무희처럼 말이다. 차무희는 사랑을 말하고 싶었지만, 두려움 때문에 다른 말을 했다. 그리고, 나는 이해받고 싶었지만, 망성임 때문에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하지 않은 내 마음은, 언제나 오해로 통역되었다.
세상에 다른 언어가 몇 개인 줄 아나? 세상 모든 사람의 수만큼 있지.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 다 자기 언어로 말을 하는 셈이야.
그러니까, 서로 못 알아먹고 거꾸로 듣고 막말을 하지.
- <이 사랑 통역 되나요?> 속 작가 김영환
“절대로 당신한테 사귀자고 하지 않을 거예요.”
차무희가 주호진에게 거절 당한 다음에 이런 말을 한다. 차무희는 말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믿었다. 설명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이 말에는 설명도 없도, 의도는 반대로 말하고 있고, 맥락과 연결되지도 않는다.
나도 차무희와 같은 스타일인가 보다. 나는 이해받고 싶어 하면서, 이해되기 쉬운 말은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설명하면 지루하다는 말을 들을까봐 두려웠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잘 통역할 수 있을까"
"설명을 더 해도 될까요?"
상대방이 내 말을 듣고, "뭔 얘기지?"라는 얼굴 표정이라면, 나는 "추가로 좀 더 설명을 해도 될까?"라고 말을 하면 된다. 그리고,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보충 설명을 해주면 된다.
예를 들면, A가 나에게 "오늘 또는 다른 날 벙개 어때요?"라고 묻는 상황이다. 나는 "안되요."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A는 "네..."라고 대화가 끝난다. TMI를 말하면, 나는 오늘 병원 예약이 있어서 안되는 상황이었고, 내일 또는 다른 날은 가능했다. 그러나, 이렇게 대화가 끝나면, 상대방은 '저 사람은 나를 만나기 싫어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내가 더 많은 설명을 해주면 좋다. TMI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내 솔직한 의도는 이거예요."
내가 말한 첫문장에 '의도'가 담기지 않았다면, 두번째 문장에서 '내 의도'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려고 한다. 상대방은 내 의도를 모르는 채로 단정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질문을 던져주면 좋겠는데, 그런 질문없이 그냥 스스로 정답을 내려 버리는 셈이다. 성격 급하고 잔소리 폭격기인 사람들이 주로 그렇다.
"맥락에 어긋나지만.."
가끔 대화의 맥락과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갑자기 "어제 영화 OOO을 봤는데, 어쩌구 저쩌구~"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날 쳐다본다. '저 인간은 뭐야?'라는 눈빛으로 말이다. 그래서, 엉뚱한 말을 할 때는 가능하면 "맥락에는 좀 어긋나지만.."이라는 양해의 말을 하고 나서 말을 하려고 한다.
또는 "제가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라는 말을 덧붙이려고 한다. 그래야, 내가 알아채지 못한 상대방의 마음을 설명할 찬스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다.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서는 '주호진'같은 '내 마음의 통역사'가 없기 때문이. 그래서, 나 스스로 내 마음을 통역해서 말해주려고 한다. 상대방이 나를 오해하지 않게.. 그리고, 내가 상대방을 오해하지 않게 말이다.
이 드라마가 좋았던 이유는 두 사람이 서로를 고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려 했다. 주호진은 차무희의 망설임을 단순한 변덕으로 보지 않으려 했고, 차무희는 주호진의 정확함이 차가움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 과정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 문제도 성격이 아니라 번역 방식이었구나. 나는 맥락을 읽는 사람이다. 그래서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 믿어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나만큼 맥락을 읽지 않는다. 그건 잘못이 아니라, 언어의 차이다.
“나는 설명을 싫어한 게 아니라, 이해받을 거라 너무 쉽게 믿었다.”
모든 대화에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 만큼은 의도를 숨길 이유도 없다. 긴 설명이 아닐지라도, “이 말의 의도는 이거야.” 그 한 줄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같은 한국어를 쓰는데도 통역이 필요하다는 건, 우리가 서툴러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마음의 언어를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제 나 자신에게 묻고 있다.
나는, 내 마음을 제대로 통역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