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5cm, 그녀를 잡지 못한 에겐남의 느림

[어설픈 직딩의 어설픈 리뷰] 영화 <초속 5cm>

by 감자댄서

1. 그는 왜 달리지 않았을까?


영화 <초속 5cm>의 마지막 장면이다.


도쿄의 벚꽃이 천천히 떨어진다.

기차길이 양쪽을 갈라놓는 철도 건널목, 서로를 마주 보고 선 두 사람.

기차가 그들 사이를 가른다.

그리고 기차가 지나간 뒤, 그녀는 없어졌다.

그는 멈춰 서 있다.

나는 그 장면을 다시 보다가 이상한 질문이 들었다.

왜 그는 뛰지 않았을까?

기차가 지나간 뒤 몇 초면 따라잡을 수 있었을 거리였다. 이름을 한 번만 불렀어도 됐다.손을 한 번만 흔들었어도 됐다.


그는 16년을 기다린 사람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16초는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엇갈린 인연”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다르게 본다.

그건 인연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였다.



2. 초속 5cm로 사는 남자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는 초속 5cm. 느리다.
아름답지만,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그의 인생도 그 속도였다.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보고 싶다고 붙잡지 못하고,
확신이 생길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사람.


기차가 지나간 뒤에도 그는 서 있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체념의 미소.
아니, 변명에 가까운 표정.

“인연이 아니었겠지.”

그렇게 말하면 편하다.

우주는 거대하고, 타이밍은 잔인하고,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더 정확한 문장은 이것 아닐까.

“나는 무서워서 달리지 않았다.”

그는 에겐남이었다.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3. 인연 탓을 하는 순간


20년 전 이 애니메이션을 처음 봤을 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안타까운 첫사랑. 엇갈린 운명.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니, 로맨스가 아니라 성장 실패기처럼 보였다.

인생에서 달리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


사실 나는 그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나 역시 수없이 멈춰 섰으니까.

좋아한다는 말을 삼켰고,
거절당할까 봐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혹시 부담스러우면…” 같은 말로 도망갈 구멍을 만들었다.

에겐남의 언어는 늘 안전장치를 단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인생을 절전 모드로 산다.

그리고 나중에 말한다.

“인연이 아니었나 봐.”




4. 에겐남에서, 조금은 테토스럽게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지는 못한다.
에겐남이 갑자기 테토남으로 변신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속도는 바꿀 수 있다.

초속 5cm가 아니라
초속 5m 정도로는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보고 싶으면 말하고,
먹고 싶으면 주문하고,
좋아하면 고백하고.


인생은 기차가 한 번 지나가면, 그 기차를 다시 탈 수 없다.

그들이 다시 만나지 못한 것은 인연이 약해서가 아니다.

그가 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설이면 망한다는 말은 과격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확실하다. 망설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은 벚꽃처럼 흩어질 뿐,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