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제출하지 못한) 자기소개서

당신은 어떤 PD를 꿈꾸나요?

by 조우빈

비좁은 9호선 출근길. 또래 남성의 손에 들린 큼직한 화면에 눈길이 간다. 그곳엔 그가 고른 타로 카드를 보고 재회 운을 읊어주는 유튜브가 재생되고 있었다. 액정을 드문드문 탭하며 영상을 넘겨보는 그에게서 문득 내 모습이 보였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겪고 미련을 버릴 수 없던 나. 그래서 한동안 유튜브로 재회 가능성을 점치며 현실을 부정했던, 작년 여름의 내 모습 말이다.


처음엔 이런 것도 영상으로 소비가 된다는 게 웃겼다. 하지만 금세 <X는 2번 님을 정말 사랑해서 잠시 떨어져 있는 거래요>라는 무책임한 말을 한 번이라도 더 듣기 위해, 매일 올라오는 수십 개의 영상들을 지독하게 쏘다니는 나를 발견했다. 찌질했지만 진심이었고, 그 진심은 재회 타로를 보던 내 유튜브 시청 기록 어딘가에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이토록 이해관계가 뚜렷하고 진실된 콘텐츠가 있을까.


유튜브와 OTT 플랫폼에서 수많은 콘텐츠들이 시청자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는 시대에 과연 PD는 어떤 마음과 목표를 가져야 할까. 좌중을 한바탕 웃기고, 도파민을 팡팡 샘솟게 하는 그런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싶다가도, 출근길에서부터 재회 타로를 보던 지하철 그 남자와 나의 질척였던 과거를 추억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 꼭 봐야 할 이유가 있는 콘텐츠. 하루의 시작에 가장 먼저 재생되어야 할 이유가 분명한 콘텐츠. 그런 필요한 콘텐츠를 만드는 PD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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