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 중요한 건 마인드셋의 변화
런던 지하철의 첫인상은 한 취객 남성이었다.
가뜩이나 잔뜩 긴장한 채였다. 시각은 예정보다 많이 늦어 있었다. 내 하반신 만한 20kg 캐리어는 영혼보다 더 소중했다. 유럽에서는 내 몸에서 물건을 떼어 놓는 순간 '가져 가라~' 라는 의미와 같다고 들었다. 짐들을 꼭꼭 부여잡은 채 지하철에 올랐다.
자리는 많이 있었지만 통로가 좁았다. 캐리어를 지키려면 앉을 수 없었다. 의자 팔걸이 바로 옆에 캐리어를 놓은 뒤 그 위에 궁둥이만 살짝 (그러나 확고하게) 걸터 앉는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캐리어가 빠져나갈 구역을 다 차단함으로써 소매치기를 방지할 수 있는 최적의 자세를 잡고 나서야 비로소 지하철 안 풍경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좁고, 낡고, (한국의 스크린도어에 익숙해 있는 나로서는) 위험했지만 아기자기하고 정감 있었다. 정차 전마다 들려 오는 독특한 영국 억양의 역 소개 안내방송과, 늦은 시각에 자기 만한 캐리어를 싣고 잔뜩 긴장해 있는 검은 긴 머리의 동양 여자애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시민들을 기억에 담았다. 아직은 파악하기조차 힘든 런던의 지하철 노선도(나중엔 서울 메트로 마냥 마스터해 다른 여행객에게 길을 안내해주기까지 했지만)를 뚫어져라 분석하면서, 내가 지구 정반대 편의 낯선 땅을 밟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하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고 한 취객 (양아치) 남성이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기껏해야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이때만 해도 유럽 사람들의 나이는 동양인이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다) 백인 (양아치) 남자가 큰 소리로 전화통을 붙잡고 자리에 '누웠다'. 동방의 예의지국, 한국이었다면 바로 꼰대 아저씨 혹은 신고를 받고 달려 온 역무원 분들이 제재를 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긴 아무도 그를 신경쓰지 않고, 이 시각엔 역무원조차 잘 돌아다니지 않는 런던이었다.
모두가 신경을 쓰지 않는 건 아니었다. 5칸 짜리 자리에 '눕는' 행위를 통해 시각적으로, 통화하며 온갖 육두문자(sh*t, f*ck 등등) 를 섞은 깔깔깔 소리에 청각적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술냄새를 통해 후각적으로, 그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사람들의 내적 평온을 침해하고 있었다. 아마 모두가 신경을 쓰고 있지만 직접적인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뿐이었다. 하물며 갓 이 땅을 밟은 어린 동양 여자애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흘끔흘끔 그 남자를 향해 좋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거두었다 할 뿐.
아무도 탑승에 실패한 여행객에게 신경쓰지 않을 때, 취객 남성은 낑낑대며 그를 위해 문을 열어주려고 했다. '으윽, 아프겠다...' 싶을 정도로 단단히 손이 끼었지만, (그리고 실제로 정말 아픈 표정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힘을 주어 결국 문을 열었다. 여행객이 '땡큐 땡큐'하며 고마움을 표할 때조차도 별 대답 않고 마저 통화를 이어나가는 극강의 츤데레 남성을 더 이상 나쁜 사람이라고만 볼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여행객이 이번 열차를 놓침으로써 더 큰 것들을 놓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가령 비행기라든지, 마지막 기차 편이라든지 등등. 대수롭지 않게 '다음 열차 타면 되지 뭐~' 하며 넘겼던 열차 안의 다른 승객들(나 포함)과 달리 그 남자는 취한 와중에도 적극적으로 선의를 베푼 것이 아닌가. 뭐 열차 안에서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으로 민폐를 끼치긴 했지만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 단순히 불쾌한 행동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남자의 모든 생활방식과 인생을 평가하려 했던 쪽은 나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선행에 소스라치게 놀랐고, 지금까지도 생생하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여행이 시작되자마자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얻었다. 내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세계에 발을 들임으로써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새로운 생각을 얻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편견' 이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는 이상, 여기가 한국이건 영국이건 과테말라건 내가 보는 세상은 똑같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나' 의 변화이지, 내가 서 있는 곳의 변화가 아니었다.
"이봐, 제이크."
그는 카운터 위에 몸을 내밀면서 입을 열었다.
"넌 인생이 깡그리 달아나 버리고 있는데, 그걸 조금도 이용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벌써 인생을 절반 가까이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느냐는 말이야!...(중략)...어쨌든 난 남아메리카에 가고 싶어."
"이봐, 로버트, 다른 나라에 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나도 벌써 그런 짓은 모조리 해 봤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 다닌다고 해서 너 자신한테서 달아날 수 있는 건 아냐. 그래 봤자 별거 없어."
- 어니스트 헤밍웨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민음사, p24
여행을 결심하기 전에 헤밍웨이의 이 구절을 읽었더라면, "이게 뭔 소리야" 하며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전까진 '인생이 깡그리 달아나고 있다'는 로버트 콘의 생각에 더욱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런던 첫날의 깨달음을 통해 나는 이 구절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여행의 의미는 없는 것일까? 매우 아니다. 나만 해도 새로운 깨달음을 벌써 런던 지하철에서 얻지 않았는가! 사람은 자기가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들이 많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기존 사고의 틀을 깨부수는 것' 이지만, 여행 중에는 그 틀을 깰 일이 훨씬 많아진다.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물과 사람들을 접하면서, 기존의 사고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매일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행에 앞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딱 한 가지는, 어떤 새로움도 거뜬히 받아들일 만한 '열린 마음' 이 아닐까.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1899~1961).
대표작 <노인과 바다>로 195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그의 첫 소설이다. 주인공 제이크는 전쟁에서 부상으로 성 기능을 상실한 인물로, 이탈리아 전방 부대에서 심한 부상을 당한 뒤 고향에 돌아온 헤밍웨이의 페르소나가 담겨 있다. 전쟁이 끝난 뒤 목적 의식을 잃고 방황하는 그 시대 청춘들을 향한 이야기이다. 축제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듯, 전쟁이 끝난 후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제의식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