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초봄, 썸이 깨진 이유

'톰 소여의 모험' 작가 마크 트웨인의 격언을 되새기며

by 김설

타던 남자가 있었다. 프로젝트에서 동료로 먼저 알게 되었기에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나의 연애관을 궁금해 했다. 자신의 연애 파트너가 되기에 내가 적합한지 아닌지 판단할 재료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땐 내 감정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편하게, 그가 물어보는 대로 솔직하게 다 말했다.


"난 폴리아모리나 오픈 릴레이션쉽(다자 간 비독점적 연애) 존중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유한다는 생각 자체가 오히려 어색한 것 같아.”

“난 질투 같은 거 안 해.”

“난 연애가 끝나면 깔끔하게 정리하는 편이야.”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가 보는 ‘나’는 연애에 관해 한없이 쿨한 사람이었다. 사람 때문에 마음이 찢어져 본 적이 있었고, 한 사람에게 죽자고 매달려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곧 모든 게 부질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곤 했다. 이 사람 아니어도 세상에 만날 사람은 널렸다,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아픔은 없다, 인연이 아니면 몸서리를 쳐도 이어지지 않는다, 등등의 깨달음으로 인해 사랑과 사람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그간의 숱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KakaoTalk_Photo_2020-07-23-15-47-30.jpeg 그와의 추억이 깃든(?) 벚꽃사진. 잘 살아라, 행복했다...(별)

적어도 나는 이렇게 '사랑에 쿨한 사람'이 된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 한달도 채 안되어 그에게 푹 빠져버렸다. 누군가를 이 정도로 갈망하는 감정이 너무 오랜만이었다. 사람으로서 이성으로서 마음 놓고 좋아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오랜만이었다. 외적으로 이상형이 아니었기에 더욱 방심했던 걸까. 내 마음을 남김없이 다 줘버리자, 그간의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쌓아 올린 ‘쿨함’들은 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유할 수 없다며, 그래서 질투를 잘 안 한다던 나는 질투의 화신이었다. 그가 다른 여자와 단둘이 있는 게 불안하고 싫었다. 우연히 마주친 그의 구여친을 보고 하루 종일 신경 쓰였다. 결국 타이밍이 안 맞아 썸이 깨졌지만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그를 정리하지 못했다… 얼마나 생생한 인지부조화의 현장인가.


말해 놓은 게 있으니 쿨하지 못한 집착을 드러내기엔 한계가 있었다. 나조차도 ‘나답지 않다’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래도 속상한데, 티를 안 내려고 하니 마음이 지옥이었다. 내 연기 실력으론 완벽하게 감출 수도 없었다. 사소하게 툴툴대는 순간이 많아졌고, 이유를 모르는 그는 아마 내가 변덕이 심한 조울증 환자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겐 소유욕이 강하다고, 얻을 수 없는 사람이라 인정하고 돌아서는 거 잘 못한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고 싶고 갈망한다고, 그에게 말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워 지금까지도 계속 뒤를 돌아보고 서 있다. 인연에 대해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소극적인 태도 말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내 걸로 만들고 싶다’며 강하게 요구했다면 어땠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는, 뜨뜻미지근한 나의 온도에 차게 식어버린 그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불태울 수 있었을까.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 마크 트웨인
내가 나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확신에 차 있었다. 비극의 시작점이었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한다.
따라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기대할 수도 없다.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해 명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사람의 몸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세포들이 죽고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세포의 종류에 따라 주기는 가지각색이나, 위장 상피세포의 경우 24시간 안에 모든 교체가 끝난다고 한다.) 이전과 다른 새 세포들로 교체되고,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같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생물학적 구성으로 전혀 다른 존재일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은 항상 변한다는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며, 그렇기에 예전의 나로 말미암아 지금의 나를 규정하는 것은 그저 '추측'에 불과하다. 이 사실을 모르고, 나에 대한 추측을 섣불리 상대에게 전하면서 일은 틀어지게 된다.


따라서 건방 떨지 말자. 나조차도 나를 모른다.


231px-Mark_Twain_Sarony.jpg 출처: 위키백과
새뮤얼 랭혼 클레먼스(1835~1910).

'마크 트웨인'이란 필명으로 활동한 미국의 소설가. 미국 미시시피 강을 배경으로 한 미시시피 3부작 <톰 소여의 모험>, <미시시피강의 추억>, <허클베리핀의 모험>이 대표작이다. 자유로운 영혼들을 주 캐릭터로 다루어 미국과 자유로움에 대한 찬양적 내용을 썼다. 말년에는 미국 노예제도의 모순에 대해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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