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지 않아서, 탈조선을 탈(脫)하기로 했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 두 가지 행복의 의미

by 김설

년 봄, 지독한 열병과도 같았던 유럽여행을 다녀와서 어학연수를 결심했다. 예상 비용과 기간, 앞으로의 인생 로드맵을 꼼꼼히 계획해 담은 3장짜리 편지를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취준 전 졸업 기념으로 유럽 보내줬더니 헛물 들어왔다고 노발대발하셨다. 26살이란 나이는 한국에서 취업 적령기(?)라며 주변에서 만류했다. ‘반대하면 내 돈으로 가면 되지.’ 모아둔 돈은 여행비로 탈탈 털었던 상태였기에, 일단은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하자 마음먹었다.

IMG_2921.jpg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바르셀로나. 스페인의 자유롭고 정열적인 분위기에 '여기 살아봐야 겠다'는 담대한 포부를 안고 귀국했지만 이루지는 못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언젠가는!

다시 마주한 현실에 적응하면서, 때맞춰 ‘유럽 뽕’이 빠지면서, 어학연수라는 담대한 포부는 점점 옅어졌다. 알바를 하면서 ‘일자리가 불안정한 서비스업 계약직으로 살아가는 삶’을 마주했다. 현실이 되면 낭만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겐, 'PD'라는 오래되고 명확한 꿈이 있었다.

이성을 되찾고 보니 직시할 수 있었다. 잠깐 가졌던 일탈에 대한 열망은, 본격적인 취준에 앞서 도망치고 싶었던 두려움에 기반하고 있었다. 자유로운 방랑의 삶도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2년 동안 오로지 방송국PD를 꿈꾸며 살아온 과거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한 번은 해봐야 후회가 없지 않을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어쩌면 현재의 불행을 미래로 미루는 일이었다.


의지를 다잡아 갈 즈음에,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를 읽었다. 내가 한때 열망했던 탈조선의 꿈을 주인공이 이루는 과정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느끼고자 했다. 주인공이 갑갑했던 지난날에서 벗어나 시원하게 호주로 떠나는 사이다 전개에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읽을수록 작가는 내게 '너 같은 사람은 탈조선이 답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 이유가 아래의 대목에 있다.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지명이가 그런 애야. ‘내가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는 기억에서 매일 행복감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래서 늦게까지 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남들보다 잘 버틸 수 있는 거야.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그게 엘리야. 걔는 정말 순간순간을 살았지.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민음사, P.184~185


책은 행복의 유형을 명확히 구분 짓고 있었다. 주인공에게는 자산성 행복도,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했다. 한국에서는 필요한 만큼의 현금흐름성 행복을 찾기 어려웠고, 그렇다고 자산성 행복을 창출하기엔 그 자신의 목표의식과 스펙이 부족했다. 호주에서 그는 적당한 일로 만족할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하다가, 마음 맞는 회사에 들어가 적당히 자산성 행복도 누린다.

나는 주인공과 다르다. 목표한 바를 반드시 이루어 큰 행복을 느끼고, 성취했다는 사실에서 매일매일의 행복을 ‘뜯어먹고’ 사는 쪽이다. 자산성 행복의 이자가 꽤 높은 편이다. 한 번의 성취와 그 대가로 60년을 행복하게 살 수는 없다. 자산성 행복의 중요한 포인트다. 필터를 교체하듯, 앞선 성취의 ‘약빨’이 떨어질 때쯤 그 다음 성취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성취는 앞선 성취에 비해 큰 것이어야 한다. 전형적인 중독자의 삶이다. 작가는 책에서 '지명'이란 인물을 통해 나를 콕 집어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주위의 편견은 성취 지향적 사람에게도 쏟아진다. 13년째 꿈을 향해 묵묵히 걷고 있는 내게 주위에서 한 마디씩 보탠다.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너와 맞지 않는 일인 거 아니냐’, ‘융통성을 발휘해보는 건 어때’, ‘인생의 모든 일이 네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등등의 말을 들었다. 걱정의 옷을 입은 참견이다.

그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나 같은 사람에겐 일단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이루는 게 인생에 좋다. 목표한 바는 반드시 이뤄 온 내게, 고꾸라진 꿈이 있다는 사실은 마음 한켠에 뿌리처럼 깊게 박힐 것이다. 패배감, 우울함, 주눅 등의 부정적 감정들이 그 뿌리를 타고 가지처럼 뻗어나갈 것이다. 물론 이번 기회에 실패 후 현실과 타협한 삶의 가치를 깨달을 수도 있다. '실패 그 이후의 삶도 내게 나쁘지 않았어’라는 또 하나의 진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엔 항상 씁쓸함이 따라올 것이다. 성취의 단맛에 길들여진 미각은 약간의 씁쓸함에도 몸서리치게 되어 있다.


나는 자산성 행복에 익숙한 사람이었기에 탈조선을 꿈으로만 남겨둘 수 있었다. 극도로 성취지향적인 이 사회에 꼭 맞는 인재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확실히 살기에 부담스러운 사회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어디에 살 지' 보다는 '어떻게 살 지'가 먼저 선택되어야 한다. 한국이건, 외국이건,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고민해야 우리는 어떤 곳에서든 주체적으로 '행복의 질'을 결정할 수 있다.


자신이 어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단순히 ‘탈조선이 좋다더라’ 해서 무작정 떠난다 해도, 나 같은 성취 중독자들은 그곳에서도 여전히 성공에 목말라 할 것이다. 맘 편히 소확행을 얻어야 사는 사람이라면, 남들 시선 따위 쿨하게 제쳐버리고 과감하게 떠나는 것도 좋은 방편이다. 내가 누군지 알 때 비로소 남들의 어쭙잖은 참견을 막아내고 내 행복을 지켜낼 수 있다.


233px-%EC%86%8C%EC%84%A4%EA%B0%80_%EC%9E%A5%EA%B0%95%EB%AA%85.JPG 출처: 위키백과
장강명(1975~)

대한민국의 SF소설가.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 <2세대 댓글부대>로 제주4.3 평화문학상,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4대 문학상을 모두 평정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한국의 고착화된 계층 구조로 인해 날개가 꺾인 2030 청춘들을 소재로 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SF소설을 주로 쓴다.

<한국이 싫어서> 또한 구조적 결핍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꾸려나가는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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