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준현 May 10. 2020

여자 혼자 강릉, 둘째 날

먹고 걷고 사색하기

강릉에 도착한 이튿날의 해가 밝았다. 이번 강릉 여행의 목적은 알차게 먹고, 알차게 걷고, 알차게 사색하는 것이었다. 첫째 날이 먹부림의 연속이었다면 둘째 날부터는 다른 것에도 충실하기로 했다.


둘째 날 일정은 아래와 같다.

10:00-11:00 금학칼국수

11:00-12:30 봉봉방앗간에서 커피 한 잔 (&베이커리 가루의 빵)

12:30-14:30 초당 순두부마을에서 차현희순두부청국장 & 순두부젤라또 먹기

15:00-17:00 오죽헌 & 선교장

17:00-18:00 남향막국수

18:00-20:00 경포대, 경포호수 및 경포해변 산책

20:00-22:00 카페 기와


#금학칼국수

강릉 별미인 장칼국수를 먹으러 아침부터  금학칼국수로 향했다. 아침이라 그런지 웨이팅이 길지 않아 바로 자리를 잡고 칼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진한 다진 양념 맛을 기대했는데 내 기준으로는 특별한 맛이 나진 않았다.


준현 별점: ★★★☆☆

장칼국수 1인분에 7,000원인데 큰 기대를 안 하고 먹으면 나름 가성비 있는 메뉴이다. 고추장 맛이 나지 않고 깔끔하니 맛있다는 사람도 있으니, 깔끔한 맛을 좋아한다면 가보는 것도 좋겠다.


#베이커리 가루

금학칼국수에서 살짝 실망을 하고 바로 베이커리 가루로 향했다. 강릉 시내나 관광지에서 벗어난 주거지에 있는데, 빵집에 들어서자마자 기분 좋은 탄수화물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여러 종류의 숙성 식빵을 포함해서 다양한 빵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다 맛있어 보여서 뭘 고를지 결정장애가 올 뻔했다. 지나가던 점원을 붙잡고 뭐가 제일 잘 팔리냐 물어보니 원준이 엉덩이 빵, 마늘빵, 그리고 몽블랑을 꼽아줬다. 몽블랑에는 관심이 없어서 추천받은 빵 두 개와 찹쌀 꽈배기, 생크림 스콘, 레몬 파운드 케이크를 추가로 샀다. 빵집에 따로 앉아 먹을 장소가 여의치 않아 포장을 한 후 다른 곳에서 조금씩 빵을 먹었다.


준현 별점: ★★★

맛있는 빵집. 강릉 가면 또 들를 거다. 특히 맛있었던 세 가지는 아래와 같다.

- 원준이 엉덩이 빵: 회사에 아는 부장님과 이름이 같아서 친근했던 빵.. 안에 우유 크림이 가득 들어있고 빵이 쫀득하고 부드러워서 먹고 있으면 정말 보송보송한 아기 빵댕이가 생각난다.

- 레몬 파운드 케이크: 위크엔드 케익이라는 이름으로 팔았던 것 같다. 레몬의 상큼함이 주말을 밝혀주는 느낌이라 그런가. 꾸덕하고 촉촉한 파운드 케이크에 레몬의 상큼함이 더해져, 천천히 음미하며 먹게 된다.

- 생크림 스콘: 우유 대신 생크림을 넣어 만든 스콘이라 그런지 안이 촉촉하고 고소하다. JMT!


#봉봉방앗간

영화제작자, 미디어교육 전문가,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극영화 감독 4명이 폐업한 방앗간개조해서 2011년에 문을 연 곳. 사장님들의 성향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공간이자 동네 사랑방으로, 1층에는 각종 아트 소품이 진열되어 있고 2층은 갤러리처럼 구성되어 있다.

커피 물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기 커피 진짜 맛있다. 강렬한 새콤달콤함을 원해서 직원에게 구지케차 원두를 추천받았는데, 마시고 나서 그전까지 커피 맛을 다 잊어버렸다. 다른 원두 핸드드립도 마시고 싶었는데, 여러 카페를 가보느라 여기 또 못 들른 게 살짝 후회될 정도다.

2층에서 열린 사진전은 조용히 감상하기 좋았다. '사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라는 주제로 여러 작가들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 작가들의 시선을 빌려 세상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여기에 친절한 직원, 아늑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장소에 사랑스러움을 더한다. 몇 시간이고 머물러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준현 별점: ★★★

강릉에서 방문했던 카페 중 단연 최고. 커피맛과 분위기 모두 잡았다. 또 갈 거다. 나만 알고 싶은 공간이지만 여러분과 나눈다 (이미 유명합니다!) :)


#초당 순두부마을: 차현희순두부청국장 & 순두부젤라또

봉봉방앗간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부린 후 초당 순두부마을로 향했다. 여러 맛집 중 차현희순두부청국장에 가보기로 했다. 메뉴가 기본 2인분이라, 그 전날 급히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같이 먹을 사람을 구했던 터다. 12시 반에 도착하여 웨이팅 표를 뽑으니 앞에 수십 팀이 있었다. 대기에 1시간 반 걸린다는 소리를 듣고 잠시 포기할까 싶었지만, 시간이 뜬 겸 맞은편에 있는 순두부젤라또를 먹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순두부젤라또 집에서는 순두부젤라또, 인절미젤라또, 그리고 누텔라젤라또를 시켰다. 원래 흑임자젤라또를 시키고 싶었는데 품절이었다. 순두부젤라또는 깔끔한 생크림 맛인데 먹다 보면 구수한 두부 맛이 올라온다. 인절미젤라또는 대놓고 나 고소하다고 몸부림치는 맛이다. 차현희순두부청국장 기다리는 동안 앞에서 시간도 때울 겸 먹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웨이팅은 30분 정도 걸렸다.

젤라또 먹고 조금만 기다리니 차현희에 자리가 났다. 두 가지 메인 메뉴 중 뭘 시킬지 고민했지만, 둘  다 먹고 싶었기에 셋이서 순두부전골 (2인분)과 청국장 (2인분)을 시켰다. 강릉에서 딱 한 식당만 가라고 하면 나는 여기를 가겠다. 부슬부슬하고 신선한 순두부, 냄새 없이 고소한 청국장, 우유같이 부드러운 콩비지까지 너무 맛있었던 곳. 옆 테이블에 앉았던 강릉 토박이 할아버지의 원픽이라고 하는데 (이 할아버지가 다른 식당들도 몇 곳 추천해줬다) 웨이팅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준현 별점: ★★★

별점 5개짜리 맛집과 카페들을 연속으로 만나다니, 둘째 날은 정말 운이 좋았다. 강슐랭가이드의 원픽일만한 곳이다. 청국장은 구수한 냄새와 진한 맛을 선호하는 이들에겐 슴슴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내 기준에선 고소하고 좋았다.


#오죽헌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생가. 우리나라 두 지폐의 얼굴들이 살았던 곳에서 그들의 숨결을 잠시나마 느끼고자 방문했다. 3,000원의 입장료를 내면 오죽헌을 둘러싼 공원, 오죽헌, 율곡기념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율곡기념관에 있는 전시물들은 진품과 가품이 섞여있는데 신사임당, 이이, 이우, 이매창 등 한 가족의 작품과 글씨를 감상할 수 있다. 각각의 그림 스타일이나 필체에 그 사람의 성품이 드러나 보이는데, 신사임당의 그림과 글씨는 '정갈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흐트러짐이 없는 깔끔한 선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여느 갤러리의 벽에 걸려있다고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 한참 바라보았다.


#선교장

오죽헌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걸으면 선교장이 나온다. 선교장(船橋莊)은 순우리말로 배다리 마을인데, 예전에는 앞에 경포호수가 있어서 배다리를 건너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효령대군의 후손이 짓고 10대에 이르도록 증축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모습을 띠고 있다. 하인의 집까지 더하면 300칸 이상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123칸이 남아있다. 압도적인 규모의 주택을 둘러보며 한옥의 미를 흠뻑 감상할 수 있다.

9시~16시 사이 매 정시에 문화관광해설이 있는데 운이 좋아 16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해설 중 특히 인상이 깊었던 점은 선교장 주인 집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었다. 이들은 강원도 일대에 대농장을 개간하여 농민들에게 제공했고, 흉년에는 곡식을 이웃에게 나누어주며 베푸는 집안의 표상이 되었다. 또한 큰 사랑채 뒤에 초가집을 지어, 주인들이 이곳에 가끔 머물며 소작농들의 애환을 느끼고 그들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렇듯 이웃과 상생하며 존재해왔기에, 조선 말기에 농민 봉기가 일어날 때 많은 부잣집들이 불타 없어졌지만 선교장만은 소농들의 보호 하에 보전될 수 있었다고 한다.  

진정한 부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남향막국수

선교장을 둘러본 후 경포대까지 삼십 분 남짓 걸었다. 땡볕에 내내 걸었던지라 경포대 근처 남향막국수에 배를 채우러 갔다. 물막국수와 메밀전병을 시켜 먹으며 잠시 쉬어갔다.  


준현 별점: ★★★

강원도 하면 막국수와 메밀전병을 빼놓을 수 없다. 물막국수는 겨자를 안 넣어도 적당히 간이 된 국물에 감칠맛이 돌았다. 면도 적당히 쫄깃해서 식감을 더했다. 메밀전병은 바삭, 촉촉한 피 안에 새콤한 김치 맛이 일품이었다. 비빔막국수가 메인인 것 같은데 비빔도 먹어볼 걸 살짝 후회가 된다ㅎㅎ


#경포대, 경포호수 산책

경포대와 경포대에서 바라본 경포호수 전경

남향막국수에서 살짝 이른 저녁을 먹고 경포대로 향했다. '경포대'라고 하면 보통 경포 해변을 떠올리는데, 실은 이 누각이 경포대다. 고려시대에 처음 지어진 이곳은 관동팔경(관동지역에서 경치가 좋은 여덟 곳)에 속하는데 태조, 세조뿐 아니라 여러 시인들이 들러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경포대에 잠시 앉아 맞은편 경포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경포호수 주변 산책로

경포대에서 내려와 경포호수를 따라 걸었다. 경포(鏡浦)는 수면이 거울같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호수가 하늘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 같아 이름을 적절히 지었다고 생각했다. 날이 맑고 하늘이 파래서 호수가 더 청명하게 빛났다. 호수를 따라 긴 산책로가 나있는데 호수에 있는 동식물들, 가로수, 해송, 각종 조형물을 보며 노닐기 좋다. 도보뿐 아니라 자전거 도로도 나있고 주변에 자전거 렌털업체들이 있으니 걷기가 부담스럽다면 자전거를 타보는 것도 좋다.


#경포해변, 강문해변 산책

경포해변과 솟대다리

경포대에서 내려와 경포호수를 따라 삼십 분 남짓 걷다 보면 경포해변이 나온다. 화창한 날씨에 일몰 시간이 겹쳐 바닷가가 파스텔톤으로 빛났다. 은은히 빛나는 물결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백사장에 앉아 주변을 감상했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을 따라 작은 물결이 끝없이 몰려왔다가 빠져나가며 시원한 파도 소리를 뽑아냈다. 잠깐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해보기도 하고 일렁이는 물결을 보며 멍을 때리기도 했다. (이를 명상이라 포장해본다..) 문득 해변가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요가와 명상을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문해변 근처의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풍경

바닷가의 풍경과 파도 소리를 충분히 감상한 후 강문 솟대다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리를 지나 강문해변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가 지고 해변가 가게들에 하나둘씩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솟대다리 근처 오리 둥지라는 곳이 눈에 띄었다. 솟대를 오리로 형상화하여 1층은 '오리 둥지'라는 수공예품 매장으로, 2층은 '오리 카페'라는 카페로 운영하고 있었다. 1층에 개성 넘치는 수공예품이 많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강릉이라 쓰인 마그네틱을 기념으로 샀다.


#카페 기와 

둘째 날 마무리는 초당마을에 있는 카페 기와에서 마무리했다. 해가 지고 강문해변에서 20분 정도 뚜벅뚜벅 걸었다. 한옥을 카페로 잘 가꿔진 정원,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며져 있는 내부, 잔잔한 음악이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증폭시킨다. 매장 카운터에는 세 개의 시그니쳐 메뉴가 있었다: 블랙라떼, 녹두꽃라떼, 꽃분홍라떼. 매장 점원에게 제일 잘 나가는 메뉴를 물었으나 '취향에 따라 선호 메뉴가 다르다'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얻었다. 살짝 고민 끝에 녹두꽃라떼를 시켰다.


준현 별점: ★★★

설명에 충실한 커피로, 초코 향이 살짝 느껴지며 라떼와 함께 고소한 녹두 알갱이를 씹어먹는 맛이 있다. 차분한 한옥의 분위기와도 어울리는 커피였다.


둘째 날은 먹고, 걷고, 사색하는 데 충실한 하루였다. 만보기를 보니 약 2시간 동안 2만보를 걸었더라. 나는 걷기를 움직이는 명상(moving meditation)이라고 보는데 혼자 걸으며 걷기 자체에 몰입해보고, 주변을 천천히 감상하고,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바라보기도 했다. 커피를 평소보다 많이 마셨지만 몸과 마음을 알차게 쓴 덕인지 푹 잘 수 있었다. 다음 날도 파란 바다와 멋진 풍경을 한껏 감상할 꿈을 꾸며..

매거진의 이전글 여자 혼자 강릉, 그 첫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