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사는 집

by 시옷

우리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해서 틈나는 대로 만지고 싶은 고양이. 밝은 황토색 털은 등 전체를 덮었고 턱에서 배로 이어지는 부분은 아주 보드라운 하얀색 털로 이루어져 있다. 사뿐사뿐 내딛는 발에는 발등을 덮을 정도의 하얀 털이 나 있어 꼭 흰 양말을 신은 것처럼 보인다. 이름은 랑, 외자다.

랑이를 데려오는 날, 서둘러 퇴근하고 잠실역으로 향했다. 그날은 사람 많은 2호선도 전혀 싫지 않았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저녁 8시. 나는 긴장했는지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았고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아 유자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아직은 아기 고양이니까 딱딱한 이동장보다 부드러운 천 종류로 감싸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노란색 에코백에 극세사 무릎담요를 챙겨갔다. 목에 노란색 털실 목걸이를 한 랑이는 거실 수납장 선반에 형제들과 함께 있었다. 내 손바닥만 한 크기였고 정말 가벼웠다. 무릎담요로 감싸 무릎에 놓으니 꼭 공기를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임시보호 집에서 불리던 노랑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랑’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랑’은 격 조사로 쓰일 때 무언가를 함께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올해 8월은 랑이가 태어난 지 1년째 되는 해다. 작년에 집으로 데리고 오면서 한 살이 되면 꼭 생일 축하를 해주고 싶었다. 우리 가족끼리 보내는 작은 의례랄까. 동물병원에서 8월쯤 태어난 것 같다고 하기에 의미심장한 날인 8월 15일에 랑이의 생일을 축하해주기로 했다. 랑이가 평소에 좋아하는 습식 캔에 연어 트릿을 두른 뒤 조공 게살 츄르를 뿌려줬다. 역시 잘 먹었다. 양이 좀 많았는지 두 번에 걸쳐 먹었다.

랑이를 만나기 전에는 털 많은 동물과 함께 사는 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없다. 어릴 적 얼마간 함께 살았던 유기견을 무서워했던 시간 때문인지, 아무리 작은 강아지라도 그 앞에 서면 왠지 긴장돼 존댓말을 해야 할 것처럼 쭈뼛댔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에게 아주 가끔 밥을 챙겨주면서 털 많은 동물과 함께 사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몇 가지 계기로 마음이 서서히 움직였던 것 같다. 결혼 전에 살았던 아파트 단지에 갑자기 나타난 하얀 고양이 실버벨, 신석의 연구소 마당에서 발견된 새끼 고양이, 그리고… 한여름에 바짝 말라죽어가던 고양이까지. 특히 철 구조물 위에서 죽어가던 고양이에게 물을 적셔주던 일은 지금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고양이의 죽음을 목격한 뒤 나도 잠깐 쓰러지고 말았는데, 한여름 정오에 오랫동안 서 있기도 했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애가 타 기운이 빠져버려서 그랬던 것 같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반려인은 나와 누룽지 백숙을 먹으려고 나왔다가 고양이의 죽음과 나의 기절을 목격하고 말았다. 자상한 신석에게 심심한 위로를. (복 받을 거야)

그 이후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작은 생명을 만난다면, 할 수 있는 만큼 돌봐야겠다고 나도 모르게 결심했던 것 같다.

지금 내 곁에는 예민하고 독립적인데 어리광 많은 고양이가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닌다. 랑이가 와서 좋다, 정말 좋다. 가끔 고양이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나라는 사람이 고양이가 함께 살고 싶은 종인 지는 잘 모르겠다. 랑이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 내가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랑이의 행동으로 어렴풋하게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랑이는 내가 집에 있을 때면 늘 한 뼘 떨어진 곁에서 뒹굴거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게 꾹꾹이를 하고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 때면 슬쩍 신발장 근처에 나와 있기도 한다. 이만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반려인 맞겠지?

나와 함께 사는 동안 랑이가 만족스럽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여전히 미숙한 부분이 많지만, 랑이를 통해 다른 종과 함께 사는 일의 무게와 기쁨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내게 와줘서 고마워. 영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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