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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나 May 07. 2019

PD수첩, 이 시대의 진정한 대간을 꿈꾸며

 언론은 역사 속에 존재했을까? 정답은 그렇다. 신라, 발해 때부터 등장한 언론은 고려시대에 대간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대간의 주 업무는 관료를 감찰하거나 임금에게 간쟁ㆍ봉박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간쟁'이란 여러 명이 찾아가 임금의 행동을 고치도록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말하고, '봉박'은 임금의 지시 사항이 합당치 않을 때 그 문서를 되돌려 봉합해 보내는 것을 말한다. 언론은 이처럼 왕권 견제를 통해 정치운영의 균형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후, 언론은 정도전이 왕도 정치를 꿈꿨던 조선으로 오면서 사간원이라는 이름으로 더욱더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게 된다.  


 이후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는 제도로 활발히 언론 활동이 펼쳐졌다면 가장 이상적이었겠지만, 예상하다시피 그 길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언론은 늘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이며, 특히 권력을 가진 임금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태조 이성계의 아들 태종은 중앙 대신들이 모두 모이는 아침 조회에 사간원 언관들의 참석을 금지시키거나 발언 기회를 박탈했다. 심지어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면박을 주기도 했다. 언론에 대한 탄압은 영화 <관상>에서 이정재가 수양대군으로 연기했던 세조에 이르러서 더욱 가혹해진다. 이 절대 독재의 시대에 사간원에는 간쟁이 없어졌고, 언론기관들은 정권 유지에 필요한 일들만 수행하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절대 권력자의 군주 조선의 왕들에게 언론이 불편한 존재였던 것처럼, 현대사회의 권력자들에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의 권력자는 누구인가. 권력이란 타인 또는 조직단위의 행태를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즉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원리대로라면 주인인 국민이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존재임이 합당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하다. 언론에 불편해하는 자들은 정치인, 종교지도자, 재벌 등 다수의 국민들과 조금 다른 이해관계에 있는 자들이다. 언론도 때로는 그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언론은 권력과의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며, 권력을 파헤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그러한 언론의 역할에 충실한 프로그램을 떠올렸을 때 MBC의 <PD수첩>은 늘 가까운 자리에 존재했다.

  <PD수첩>은 지난 1990년 첫 방송되며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를 모토로 다수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왔다. <PD수첩>하면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광우병 위험성 보도다. 2008년 <PD수첩>이 미국산 소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하자 당시 농림수산식품부는 제작진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제작진을 체포하는 등 강제수사를 동원했다. 인터넷에는 관련 글들이 검색어에서 삭제되는 등 언론 통제가 이루어졌다.

또, 2010년 4대 강 관련 보도 때는 정부와 친밀한 MBC 경영진의 부적절한 개입으로 방송 송출이 보류되기도 했다. 이후 MBC는 여러 논란과 부침을 겪었다.  2017년에 <PD수첩>은 문화방송 총파업으로 결방에 들어갔다가 그 해 12월 ‘MBC 몰락, 7년의 기록’으로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지금의 <PD수첩>은 과거의 명성과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작년 한 해 동안 <PD수첩>은 시대의 다양한 권력들을 비판하며 불편한 진실을 위해 달렸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내용이다. 성역으로 여겨진 종교 영역 속 썩고 있는 비리들과 문제들을 파고들어 수면 위로 올린 점은 과히 인상적이었다. '큰스님께 묻습니다'는 조계종단 수뇌부의 부도덕함과 비리를 고발하며 한국불교언론인협회로부터 만해언론상 대상을 수여받았다.


'명성교회 800억의 비밀' 역시 만연하던 기독교계의 부자세습과 비자금 문제에 대해 경종을 울렸던 보도였다. 권력과 반대편에 선 덕분에 <PD수첩>은 작년 한 해 동안 11건의 소송과 다수의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에 휘말렸다. 그리고 그 신청들은 모두 기각되며 정상적으로 방송을 이어나가고 있다.


 <PD수첩>은 계속하여야 한다. 언론은 개인을 대신해 권력과의 불편한 관계에 서야 한다. 그리고 권력을 파헤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명망 있는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 지성과 개혁의 의지를 보이는 일은 한 개인이 해내기 쉽지 않다. 권력을 손에 쥐었을 때 사람은 본성을 드러낸다. 권력은 늘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권력은 권력 속의 모순과 문제 있는 행동들을 공중의 이익과 같다고 늘 합리화시킨다. 권력에 속해 있는 개인은 늘 그래서 선의의 피해자다. 과거의 대간과 사간원처럼 권력을 비판하고,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언론의 견제가 존재하지 않는 한 사회는 늘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PD수첩>은 그 균형의 저울을 평행선으로 맞추기 위한 주춧돌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한쪽은 권력이고, 다른 쪽은 권력에 피해받는 다수의 국민들이다. 그 대등한 관계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정상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살아갈 수 있다.


 조선시대 숙종 시절, 이관명이라는 자가 암행어사가 되어 영남지방을 시찰한 뒤 숙종에게 보고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이관명은 통영의 섬 중 하나가 임금 후궁의 소유로 핍박이 심해 지켜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며 직언을 한다. 이에 숙종은 화를 내었고, 이관명도 굽히지 않고, 지금까지 이를 고하지 않은 자들을 법으로 다스려 달라고 강경하게 나간다. 이에 숙종은 화를 벌컥 내며 교지를 쓴다. 그리고, 그 교지를 읽어내리는데, 정 5품인 이관명을 2품으로 특급 승진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숙종은 이어 "경의 간언으로 과인의 잘못을 깨달았으니, 앞으로도 그와 같은 신념으로 짐을 일깨워주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숙종과 같이 비판이 받아들여지는 한층 더 성숙한 권력과 사회를 꿈꿔본다. 그리고 이관명과 같이 <PD수첩>이, 그리고 다수의 언론이 진정한 대간으로 사회를 일깨우기를 조금 더 꿈꾸며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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