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은 때론 무심하다. 한때 가장 좋아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MBC로 채널을 돌렸었다. <무한도전>과 함께한 13년의 토요일은 그렇게 흘러갔다. 논두렁에서 새참 배달할 때는 눈물을 흘리며 깔깔 웃어댔고, 여름이면 가요제의 신나는 노래들을 들으며 흥얼거렸다. 내가 자라나는 만큼 TV 속 멤버들도 성장했다. 연말이 되면 그들이 상을 받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멤버들은 대중에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무한도전>은 장수 프로그램으로 영원할 줄 알았다. 대중들에 습관처럼 스며들었다. 나도 많은 이들이 그랬듯 기계적으로 토요일만 되면 채널을 돌려댔다. 그렇게 무미건조했던 어느 날, <무한도전>은 갑작스럽게 종영했다.
이별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매주, 매년 <무한도전> 내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김태호 PD의 입장도 이해가 됐다. 반 발자국 앞선 예능으로 성공한 PD의 입장에서, '한 물간 예능'이라는 평과 포맷의 권태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종영 후, <무한도전> 멤버들은 다른 예능으로 자주 볼 수 있어 서운함이 덜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000이라는 타이틀이 아닌 그들을 바라볼 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 보인 것은 기분 탓만은 아녔을 것이다. 특히 무도의 중심이었던 MC 유재석이 제일 그러했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들이 일주일에도 수십 개씩 쏟아져 나왔고, 새로운 대세 예능들이 속속 탄생했다.
오랜 휴지기를 지나 <무한도전>이 추억으로 남겨질즈음, 김태호 PD가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유재석과 함께. 김태호X유재석 조합은 언제나 <무한도전> 일 줄 알았는데, 그의 선택은 <놀면 뭐하니?>라는 다소 자조적인(?) 제목의 신규 예능프로그램이었다.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부터 시작한 카메라가 릴레이로 새로운 인물에게 전달된다는 콘셉트이다. 사실 릴레이 카메라 외에도 <놀면 뭐하니?>는 향후 정해진 틀없이 다양한 콘셉트로 전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릴레이 카메라는 전달자의 영상이 유튜브로 공개되며, TV로는 유재석을 필두로 한 게스트들이 해당 영상을 지켜보는 장면까지 함께 공개된다. 유튜브, 1인 방송, 관찰 예능, 인터렉티브 방식. 그야말로 시대의 대세 트렌드들이 짬뽕되어 어느 곳에도 없는 신규 프로그램이 탄생한 것이다.
프로그램이 베일을 벗은 후, 상반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확실히 그랬다. <놀면 뭐하니?>는 신선함과 산만함의 그 경계선 어디쯤에 있었다. "재미있다", "날 것 그대로의 느낌" 등 의견이 다양했다. 아직 1회만 방영되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의 콘셉트는 분명하다. 정형화되지 않은 틀을 추구하겠다는 것. <놀면 뭐하니?> 1회 시청 후 떠오르는 키워드를 트렌디(Trandy), 친구(Friend), 재미(Fun)로 정리해보았다.
첫 방송 이후, 많은 댓글에서 "무한도전의 재탕", "무한도전을 추억할 수 있어서 좋네요"라는 글들을 볼 수 있었다. <놀면 뭐하니?> 1화에서는 유재석, 하하, 조세호, 양세형 등 기존의 무한도전 멤버들의 얼굴들을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다.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이끌 수 있는 동시에 <무한도전>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콘셉트는 신선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그림들이 자주 등장했다. 올드하다는 수식어가 자칫 붙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트렌디함이 느껴지는 것은 <마이 리얼 텔레비전>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유튜브와 1인 방송, 관찰 예능을 엮어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유재석의 모습도 조금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이유다. 릴레이 카메라를 진행하면서, 유재석의 아들 친구를 동네의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치는가 하면, 아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인간 유재석을 색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트렌디한 소재들이 결합해 나타나는 시너지다. 익숙한 그림이라는 우려도 출연자가 매주 바뀐다는 콘셉트상 향후 사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다음 주에 누가 등장할지 쉬이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과거에 비해 줄어든 예능 신예가 등장할만한 창구 역할을 프로그램이 해낼지도 궁금하다. 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대세인 요즘 시대에 흥미롭게 풀어낸 자기 PR을 분명하게 해내는 이가 주목받을 것이다. 그래서 <놀면 뭐하니?>는 참 트렌디하다.
<나 혼자 산다>와 <전지적 참견 시점>의 공통점은? 바로 스튜디오에서 영상을 관찰하며 진행되는 관찰 예능이라는 점이다. 시청률이 잘 나오는 대세를 저버릴 수 없는 것인지 <놀면 뭐하니?>에도 릴레이 카메라에 관찰 예능을 가미했다. 그런데 장소는 조금 다르다. 스튜디오가 아닌 조세호의 집에 모여 함께 TV로 영상을 시청한다. 영상을 정지해 토크하는 타이밍도 조세호가 직접 정한다. 그들은 함께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먹으며 박장대소 떠들어댄다. 진짜 친구 집에 놀러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막힘이 없다. 익숙한 얼굴들과 함께해 시청자들과의 거리도 더욱 가깝다. 어떤 순간에는 릴레이 카메라 영상보다 조세호의 집이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로 그들의 순간은 유쾌했다. 이 유쾌함을 유지하며, 향후 조세호의 집에서 막장으로 치닫는(?) 친구 캐미가 더욱 발산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반면, 릴레이 카메라는 진짜 내 친구의 일상을 지켜보는 느낌이다. 일상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은 많지만 <놀면 뭐하니?>는 그중에서 가장 날 것이다. 카메라 감독의 손이 아닌 스타의 손으로 직접 찍은 영상들은 마치 영상통화를 하고 있는 듯이 가깝다. 물론 그래서 좀 산만한 느낌이 든다. 불안한 각도와 정말 공중파 방송인가 싶을 정도의 초점이 빗나간 영상들을 처음 보았을 때는 정신없는 동시에 신기하다. 어떤 스타들은 자신의 잘하는 모습을 정확한 각도로 찍는가 하면, 어떤 스타들은 신경 쓰지 않고 평소 모습을 담는다. 릴레이 카메라는 그렇게 스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성을 그대로 담아 가장 가깝게 그들과 만난다. 그래서 <놀면 뭐하니?>는 정말 친구 같다.
그래서 재밌어? 예능을 보는 이유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재미 때문일 것이다. <놀면 뭐하니?>가 방영된 후 시청자 댓글에는 "오랜만에 현실 웃음으로 빵 터졌어요"와 "솔직히 기대 이하 실망이었다"라는 평이 공존한다. 재미와 웃음 포인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측정이 어렵다. 시청률로 따져본다면 4.6% 정도로 첫방송치고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평균 정도의 웃음지수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나의 기준으로는 보면서 빵빵 터졌던 적은 드물고, 약간의 미소와 빅 미소가 공존했던 정도라고 할까. 릴레이 카메라의 특성상 촬영하는 스타에 따라서 영상의 내용과 편차가 크게 존재했다.
<놀면 뭐하니?>의 재미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은 향후 제작진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보통의 관찰 예능들은 야유회나 여행 등 어떤 상황이 주어져 그 안에서 풀어나가는 모습들이 시청자에게 재미를 줄 경우가 다반사다. 반면, <놀면 뭐하니?>의 릴레이 카메라는 셀프 카메라라는 형식이라 다른 프로그램보다 영상의 내용이 더 자유롭고, 그에 따른 스타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러 설정들이 들어가면, 날 것의 모습이 어색하게 드러날 수 있다. 정형화되지 않는 틀 속에 매력적인 영상을 끌어내는 일은 흙 속의 진주를 찾는 것처럼 고된 작업일 것이다.
진정으로 매력을 가진 스타, 그 누군가만이 재미와 화제성을 가져갈 수 있다. 조세호의 집(스튜디오) 역할도 더욱 중요하다. 혹시 나타나지 못했을 영상에서의 재미를 더해주는 감초 같은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흙 속에 진주같이 반짝일 스타, 그리고 유재석을 필두로 할 조세호의 집에서 펼쳐질 캐미는 <놀면 뭐하니?>의 릴레이 카메라가 앞으로가 더 재밌을 것 같은 이유다. 그래서 또 볼 거야? 누군가 묻는다면 당연히 YES.
이제 시작인 <놀면 뭐하니?>는 <무한도전>과 똑같이 토요일 저녁에 방영된다. 트렌디하고 친구같이 푸근하며 재미있다. 새로운 예능 스타들의 탄생과 빅재미를 위해 놀면 뭐하냐는 정신으로 MC 유재석이 무한도전의 정신으로 발 빠르게 뛰어다닐 예정이라고 한다. 릴레이 카메라 외에 생각지 못한 어떤 다양한 콘셉트로 프로그램이 전개될지 기대된다. 김태호 PD의 전작의 아성을 뛰어넘어, 시대에 걸맞은 국민 예능으로 <놀면 뭐하니?>가 발돋움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나 역시 이번 주 토요일에도 놀지 않고, 열심히 지켜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