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위치는 어디쯤일까?

부부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기

by 송다감

남편은 내게 '가장 편한' 남자일까? 아니면 남의 편일까?

뻔하고 시답잖은 물음에 답을 찾다가 내 감정과 상태를 반영하는 이미지 하나가 떠올랐다.


흔들리는 반구 위에서 긴 틀 끝에 각각 허리를 묶은 부부의 생존 게임 모습이었다.


아래가 볼록하고 위는 평평한 반구 모양 오뚝이처럼 기우뚱거리는 땅 위에 부부가 서있다. 그런데 좁힐 수 없는 틀의 양 끝을 각자의 허리에 차고 그렇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서로 밀고 당기며 각자의 안전을 지키면서 상대도 밀려 떨어지지 않게 이리저리 균형 잡아야 생존할 수 있는 게임이다.


얼마 전 내가 겪은 일이 살고 죽는 일은 아니었지만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그 느낌이 기울어진 땅 변두리로 급격하게 밀려난 느낌이어서 이런 상상을 하게 됐는데 이게 내 문제가 아니라 모든 부부의 삶이 그렇겠구나 하는 알아차림이 있었다.


부부가 서 있는 반구는 가정이라고 부르고 부부의 거리는 결코 좁힐 수 없다.


부부가 만든 가정에서 밀려 떨어지지 않으려면 땅 크기에 맞게 힘 조절하며 서로 조심해야 한다. 만약 한 명이 떨어지면 같은 틀의 반대편에 묶인 배우자도 같이 떨어지게 되어 그 가정이 사라지기 때문에 밀쳐낸 자도 그 땅에서는 생존자가 될 수 없는 게임이다.


가정 위에서 부부가 안전하려면 땅이 서로의 거리보다 넓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땅도 부부의 자존감, 이해심, 믿음 등에 의해 넓이가 정해지다 보니 안정적인 인성을 갖춘 이들이 만든 땅은 충분히 넓어서 재미 삼아 서로 밀고 당기며 여유 있게 센터를 내어줄 수 있다. 하지만 좁힐 수 없는 서로의 거리가 땅의 지름과 비슷하다면 한 명이 센터를 차고 들어가는 순간 한 명은 가정 밖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의 우리 부부는 우리 거리가 땅의 반지름보다 약간 짧은 정도인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껏 가정이라는 땅 위에서 서로 인정도 하고 무시도 하고 이해도 하면서 교묘하게 균형 잡고 나름으로 지내왔는데 내가 친정 이야기하며 살짝 뒷걸음쳤을 때 남편이 친정 식구들 힘을 입고 갑자기 센터로 훅 하고 들어가 버리니 나는 우리의 거리만큼 변두리로 밀려나서 이상한 사람이 돼버렸고 기울어 버린 가정에서 안전함을 잃고 감정이 요동쳤던 것이다.(사람마다 민감도가 다르니 작은 힘에도 넘어질 수 있다)


만약 내가 그 정도 밀리면 떨어질 줄 알고 놀라서 세게 밀어붙였다면 그 반동만큼 더 세게 변두리로 밀려난 남편은 나보다 더 놀라 언성을 높이고 나를 또다시 밀어붙일 수 있고 시작은 미미했지만 심해지면 갸우뚱갸우뚱 흔들이다 우리 둘 다 나가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일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이어서 잘 참고 변두리에 그대로 멈춰 서서 남편에게 센터의 안정감을 한동안 유지시켜주니 나도 기울어진 땅 끝에서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고 천천히 움직여 둘 다 안전한 위치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남편도 우리 가정의 경계가 어느 정도 너비인지 알아야 내게도 조심할 테니 다음엔 밀어붙여봐야겠다'하는 생각도 스쳤지만 내 아이들도 같이 사는 우리 땅이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나의 위태로움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은 욕심은 내려놓자고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가족의 안녕이 중요하니 말이다.




흔들리는 반구 이미지는 화난 상태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배우자에게 지적을 받으면 내가 정말 못난 것 같아 불안하고 부끄럽고 속상하게 느껴지지만 그저 좁힐 수 없는 부부의 거리 때문에 밀려난 것이라고 생각하면 자존심 상할 일이 아닌 게 된다. 서로 잘나고 못난 것 없이 한 가정에 부부라는 틀을 허리에 찬 평등한 공동체 일원이라는 생각이 당당함을 주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내가 마음먹고 센터의 자리를 차고앉아 떠들어대면 남편 역시 기울어진 땅 끝 자락에서 세상에 없을 못된 사람의 자리로 밀려나 과로할 수 있다.(솔직히 돌아보면 나도 종종 시어머니 앞에서 그러긴 한다.)


그리고 흔들리는 반구 이미지는 우리 부부의 상태를 점검하게 해 준다.


만약 서로의 인격이 만들어낸 반구의 크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센터 자리를 차지하려고만 들면 가정은 전쟁통이겠구나 이해할 수 있다. 혹은 한 명이 가운데서 안전하게 자리 잡고 다른 한 명은 위태로운 채 변두리에서 살아가면 전쟁은 없지만 위태로운 쪽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까 생각도 들었다. 또 어떤 가정은 서로 힘 조절 못하고 서로 덜 기울어진 자리로 가려고 힘겨루기 하다 둘 다 지름에서 벗어나 원 주변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반구가 심하게 기울어져 같이 나가떨어지는 부부의 모습도 상상할 수 있다.


내 속 얘길 듣고 내 편이 아닌 친정 편에서 공감 나눈 남편에게 서운해서 의도치 않게 지(?)만 잘난 것으로 훅 차고 들어온 것 같은 남편이 너무 했다고 생각돼서 복수해야겠다고만 생각했는데 흔들리는 반구 이미지를 떠올리고서야 스리슬쩍 밀어내 균형 잡으면 될 일이 라걸 알았다. 그런 여유가 두루두루 가볍게 사는 재치 있는 삶이겠구나, 가정이라는 땅에서 안전하게 생존하는 방법이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건 내가 센터를 완전히 내놓는데도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을 만큼의 땅은 확보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서로 묶여 있기에 더 다가갈 수는 없지만 쉽게 떨어지지 않지 않을까? 괜한 두려움에 힘겨루기 하기보다 협동해서 흔들리는 반구 위에서 안전하게 생존하면 좋겠다고.


그리고 사실 화가 날 때는 배우자가 지지리도 못나 보이지만 가라 앉히고 생각해 보면 부부는 똑같은 처지에 끼리끼리 만나 이룬 공동체니 배우자의 못난 점 들춰내 굴복시키려거나 더 잘난 거 보여주려고 힘 겨루기 해 봐야 도토리 키재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좁힐 수 없는 서로의 거리는 이제 그만 인정하고 이제 가정이라는 땅을 넓히기 위해 내 자존감을 높이고 이해심과 믿음 키우는데 열중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이든 좋게 생각하면 한 없이 좋다.


지난 일로 남편은 나를 안주 삼아 친정 식구들과 돈독해졌다.

부모님은 결혼 전 모질게 대한 사위지만 이제는 고마움을 전하게 됐다.

나는 내 마음을 알아차렸고 나와 가족의 안녕을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나에 대한 부모님의 걱정도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이 또한 해결하려 밀고 들어가지 말고 가볍게 균형 찾자 마음먹었다. 이번 일은 마음의 평화를 선사할 고마운 기회였다고 생각된다.


현실에선 개선된 바가 전혀 없지만 가치가 인정되면 다 좋게 볼 수 있는 이상주의자의 최대 장점인 긍정의 힘. 내 긍정의 힘으로 오늘도 아등바등 그럭저럭 잘 지낸다.


마지막으로 생각을 마무리하며 남편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다.

남편은, 배우자는 내 존재를 수호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 가정을 수호하기 위해 '편해야만 하는 같은 편'이다.




전편 : 남편에겐 친정 얘기하는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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