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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감 Nov 25. 2022

밤 낮으로 쇼핑하는 그대에게

찾는 게 뭐야?

남편은 게임하지 않는 시간이면 쇼핑을 한다.

특가 상품, 당근 마켓, 해외 사이트 등등을 둘러보지만 많이 사지는 않는다. 살 것이 있냐고 물으면 살 것이 있는지 보는 것이라고 한다. 살 것이 없는데 살 것이 있는지 찾고 있다니 이런 열정이 또 있을까 싶다.


할 일이 없어 그런 것 같으니 그 시간에 책을 보거나 아이들이랑 놀아줘도 좋으련만 급한 일 처리하는 사람처럼 화면만 보고 있다. 아이들이 놀아달라거나 다른 걸 해보자고 하면 쉬는 시간을 방해받은 것 때문에 화가 나서 피곤함을 어필하면서 화면을 닫아버리고 등 돌려 누워버린다. 그런데 이런 일이 우리 집 일만은 아닐 것 같다. 부인이 그럴 할 수도 있고 부부가 서로 그럴 수도 있다. 


남편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나도 그럴 때가 있기 때문에... 특히 당근 마켓이 그렇다. 카테고리도 없이 찾는 것도 없이 끝없는 페이지를 한 없이 내려가며 그 물건이 내게 필요할지 상상하면서 비슷한 물건 중에 뭐가 좋을지 비교하는데 내 두뇌 CPU가 풀가동되는 바람에 지금 뭐가 중요한지 주변을 살필 여력이 전혀 없어진다. 정신 차리고 보면 전혀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데 시간만 순삭 됐다.


요즘은 최저가를 당장 알아낼 수 있고 매일매일 특가 마케팅을 접하고 당일 배송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싸고 좋은 물건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현실을 접어두고 쇼핑에 매달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왜 쇼핑 중독, 당근 중독에 빠져 혹시 모를 필요를 대비하려고 전전 긍긍하는 걸까?


사실 그 이유는 공허함이다. 마음이 허하다는 거다.


쇼핑에 몰입해 마음의 허기와 필요를 채우려는 공허함을 알기 때문에 남편이 쇼핑 창을 오래 볼 때면 어디서부터 위로하고 격려해야 할지 몰라 그냥 쓰다듬어준다. 대화가 쉽지 않은 그의 성향을 알기 때문에 공허한 이를 향해 섣불리 입이 뗄 수도 없다. 남편은 나를 신경 안 쓰거나 왜 저러나 흘겨보지만 공허함은 타인이 채워줄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마음으로만 응원한다. 


남편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은 뭐였을까? 열심히 살면서도 항상 공허함을 느끼고 있을 이들과 남편을 떠올리며 속 깊은 이야기를 전해 본다.




님께 드리는 편지


화도 많아지고 무뚝뚝해지는 걸 보면 요즘 많이 힘든가 봐요. 사람은 마음이 허할 때 자기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마음이 아니라 물건이 없는 줄 알고 물건을 사서 채우려고 한데요. 부쩍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찾는 걸 보면 마음이 허한가 봐요. 마음을 나누면 한결 나을 텐데 내가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돼주질 못해 미안해요.


마음이 빈 것 같은 공허함은 뭔가 부족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마음을 나누지 않을 때 생기는 감정이에요.


일을 열심히 하고 내 역할을 충실히 해서 보상이 충분하더라고 그 노력이 얼마나 값진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도움이 되는지, 고마운지, 괜찮은지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지 않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 해냈음에도 공허한 마음이 들게 돼있어요. 자기 마음을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면 내가 왜 사는지, 내가 다른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지금 내게 어떤 경험이 필요한지 드러내고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에요.


마음을 나누는 게 닭살 돋고 내 스타일 아니고 쓸데없는 말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거 알아요. 그렇다고 계속 마음 나누기를 외면하면 성공을 하고 돈을 아무리 많이 벌고 배우자가 있고 자식이 있어도 소소한 기쁨이 점점 사라지고 외로워질 거예요. 무뚝뚝 한 건 강한 게 아니라 마음 돌봄이 서툴고 서툰 것을 회피하고 싶은 여린 마음이에요. 무뚝뚝한 게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자기 마음을 타인에게 드러내고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라도 아픈 경험이니까 두렵운게 당연해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무뚝뚝함이라는 나만의 전략을 세운 거니 잘 살려고 꾀 노력한 거죠.


그래도 용기 내보면 좋겠어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용기. 

비난이나 거절 받음에 대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는 용기.

타인의 감정을 존중해도 내가 업신여겨지지 않는다는 용기.

마음을 나누는 게 약해빠진 게 아니라 담대하다고 인정하는 용기.

사실 나도 마음을 나누고 힘듦을 위로받고 싶다는 걸 인정하는 용기.


나를 포함해서 세상 사람들이 아직은 감정 소통에 서툴러서 누군가 감정을 드러냈을 때 단정 짓거나 자기 어필하기 바쁜 탓에 위로는커녕 상처만 생기기도 하지만 서툴다고 외면하다 보면 공허함이 커지니까 순서대로,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연습 하면서 용감하게 감정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결국 작은 기쁨과 충만함이 가득한 날이 올 거예요. 


당근과 올리브와 특가 세일에는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상품이 없어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넌지시 '그건 뭐야?'라고 관심을 보여주고 내 시간을 타인에게 기여하고 진솔한 자기 마음을 나눌 때 공허한 쇼핑카트가 가득 차오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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