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우리의 지구'
우리들 삶 속에는 불안과 치열함이 있다.
'어제와 똑같은 일상을 살며 별다른 도전을 하지 않으면서 왜 이렇게 치열함을 느끼는 걸까?'
'거대한 지구에 작디작은 생명체로 살면서 관 짝 만한 캡슐에 올라탄 듯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이유가 뭘까?'
어떤 부류의 인간들은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시대의 변화를 읽고 소비를 예측해 판을 벌이고 마케팅을 펼치며 사업을 하거나 고 부가가치 브랜드를 만들어 세상의 흐름을 만들어간다.
반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수없이 다양한 메뉴판 앞에서 소비만 계속하면서 살고 있는데도 괜한 치열함과 불안을 느낀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아마도 '조급함'이 아닐까 생각됐다.
비록 시대를 읽지는 못하지만 더 나은 삶과 평안을 원한다.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마음, 빨리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 빨리 성과를 내서 레벨 업하고 싶은 마음이 조급함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가치 생산이 아닌 똑똑한 소비를 이어가면서 부자가 되려는 아이러니하고 조급한 마음이 치열함의 발단이 아닐까 생각된다.
언젠가 네플릭스 다큐멘터리 '우리의 지구'를 보며 지구 저편에서 치열함과 조급함 속에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 바다코끼리들과 만물의 영장이라 칭송하는 인간의 상황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얼음 섬 해빙 위에서 휴식하고 번식해야 하는 바다코끼리들은 지구 온난화로 해빙이 모두 녹아 버려 쉴 곳이 없어졌다. 어쩔 수 없이 해빙이 사라지고 드러난 돌섬으로 모여든다. 육중한 몸을 돌려세울 틈도 없는 비좁은 돌섬으로 하는 수 없이 계속 계속 모여든다.
바다코끼리가 자기 몸 하나 눕히고 편안하게 쉴 자리를 찾으려고 온몸을 부대끼며 육중한 몸을 움직여 서둘러 돌섬 위로 위로 밀려 오르는 영상을 보니 우리 사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바다코끼리들은 지긋지긋하게 붐비는 해변을 벗어나 조금이라도 편히 쉬기 위해 위로 위로 줄지어 올라간다. 돌아설 곳 없는 '여기'가 아닌 '저기'에는 쉴 곳이 있으리라 기대하고 조급히 오르지만 결국 돌 섬 꼭대기의 낭떠러지에서 밀리고 밀려 오르는 족족 돌섬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는다. 이제는 멸종 위기에 몰려있다. 내가 더 편히 쉬느냐 힘드냐가 아닌, 내가 사느냐 죽느냐도 아닌 종의 멸종을 마주하고 있다.
수많은 바다코끼리들이 해빙이 사라진 이유도 알지 못하겠지만 자기가 올라선 섬의 규모와 꼭대기의 처참한 상황도 몰랐기 때문에 해변에 머물지 않고 조급히 오르기만 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고 결국 종의 멸망을 마주하게 된 것처럼 사람들 역시 우리가 사는 삶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돈 걱정에 밀려 부자가 되면 안전함과 편안함이 생길 줄, 저 위에는 살만할 줄 알고 낭떠러지를 향해 조급히 오르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듯 겹쳐져 보였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칭송한다면 세계 평화, 생명 가치 추구, 인류 번영 같은 위대하고 원대한 소망과 열정 안에서 지구의 운명과 인간의 삶을 가치롭게 영위할 것 같지만 우리는 삶이라는 전체 판을 조망하지 못하고 치열함과 조급함 속에 삶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나는 왜 매일 조급할 까?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때문이 아닐까?
아등바등하는 현실 속에서 단지 여기는 아니고 저기는 맞다는 성급한 판단 때문은 아닐까?
인간의 과한 욕심 때문에 지구가 망가져 버린 이유로 치열하고 조급한 상황에 내몰려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 바다코끼리 이야기에서 죄스러움과 함께 우리의 조급함을 돌아보고 더 나은 선택과 지혜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