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민중의 사제 무당의 현주소

by 러블리김작가

[데일리스포츠한국] 에서 발췌했습니다.

새벽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코끝에 알싸한 통증이 몰려왔다. 그동안 체험했던 쓰라린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많은 영혼들이 샤머니즘에 대해 지극히 냉담하고 착취적이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과 자주 만난다.

종교학과 후배가 “민간신앙 수업할 때 무녀는 ‘천민들(민중)의 사제’라 하더군요”라고 했다.

오늘은 이 말이 메아리처럼 되새김질을 쳤다.

타종교의 사제와 비교해 이 사회가 요구하는 무당의 역할은 가혹하고 이중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무당은 신분이 존중되고 보호받지 못하며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고 무당에게 ‘소비재’로서의 역할을 강요하고, 영적으로 착취하며 조롱한다. 왜일까?

샤머니즘은 한국 기층문화의 정신적 뿌리와 ‘얼’임에도 천대와 핍박을 받은 지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조선 때는 ‘무당’이라는 단어가 국가의 제천의례를 주관하는 제사장이며 왕이라는 신분을 의미했다.

조선 시대 유교의 정치이념은 무당을 천민으로 전락시켰고, 일제 식민시대 무당은 신도이즘에 의해 신사참배를 강요당하는 신세였다.

공산주의자들은 인민의 정신을 황폐화시킨다며 무당을 인민재판에 회부했다. 새마을 운동을 주관했던 정부는 굿을 ‘미신’이라고 규정하여 금지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샤머니즘은 타종교를 수용하며 새 생명으로 거듭났다.

무당은 가진 자에게 버림과 핍박을 받은 민중들을 껴안아 치유해오고 있다.

장구한 세월, 한국 문화의 ‘원형의 담지자’요 ‘민중의 어머니’인 무당은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나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불씨를 키워왔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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