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라 Jul 31. 2022

故 조소혜, '멀리떠난 친구는 낮달이 되고'이응진PD

작가 이야기

- 드라마 작가 조소혜를 보내며 -



드라마를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드라마를 사랑하시는 분들은 푸른 창공에 낮달이 보이거든 드라마 작가 조소혜라 여겨주십시오.



'멀리 떠난 친구는 낮달이 되어 떠돌고'란 글은 원래 저와 작가 조소혜가 드라마 '첫사랑'의 마지막 장면에 함께 써올린 시의 제목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보다 일찍 떠난 작가 조소혜가 낮달이 되어 하늘에 떠있으리라 믿기로 한 것입니다.



한국의 TV드라마가 주역이 되어 불러일으키고 있는 ‘한류’라는 이름의 열풍. ‘한류’를 하나의 태풍에 비유한다면 이 열풍을 불러일으킨 나비의 날개짓은 이미 20년전, 30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나비의 날개짓 중에는 서울의 저 봉천동 낙성대 근처 한 한옥집 골방에서 정말 나비같이 생긴 처녀가 사뿐 사뿐 휘저은 날개짓이 있었습니다.



나비를 닮은 처녀의 이름은 조소혜.



꿈 많던 여고시절 그녀는 화가지망생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녀의 서가엔 그 시절 그린 유화 한점이 걸려있답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드라마에 생을 바치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우연이 아닌 신의 계시였던 것 같습니다.



80년대 초 그녀는 드라마작가 등용문인 여름작가 학교에 낙방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비는 그 가냘픈 날개로 검푸른 망망대해를 건넌다니지 않던가요.



그녀는 정말 나비같이 대양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혜안을 가진 한 피디의 추천으로 드라마작가로 데뷔했습니다. 그것이 1983년의 일입니다.



그녀의 날개짓이 불러일으킨 작은 바람은 <드라마게임>이란 이름으로 봉천동에서 여의도를 거쳐 그렇게 그렇게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녀가 썼던 드라마게임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당시만 해도 좀 특이했던 '소혜'란 이름이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80년대 중반의 드라마게임은 인기최고의 프로였음을 많은 시청자들은 동의할 것입니다. 그 인기드라마의 중심지에는 이 나비처녀의 날개짓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많은 드라마게임 중엔 저와 함께 만들었던 ‘40vs80’ ‘30vs60’이란 개성있는 제목의 작품도 있습니다.



드라마게임으로 유명해진 조소혜는 마침내 신데렐라로 등극합니다. 28세의 처녀가 주말연속극을 집필하게 된 일 입니다. 세대가 젊어진 지금으로 치면 18세 소녀가 주말연속극의 작가가 된 격이지요.



그녀와 제가 만난 것은 그녀가 처음 쓴 주말연속극 '그대의 초상'에서였습니다. 그녀는 작가였고 저는 조연출이었습니다. 그러자 우리는 만나자 마자 친구가 되었고 동지가 되었으며 23년을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살아왔답니다. 드라마를 사이에 두고 때론 연인같이 다정했고 때론 부부처럼 으르렁거리며 23년을 정말 마음과 마음을 잡고 살아왔답니다.



드라마게임과 주말연속극을 거치면서 더 우람해진 조소혜의 날개는 80년대 말부터 한국의 유명소설들을 받침목으로 더 큰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미니시리즈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희망', '어둔 하늘 어둔 새', ' 잠들지 않는 나무' 등. 그리고는 마침내 '젊은이의 양지' '첫사랑' '종이학' '엄마야 누나야' '회전목마' 같은 드라마로 대붕의 날개를 휘저으며 한국 TV드라마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10년 전 저와 함께 만들었던 '첫사랑'은 65.8%의 시청률을 기록해 한국 방송사상 신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첫사랑’은 지금의 한류를 좌우에서 이끌고 있는 배용준과 최지우, 두 스퍼스타가 진정한 대중스타로 발돋움한 프로그램이라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청률이나 기록으로 이 처녀의 업적을 재는 일은 작가 조소혜를 폄훼하는 일입니다. 제발 그리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쏟았던 드라마에 대한 사랑과 열정과 헌신은 65.8%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조소혜의 드라마에 대한 사랑과 열정과 헌신은 100%였고, 천%였으며, 만%였음을 저는 증명할 수 있습니다. 또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드라마를 통해서 보여주었던 인간에 대한 사랑의 온도도 백도! 천도! 만도!였음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마음도 글도 모두 따뜻했던 나비같은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드라마 '첫사랑'에는 최수종 배용준 송채환 남매들의 아버지 김인문에 대한 지극한 효심과 형제간의 동기애, 또 친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치려던 오동팔 역을 했던 배도환의 우정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많은 시청자들이 가슴을 사로잡혔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화가의 꿈을 포기하고 드라마에 생을 걸기로 했던 처녀 조소혜. 그녀는 처음 결심했던 바처럼 드라마에 자신의 생명을 바치고 이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녀가 소망과 꿈을 이루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 순간 물밀듯이 밀려오는 살아남은 자로서의 슬픔을 참을 수 있답니다.



저는 그녀와 '희망'이란 미니시리즈를 만든 후 배우들과 스태프들과 함께 여의도 KBS 뜰에 감나무를 한그루 심었습니다. 그리고 '첫사랑'을 만들고 나서도 별관 뜰에 모과나무 한그루를 심었습니다.



우리는 그 나무들이 자라서 20년 후 30년 후에는‘희망나무’, ‘첫사랑 나무’가 되어주리라는 것을 믿으며 그 나무들을 함께 심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드라마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20년후 30년 50년 후에는 거목이 된 그 감나무와 모과나무 밑에서 ‘희망’과 ‘첫사랑’을 전설처럼 추억해주기를 바라며 심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심은 이 나무들은 방송의 역사와 함께 우리두 사람이 원래 뜻한 바처럼 오래 오래 드라마의 역사로 전설처럼 커 갈 것입니다.



나비를 닮았던 영원한 소녀 같았던 조소혜. 그녀는 이제 푸른 창공으로 나비처럼 날아가 낮달이 되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매년 감나무에 감이 열릴 때, ‘첫사랑’의 모과나무에 모과가 열릴 때, 내친구 '조소혜'를 꼭 한번만 생각해주십시오.



드라마에 생을 걸다가 낮달이 된 그녀는 늘 한국의 모든 드라마를 내려다보며 따뜻한 미소와 격려를 보낼 것이라 믿습니다.



살아남은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푸른 하늘 낮달이 보이거든 내 친구 ‘조소혜’라 여겨 부디 따뜻한 미소로 응답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드라마에 생을 바친 나비같은 처녀, 조소혜 ! 친구여. 안녕!



- 2006년 5월 26일 . 이응진 ( KBS 드라마 피디) -



(이응진 ndorphin@freechal.com)


작가의 이전글 임성한 "난 인간 욕망 파헤치는 리얼리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