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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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김작가



엄마가 간호사가 된 이유는,

엄마가 어릴 때 외할머니가 아프셨기 때문이다.

엄마는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서 키워진 후,

간호사가 되어, 한평생 다른 사람만을 위해

희생하고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며 살았다.


그렇게 열심히 벌어서 남동생들 키우고,

아빠랑 나를 키우고,

내가 내 사람들에게 뭔가를 해줄 때,

엄마는 그 돈을 해줄 수 있게 도와줬다.


나랑 엄마는 뼈빠지게 일해 번 돈으로,

타인들에게 나눠주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우울증 아닌, 피해망상증은

심해졌었다.

그러나, 내가 내 스스로 천주교에서 자모회를 하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마음의 병을 고침으로서,

내가 성당에서 배운 교리로,

엄마의 병도 고쳐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자수성가로 땅부잣집에서 살아

집에 운전기사가 있고, 궤짝으로 돈이 있어

돈 걱정 없이 살았지만,

힘들게 번 돈을

할아버지, 할머니, 큰형, 친구에게, 엄마에게 다 주고,

통장에 돈 한 푼 없이, 돈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았다.

아빠가 그렇게 산 이유는,

친할머니가 일만 열심히 하고, 돈만 열심히 벌다,

중풍으로 하반신 마비가 되는 걸 보고 나서부터다.

할머니는 아파서 쓰러졌지만, 병원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교회에서 기도만 하다, 결국,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그 때문에, 큰아빠는 어릴 때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해

옥상에서 떨어져 곱추가 되었고,

아빠는 감기 치료를 제때 못해 미미한 청각 장애를 갖게 되었다.

청각 장애가 있던 아빠가, 지금까지도 밝고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책이었다.

아빠는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셔서 글을 참 잘 쓰셨고,

엄마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성당에서 레지오회장과 연령회총무를 하면서

2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사셨다.


엄마나, 아빠나, 원가족들, 그리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고 사셨기 때문에

나를 돌봐주기에는 너무 바쁘셨고,

나는, 알아서 잘 커야 했다.

그래도, 내가 힘들 땐, 언제나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고,

아이를 키울 때나, 돈을 모을 때

부모님께서 양육이나 먹을 것 등을 많이 도와주셔서,

내가 계속 일을 할 수 있었고,

돈도 많이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돈을 나눠주고

돈이 없을 때에도, 원하는 글을 쓸 수 있었다.


부모님의 그런 헌신과 희생, 그리고, 나에 대한 존중이 아니었다면

나는 작가로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 덕분에 작가가 되었고,

힘은 들어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글을 계속 쓰고,

밖에서 힘든 일을 겪어도,

다시 위로받고, 치유받고, 사랑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집에서는, 아이의 목소리가 제일 크다.

아이가 첫 번째, 그 다음 여자, 그 다음이 아빠다.


아빠는 늘 말한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자신이 참는다고.

그렇게 참은 아빠가 아니었다면,

우리집은 어땠을까.


솔직히, 우리 엄마는 너무 세다.

엄마는 중학교 졸업 이후부터 66세가 되기까지

한 주도 쉬지 않고 일하고,

매일 맛있는 반찬을 만드셨는데,

그런 엄마가 존경스럽지만,

그렇게 일하고 육아하고, 살림하며

나에게도 그렇게 하길 원하는 엄마가

부담스러울 때도 많다.

엄마는 바람 한 번 한 눈 한 번 팔지 않았고

모범적으로 사셨다

우리 엄마는 손재주가 많고 부지런해서

간호사도 주방사도 하셨지만

나는 요리를 잘 못한다.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정말 하얗게 불태울 정도로

최선 다해 살아왔고,

누구에게 손 내밀지 않았고,

내 힘으로 일구고, 순수한 내 노력으로 일을 해왔으며,

육아도, 정말 최선 다해 하고 있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다.


쉴 틈 없이 달려만 왔기 때문이다.

마치 경주마처럼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달리기만 했다.


처음으로 쉰다고 쉬어도,

그 시간이 내게는 쉰 게 아니다.


쉬는 건, 정말 마음 편히 푹 놓고,

놀러도 다니고, 쉬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했다.


앞으로는, 정말 사람답게,

내 기본권과 인권을 챙기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내 아이와 가족도, 내 소중한 사람들도

인권, 자유, 평등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부정적이고 안 좋은 생각보다,

긍정적이고, 밝고 희망찬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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