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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악마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크게 볼 때 악마는 숨어있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고 말을 무척 아끼며 구마사와 부마자를 실망시키려는 모든 수단을 다 강구한다는 것을 먼저 전제하고 싶다. 악마의 행동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는 증상을 4 단계로 분류해보도록 하겠다. 즉, 악마를 발견하기 전에 일어나는 증세, 구마 도중 드러나는 악마, 부마자로부터 나가기 직전의 악마, 해방된 뒤의 증세 등이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들 증세들은 서로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악마의 행동은 무척이나 다양해서 가늠할 수 없다. 여기에 기술하는 것은 몇 가지 일련의 행동들로 자주 보여 지는 것들만을 추려 보았다.
1. 발견되기 전의 악마의 행동
악마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이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 진짜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는 캐보려 하지 않는다. 의사들이 오랫동안 환자 치료에 매달리지만, 항상 원하던 효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환자는 자신의 고통을 밝혀내지도 못하는 무능력한 의사들이라고 투덜대며,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고 다닌다. 더 어려운 것은 정신적인 고통을 치료하는 것이다. 전문의들은 자주 이유를 밝혀내지 못하고(육체적인 질병도 자주 이런 식으로 일어남), 가족들은 그를 “강박관념에 빠진 사람”이라고 취급해 버린다. 이런 “질병들”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는 아무도 그 고통을 알아주지 않고, 믿어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항상 일어나는 일이지만, 공인된 모든 약이나 병원들의 문을 여기저기 두드리기 전 후에 이런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치유자 혹은 더 심하게는 주술가, 점쟁이, 주술사, 악마의 주문을 만드는 무당 등을 찾아가게 되면 결국 악을 훨씬 증대시킨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구마사를 찾아오는 사람은(어떤 친구의 충고에 의한 것이지, 사제들의 충고에 의한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듦) 이미 병원을 전전했고, 더불어 불신의 감정을 잔뜩 품었으며 여러 번에 걸쳐 무당이나 이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다닌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신앙결핍 혹은 냉담자라는 사실도 이들을 이렇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분야에 대한 교회 당국의 이해할 수 없는 무시와 냉대가 이들을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십분 이해한다. 이런 악순환을 겪다가 정말 우연한 경우에 구마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악마는 아무리 완전한 부마상태일지라도(여기에서 악마는 불행해 처한 그 사람의 신체기능을 제 마음대로 사용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만듦), 계속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오랜 휴식의 시간을 갖다가 행동을 계시한다는 것(일반적으로 이것을 “순간적인 발작”이라고 함)을 분명히 알아둬야 한다. 하지만 굉장히 심각한 경우들에 있어서 악마는 부마자를 정상인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어떤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게 하거나 학업에 열중하도록 슬쩍 꼬리를 숨긴다. 또한 그 일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부마자 본인이 인식하고 있을 때도 악마는 잠잠하게 숨어 있다.
2. 구마 도중에 악마가 모습을 내밀 때
기본적으로 악마는 발견되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그게 어렵다 싶으면 적어도 부마자의 심각한 상태를 숨기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지만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구마의 힘에 의해 기어 나올 수밖에 없고, 구마의 첫 기도에서부터 이미 꼬리를 들어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많은 구마기도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첫 구마기도를 받던 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약간 미심쩍은 구석이 있긴 있었던 젊은이였다. 그래서 나는 “별거 아니구먼, 그렇다면 이 구마기도와 다른 것으로 한 방에 날릴 수 있겠군.” 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주 우습게 여겼었다. 그런데 두 번째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 그가 포악하게 변했고, 그 다음 기도가 끝났을 때, 만약에 건장한 네 명의 남자들이 그를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을 뻔했던 기억이 난다. 하느님의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경우이다.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나를 포함한 여러 구마사들을 통해 구마기도를 받았지만, 특별하게 보여 지는 호전증세가 없던 사람이었다. 기회가 된 어느 날, 악마는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정기적인 구마기도가 지속되어 부마자들이 해방될 때까지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이미 구마 첫 단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고, 혹은 두 번째 단계에서는 엄청나게 무서운 모든 힘을 과시하기도 하는데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혹은 단계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도 있어서 부마자들은 매 번 없었던 새로운 고통들을 호소하게 된다. 이것은 악마로부터 해방되는 징조로 안에 있는 악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물러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악마는 기도 중이나 구마사의 명령에 여러 가지 다른 반응을 보인다. 많은 경우 기도나 명령에 아주 무관심한 척 행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통스러워하며, 그 고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점차 커져서 급기야는 쫓겨나고야 만다.
예를 들어 자극을 가했을 때, 어떤 부마자들은 눈만 말똥거리며 움직일 뿐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거나 끝까지 침묵을 지키기도 한다. 어떤 부마자들은 또 몸을 비틀기 때문에 꼭 붙잡아 줘서 부마자가 상처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구마서가 정하는 대로 부마자들이 아프다고 하는 부위에 영대를 갖다대거나 그 위에 성호를 긋고 성수를 뿌리게 되면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소수의 난폭한 부마자들을 위해 구마사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이나 가족들이 부마자들을 꼭 붙잡고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악마들은 말에 대해서는 엄청난 수전노들이라서 단단히 입을 닫고 있다. 분명하게 구마서는 호기심에 찬 질문을 금지시키고 있다. 단, 악마에게 하는 질문은 구마기도를 통한 해방에 도움이 되는 것에 관해서만 묻게 되어 있다. 악마에게 해야 할 첫 째 질문은 이름을 묻는 것이다. 이런 질문은 악마의 본색을 드러내게 하고 또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악마에게 말할 수 없이 굴욕적이다. 앞으로 진행될 모든 구마기도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름을 밝혔을 때, 기도할 때마다 그 이름을 반복하여 부르게 되면 상당히 기분 나빠한다.
그런 뒤 부마자 속에 몇 명의 악마들이 살고 있는지 말하도록 명령한다. 많은 숫자일 수도 있고, 적은 숫자일 수 있지만 그 중에는 꼭 우두머리가 있어서 처음에 실토한 이름이 바로 우두머리의 이름이다. 구마 중에 실토한 악마의 이름이 성경이나 전통에 바탕을 둔 이름(예를 들어 사탄, 베엘제블, 루치펠로, 자불론, 메리디아노, 아스모데오 … ) 이라면 이건 대단한 놈이 들어앉은 것이다. 문제는 악마가 지배해 버린 사람의 육체가 발휘하는 엄청난 힘이다. 여러 악마가 있는 것이 확인되었을 때, 가장 늦게까지 버티고 나가지 않는 것이 우두머리 악마다.
성스러운 이름 앞에서 보이는 악마의 반응은 부마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게 한다. 일반적으로 악마들은 이런 거룩한 이름들에 대해서 절대로 직접 부르지 않고, 또 부를 수도 없다. 그 대신, “그 사람”이라고 표현하는데 바로 하느님이나 예수님을 지칭하는 것이고 “그 여자”는 성모마리아를 뜻한다. 어떤 때는 “네가 믿는 우두머리”라고 해서 예수님을 가리키고 “네 여자”라고 해서 어머니 마리아를 가리키기도 한다. 반대로 부마상태가 굉장히 심각할 때, 악마는 상당히 높은 품(品)(천사였을 당시에 받은 품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한 바 있다. 예를 들어, 권품, 역품, 좌품, 능품, 주품, 천사, 대 천사, 지품, 치품)의 악마가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과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을 불러대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욕설을 지껄이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악마는 수다쟁이여서 누구든지 구마기도에 함께 참여했던 사람에 대해 악마가 공개적으로 그 사람의 죄를 낱낱이 파헤친다고 믿고 있다.
이 말은 전적으로 회자되는 잘못된 맹신이다. 악마들은 말을 아끼는데 수전노 같다가도, 구마사를 혼란에 빠트리고 중요한 질문에 대답을 피하기 위해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는데 선수들이다.
물론 예외의 경우는 있을 수 있다.
어느 날인가 깐디도 신부님께서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제 한 명을 구마기도에 초대했다. 그 자리에 간 사제는 기도하지 않고(구마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함께 기도함), 팔짱을 끼고 서서 아주 비웃듯이 역설적인 웃음을 지은 채, 그 모양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느 중요한 순간에 악마는 그 사제를 공격한다. “야, 너, 내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했지. 그러면서 여자들은 어떻게 믿고 다니냐. 그래, 내 존재를 안 믿는다구? 도대체 여자들은 믿으면서 어떻게 내 존재는 안 믿는 거냐!” 재수 없이 걸려든 그 사제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슬금슬금 문 쪽으로 뒷걸음질쳐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어떤 날은 구마사를 실망시키기 위해 부마자의 모든 죄들을 낱낱이 파헤쳐 가르쳐주기도 한다.
아주 잘 생긴 젊은이였는데 깐디도 신부님께서 그에게 구마기도를 하고 있던 중 신부님은 그 젊은이 안에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괴물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감지하셨다. 악마는 구마사를 실망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너 지금 이 사람 때문에 시간 낭비하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하냐? 이놈은 전혀 기도하지 않는 놈에다가 … 를 들락거리고… 일을 하는 놈인데 … ” 등등 이라고 떠들면서 부마자의 엄청나게 많은 죄들을 낱낱이 늘어놓았다. 구마를 끝낸 뒤 깐디도 신부님은 그 젊은이에게 고해성사를 보도록 잘 타일러 일반적인 고해성사를 보도록 했지만, 그 젊은이는 극구 반대했다. 거의 반강제적으로 그를 고해소로 끌고 가서 깐디도 신부가 먼저 젊은이를 상대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 날 이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너무나 화들짝 놀라며 어쩔 줄 모르다가 자신의 죄를 고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 말고 이런 일들도 저지르지 않았습니까?”라는 질문에 자신이 재수 없는 일을 당한다고 여긴 젊은이는 더욱 혼란에 빠져버렸고, 악마가 깐디도 신부님께 알려준 사실을 바탕으로 신부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한 가지 한 가지 지은 죄들을 기억해 내며 고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해가 끝난 뒤 사죄경을 해주자마자 그 젊은이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나가면서 하는 말이 “여긴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구먼! 어떻게 된 것이 이런 신부들은 모든 것을 다 안단 말야!”
구마예식서는 악마가 얼마 동안이나 특정인의 몸속에 있었는지, 그 기간과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하도록 제시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악마를 이용한 주문에 관한 언급을 할 때 어떤 행동을 취해야하는지 설명하도록 하겠다.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다. 그러나 미리 말해두고 싶은 것은 악마는 거짓말 제조기라는 것이다. 의심을 발생시키고, 원수지간이 되도록 조장하기 위해 어떤 사람, 혹은 제 삼자를 끌어들여 온갖 거짓말로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구마 기도 중 악마가 하는 응답들은 철저히 검토되어야 한다. 난 여기에서 통상적으로 악마에게 하는 질문은 큰 중요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싶다.
예를 들어 악마는 많은 경우에 구마기도에 의해 엄청나게 약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언제 떠나갈 것이냐는 질문에 나갈 날짜를 말한다. 깐디도 신부님처럼 구마사로서의 많은 경험을 가진 분은 당신의 직감으로 어떤 형태의 악마가 들어갔는지, 어떻게 다루어야 하고, 심지어는 자주 그 악마의 이름까지도 맞추기도 했기 때문에 악마에게 그리 많은 질문은 하시지 않았다. 가끔씩 신부님께서 악마에게 이름을 물을라치면, “이미 알고 있으면서 묻긴 왜 물어!” 라고 악마 자신이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했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신부님은 그 악마의 이름을 이미 알고 계시곤 했다.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악마들이 자발적으로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부마상태가 심각한 경우로써 구마사를 실망시키거나 놀라게 할 계책에서다. 내가 구마 기도를 할 때 악마가 나에게 자주 던지는 말이다. “나를 쫓아낸다고? 웃기는 소리다!”, “이게 내 집인데, 가긴 어디를 가라고, 이렇게 편한 집에서 나가라구, 웃기고 있군 그래!”, “에구,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꼬락서니라니.” 혹은 이렇게 나를 위협한다. “네 심장을 도려내서 씹어 먹어 버릴 테다.”, “오늘밤 너는 무서워서 도저히 눈도 붙이지 못할 줄 알아.”, “구렁이처럼 네 침대로 기어 들어갈 테다.”, “침대에서 너를 떨어트려 버릴 거다.” 등이다. 그러다가 내가 어떤 말로 빈정댈라치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 예를 들어 “나는 성모님의 망토에 싸여 있는데 도대체 네까짓 것이 뭘 할 수 있느냐?”, “내 보호자는 대천사 가브리엘이다, 한 번 그분과 싸워볼래?”,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내 수호천사가 밤낮으로 나를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에 네 까짓 것이 나를 해하겠다고 천방지축이냐?” 등과 같은 비슷한 말들 앞에서 입을 다문다.
악마는 항상 어딘가 약한 부분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어떤 악마들은 고통스러워하는 신체 부위에 영대로 십자가표를 그으면 참지를 못한다. 또 어떤 놈들은 부마자의 얼굴에 바람을 불면 엄청나게 싫어하고, 성수를 뿌리면 있는 힘을 다해 성수에 맞지 않으려고 온갖 난리를 피운다. 구마예식서에 있는 기도 중에서 어떤 구절이나 혹은 구마사가 드리는 어떤 다른 기도들에 대해 악마는 기진 할 정도로 폭력을 행사하면서 대항한다. 그 순간 이런 반응을 보이는 그 기도 구절을 반복적으로 드리도록 예식서는 강조하고 있다. 구마는 짧거나 길 수 있는데, 구마사의 판단에 따라 여러 부분을 관찰하면서 결정할 수 있다. 구마기도를 할 때 첫 증상을 통해 판단하고 구마가 지속되는 시간을 충고해 줄 의사가 함께 해주게 되면 자주 효과를 본다. 특히 부마자가 상태가 좋지 않을 때(예를 들어 심장병을 앓고 있다든지), 혹은 구마사의 건강이 좋지 못할 때 함께 해주는 의사는 그 자리에서 상황을 판단하면서 구마사에게 구마를 계속해도 되는지 어떤지에 대해 충고를 해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구마를 얼마동안 지속해야할지를 판단하는 것은 구마사 자신이다.
3. 악마가 나가기 직전
민감하고 어려운 순간으로써 상당히 오래 끌 수도 있다. 악마는 자신이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쓰고 버텨본다. 이런 상태에서는 항상 다음과 같은 증세를 보인다. 일반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조금씩 차도를 보여 나가지만, 부마자 혹은 악의 지배세력을 받는 사람들의 경우는 전혀 반대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화되고, 악마로서 더 이상 해봐도 안 되겠다 싶을 때야 비로소 치유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경우가 이렇지는 않지만, 흔히 일어나는 것들이다.
악마가 자기의 집으로 여겼던 어떤 사람의 육신을 버린다는 것은 지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원한 죽음에 낙인찍혀, 사람들을 희롱할 수 있었던 드러나던 자신의 모든 능력을 잃고 평생 그 곳에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반복되는 구마 중에 이런 악마의 절망 상태를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아이고, 나 죽어, 나 죽는단 말야”, “ 더 이상 못 견딘다고”, “그만해, 신부야, 날 죽이고 있단 말야”, “이런 불한당들, 살인자들 같으니라고! 모든 신부들은 다 살인자들이야” 등의 비슷한 표현들이다. 이런 말은 처음에 구마사를 향해 “네가 나를 내쫓는다고, 웃기는 소리 그만해!” 라면서 구마를 시작했을 때, 깐죽대고 빈정대던 것하고는 정반대로 이제는 “아이구, 네가 나를 죽이고 있어, 내가졌다, 졌어” 라는 말로 바뀐다. 구마 초기 당시, 그곳이 편해서 절대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버텼다면 이제는 지긋지긋한 곳이라 나가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든 구마기도는 악마를 속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구마기도 때문에 악마는 무척 고통을 당하면서도 부마자에게 심한 고통과 무기력감을 보이게 한다. 결국, 지옥에 있는 것보다도 구마가 진행되는 순간이 악마에게 있어서는 훨씬 더 고통스럽다고 고백하게 된다. 어느 날 깐디도 신부님께서는 거의 악마로부터 해방되기 직전에 있는 사람에게 구마기도를 하고 있었을 때, 그 사람 안에 있던 악마가 공개적으로 이렇게 지껄였다. “이곳을 지긋 지긋한 지옥보다 더 지겨운 곳으로 만들면 내가 꺼져버릴 것이라고 믿는 거지?” 이처럼 악마에게 있어 구마기도는 지옥보다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것이다.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차원은, 해방의 순간에 도달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악마는 이런 해방의 순간을 맞고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느낌들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갖은 애를 다 쓴다. 악마는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부마자의 무력증 상태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노린다. 즉, 악마는 자신의 절망적인 상태를 부마자에게 전이시키려 갖은 노력을 하게 된다. 악마는 쫓겨나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다급함을 느끼고, 벼랑 끝에 선 자신을 발견한다. 그 순간 더 이상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 버려서 모든 폭발적인 격노의 순간을 전이하여 부마자가 미쳐 날뛰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런 부마자들은 많은 경우 구마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신부님, 정말 제가 미친 것은 아닌지 말해주세요!”라고 절망적으로 부르짖는다. 부마자에게 있어서 구마기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스럽기 때문에 누군가 반강제적으로라도 함께 구마사에게 데리고 가지 않는 한, 자주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케이스는 악마로부터 거의 해방 직전에 있었던 몇 명이 더 이상 약속시간에 오지 않은 일도 있었다. 이런 “환자들”이 자주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교회를 사랑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 부마상태를 혼자서는 이겨낼 수 없기 때문에 자주 성사생활을 하도록 이끌어 주고, 구마기도를 받도록 해주어야 한다. 특히 구마기도의 마지막 단계를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어야 한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이런 어려움은 육체적인 피로를 가져오고, 찰거머리처럼 붙어 다니는 악마의 영향으로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윤리적 좌절감에 빠지게 만든다. 악마는 육체적인 질병, 특히 정신적인 질병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해방된 뒤에도 지속적으로 전문의를 통해 의학적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부마에서 해방될 때 이런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질병도 질질 끌지 않고 완전한 치유가 가능하다.
4. 부마에서 해방된 이후
부마에서 해방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의 리듬을 절대로 늦추지 말라는 것이며 잦은 성사생활과 그리스도신자생활의 임무에 충실 하라는 것이다. 가끔가다가 정기적으로 축복기도를 청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악마는 자주 자신이 머물렀던 사람 속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절대로 그 어떤 문도 열어서는 안 된다. 부마에서 해방된 이후를 휴식기간이라고 하기보다는 완전한 해방을 정착시키기 위한 힘을 축척 하는 시기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구마사로 생활하면서 해방되었다가 다시 부마자가 된 경우를 본 적이 있다. 해방된 후 영적 생활을 지속해나갔던 사람이라면, 두 번째 악마를 쫓기가 훨씬 수월했다. 이런 경우는 대상자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반대로 과거 부마자였던 사람이 자신의 게으름에 의해 기도를 소홀히 했다거나 더 심한 것은 똑 같은 죄를 반복해 범하기 시작할 때, 그 상태는 처음 부마 상태보다 훨씬 위태하여 마태오 복음 12장 43-45절의 말씀을 그대로 재현하는 장면이 되어버리고 만다. 즉, 나갔던 악마는 이제 그보다 훨씬 강한 일곱 악마와 함께 들어온다는 것이다.
악마는 자신의 존재자체를 숨기기 위해 별 짓을 다한다는 것을 이미 언급했던 것을 독자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관찰은(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정신병적인 것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정신병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여러 행위들을 구사하는데, 이와는 구별된다. 악마의 행위는 이와는 전혀 반대되는 행위이다.
[출처] 악마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구마사제가 들려주는 악마에 대한 이야기) (안티와 예수의 대화) | 작성자 외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