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판을 뒤집는 전략'을 향수로 만들었다.

18세기 숙녀들의 상비약에서는 무슨 냄새가 났을까

by 냄새도감 Nose Co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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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tro_Longhi_027.jpg 피에트로 롱기 (Pietro Longhi), <기절(The Fainting)>, 1744년경, 미국 워싱턴 D.C., 국립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Description_개요

피에트로 롱기가 1744년경에 그린 <기절>은 18세기 베네치아 상류층 사회의 허례허식과 이중성을 예리하게 포착한 풍속화다. 화면의 중앙에는 연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창백한 얼굴로 의자에 주저앉아 있고, 이로 인해 주변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휩싸인다. 이 장면은 단순한 실신 사고를 넘어, 당시 관객이 ‘사회적 연극’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닥에 흩어진 카드와 지갑, 동전만 봐도 그녀가 곤경에 빠진 이유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도박에서 불리한 패를 받자, 패배의 책임을 피하고 국면을 바꾸기 위해 ‘전략적인 기절’을 선택하며 탁자까지 뒤엎은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위기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베네치아 귀족들의 기만적 태도를 유머러스하게 드러낸다.

롱기의 이 같은 화풍은 당시 베네치아의 유명 극작가 카를로 골도니와의 깊은 예술적 교류에서 비롯되었다. 골도니는 롱기와 막역한 사이였으며 “나의 뮤즈가 펜으로 노래하는 장면을 롱기는 붓으로 그려낸다”라고 할 정도로 서로의 예술 세계를 존중했다. 두 사람 모두 동시대 베네치아의 일상과 인물을 재치 있고 날카롭게 기록했다. 골도니가 연극 대사를 통해 귀족 사회의 허영을 풍자했다면, 롱기는 <기절>을 비롯해 <코뿔소>, <점쟁이>, <코코아를 마시는 귀족들> 등 다양한 연작에서 귀족들의 지루하고 상투적인 삶을 화폭에 담았다. 롱기 그림의 인물들이 작은 인형처럼 앙증맞게 묘사된 것은, 그들이 자율적인 인간이기보다는 사회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정해진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롱기는 후원자들의 삶을 노골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세련된 퇴폐미 속에 그들의 허영과 약점을 교묘하게 녹여냈다. <기절> 속 중국풍 카드 테이블이나 이끼색 다마스크 직물로 꾸며진 화려한 실내장식은 그가 즐겨 쓰던 풍자적 장치다. 섬세한 필치와 은은한 채광, 파스텔톤 색감은 이 순간을 우아하고 부드럽게 감싸면서도, 한편으론 상류 사회를 향한 작가의 냉소적 시선이 배어 있다.


Focus_어떤 냄새가 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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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베네치아를 비롯한 유럽 사교계에서 여성들의 기절은 단순한 신체적 이상을 넘어, 정교하게 다듬어진 ‘사회적 기술’로 인식되었다. 문화사학자 G. J. 바커-벤필드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상류층 여성에게 꼭 필요한 미덕인 ‘감수성’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쉽게 쓰러질 만큼 예민한 신경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당시의 ‘기절’은 여성들이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연출하여 타인의 보호를 유도하거나, 도박에서의 패배처럼 난처한 상황을 우회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롱기의 작품 속 여성이 보여주는 창백한 실신도 이러한 사회적 배경 위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풍자적 의미가 명확해진다.

하지만 이 같은 기절이 모두 연출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시절 유행했던 패션과 사교 환경 자체가 실제로 여성들을 실신에 이르게 하기도 했다. 허리를 심하게 조이는 코르셋은 평소에도 숨을 깊게 쉴 수 없게 만들어 얕은 호흡을 유발했고, 수백 개의 양초가 타오르는 무도회장은 밀랍 초의 연기와 인파가 내뿜는 열기 때문에 산소가 부족해지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런 조건에서는 숙녀들이 호흡 곤란을 겪으며 실제로 기절하는 일이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즉, 18세기의 기절은 답답한 의복에서 비롯된 생리적 고통과 사회적 연극이 절묘하게 겹쳐 만들어진 독특한 현상이었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기절에 대비해, 숙녀들의 가방에는 코끝을 자극하는 강한 각성제가 상비약처럼 들어 있었다. ‘스피릿 오브 하트혼’이라고 불렸던 이 약은 실제로 사슴뿔을 갈아 증류한 암모니아 수용액으로, 롱기의 그림에서 여인에게 다가가는 인물이 들고 있는 약병이 바로 그것으로 추정된다. 이 약병은 뇌의 호흡 중추를 자극하는 매우 강렬하고 자극적인 냄새가 특징이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사슴뿔을 직접 증류하던 방식은 암모늄 탄산염에 향료를 더한 ‘스멜링 솔트’나 ‘살 볼라틸레’로 대체되어 더욱 널리 확산됐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보석으로 장식된 ‘비네그레트’라는 전용 용기가 등장해, 여성의 품위를 상징하는 예절 도구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운동선수들이 순간적인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암모니아 스틱으로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Olfactory Reconstruction _ 조향

탑노트: 첫인상, 휘발성이 강함
미들노트: 향의 중심, 휘발성 중간
베이스노트: 본질적이고 은은하며 휘발성이 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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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Note: 기화된 암모니아

- 스멜링 솔트의 핵심이자 사슴뿔 증류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 코점막을 날카로운 바늘로 긁어내는 듯한, 차갑고 강렬한 충격이 전해진다. 일상적으로는 공중화장실에서 맡을 수 있는, 응축된 암모니아 가스 특유의 냄새에 가깝다.


Middle Note: 야생 라벤더와 거친 허브

- 앞서 느껴진 암모니아의 날카로운 자극을 중화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정신을 되찾게 하거나 긴장을 완화하려는 약제로 활용되던 성분이다.

- 암모니아의 잔향과 어우러져 알싸한 느낌과 함께, 허브의 신선함이 코끝을 자극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


Base Note: 묵직한 앰버그리스

- 강렬하게 휘발하는 탑·미들 노트를 잡아주는 강력한 보정제 역할을 한다. 암모니아의 불쾌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여러 향료가 더해졌는데, 그 정점에 있는 소재가 바로 앰버그리스(용연향)이다.

- '바다의 황금'으로 불리는 이 성분은 바닷바람과 햇볕에 수십 년간 자연 숙성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극히 귀한 소재로, 오랜 세월 왕실과 귀족들만 향유했던 최고급 사치품이었다.

- 처음엔 짭짤한 바다 내음과 쿰쿰한 동물적 향이 느껴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달콤한 머스크와 마른 흙, 은은한 담배 향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깊고 우아한 잔향을 남긴다.




Note

1 [원인] 기절하는 여성들

당시 여성들의 기절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이 결합된 복합적인 현상이었다.

• 신체적 압박: ‘개미허리’ 유행 때문에 코르셋을 극도로 조이는, 이른바 타이트 레이싱(Tight Lacing)으로 갈비뼈가 휘고 횡격막이 압박받았다. 폐가 충분히 팽창하지 못해 항상 얕은 흉부 호흡만 가능했고, 이로 인해 지속적으로 산소가 부족한 상태가 이어졌다.

• 환경적 요인: 수백 개의 밀랍 초가 타는 무도회장의 열기 속에서 공기 중 산소가 더욱 희박해졌을 것이다. 이렇게 산소가 부족해지면, 뇌로 전달되는 산소가 끊기면서 갑작스레 쓰러지는 실신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 사회적 명분: 당시 상류층 여성에게 요구되던 ‘감수성’은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쓰러지는 연약함을 미덕으로 여겼다. 이는 곧 세련되고 예민한 영혼을 지녔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기절은 단순한 신체적 한계에서 비롯된 사고일 뿐 아니라, 자신의 고귀함과 품위를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행동이기도 했다.


2 [생리] 삼차신경 자극으로 인한 ‘물리적 충격’

암모니아 가스는 단순히 후각 신경만이 아니라, 얼굴의 통증을 담당하는 삼차신경까지 직접 자극한다. 이때 뇌는 마치 타는 듯한 통증이나 주먹으로 맞은 것 같은 강렬한 충격으로 신호를 받아들인다. 이 신호가 뇌간을 자극하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숨을 깊게 빨아들이며 깨어나는 '흡입 반사'가 일어난다.


3 [화학] 사슴뿔로부터 암모니아를 얻는 방식

당시 암모니아는 수사슴 뿔을 가마에 넣고 태우는 건류 과정을 통해 추출했다. 이 과정에서 특유의 타는 냄새와 함께 불쾌한 기운이 발생했고, 당시 약학서에서도 이러한 점이 반복적으로 언급되었다.


4 [역사 및 활용] 보석함에서 오븐까지

• 비네그레트: 기절이 일상적이었던 만큼, 기절약을 담는 통은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패션 소품으로 발전했다. 이것을 목걸이나 휴대용 형태로 지니고 다니며, 사교 모임에서 서로의 코 밑에 대주는 에티켓도 있었다.

• 베이킹파우더의 전신: 사슴뿔 추출물인 탄산암모늄은 현대의 베이킹파우더가 등장하기 전까지 빵을 부풀리는 팽창제로 쓰였다. 실제로 독일의 전통 과자 레 프쿠헨을 구울 때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매우 강하게 났다는 기록이 있다.

• 생명력의 상징: 해마다 새로 자라는 사슴뿔의 강인한 재생력은 ‘죽은 듯 기절한 사람을 살리는 약’이라는 상징성과 맞닿아 있다는 문화인류학적 가설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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