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허점을 논파하는 설전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서로의 주장이 팽팽히 부딪혀 숨이 막힐 때도 있고, 지지부진한 논쟁에 지치기도 한다. 때로는 절묘한 촌철살인이 벌어지기도 하여 듣는 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기도 한다.
서로의 주장이 다른 상황에서, 언뜻 생각하면 말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인 것 같지만 건설적인 논의를 통해 모두에게 최선이 되는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존중'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장면들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드라마 <공부의 신>에서 고등학생이었던 강석호의 은사이신 김복순 선생님이 그를 데리고 수학을 가르쳐줄 차기봉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두 선생님이 웃으며 서로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이다.
드라마 <공부의 신> 中
김복순 선생님은 어머니와 같은 푸근함과 인자함이 돋보이는 분이고, 차기봉 선생님은 호랑이 같이 엄하게 학생을 지도하는 스타일이다. 교사로서의 개성은 거의 정반대라고 할 수 있지만 학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데는 하나임을 알았기에 지도하는 방식은 달라도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
또 하나는 영화 남한산성에서 이조판서 최명길과 예조판서 김상헌이 최명길의 집 앞에서 마주쳤을 때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서로에게 묵례하는 모습이다.
영화 <남한산성> 中
최명길은 청나라와 화친해야 한다는 주화론을 역설했고 김상헌은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척화론을 밀어붙였다. 두 사람은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며 임금 앞에서 격론을 벌이곤 했다. 그러나 나라의 안위를 염려하는 데는 하나임을 알기에 조정에서는 서로의 주장을 맹렬히 반대하면서도 한 나라의 신하로서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느 정도 완성된 인격을 가진 두 존재가 서로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서로에게 예를 표하는 모습은 내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을 준다. 요즘 점차 분명히 느끼는 것이 있는데, 사람에게 어떤 이념이나 사상의 잣대를 들이대기 이전에 먼저 그 사람 자체, 그 사람의 마음을 똑바로 마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에 여유가 있고 진실된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정직하게 마주 대하는 데서 나오는 존중의 향기가 배어 나온다.
그러나 요즘은 세태가 각박해진 것인지, 사람들의 마음속에 상처가 많이 쌓인 것인지 조금만 자기 생각과 다른 말을 해도 서로를 헐뜯고 깎아내리기에만 바쁜 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
사람들 사이에서 존중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일단은 나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