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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음 Apr 04. 2024

향기

향은 머무는가. 향기는 영원할까.

그렇다면 금은? 금은 영원한가. 보석에 마음을 빼앗기는 까닭은 그것의 번쩍거림인가, 영원함인가.

영원한 것은 있나. 이 세상이 유한한 것이라면 왜 우리는 그렇게도 영원한 것에 매달리는가.

아니, 그렇기에 우리는 영원을 염원하는가.


찬장에서 컵이 떨어진다.

내 머리보다도 높은 곳에서부터.

발을 뻗어 받아볼까, 하지만 아프겠지. 그런 마음에 오히려 발을 피했다.

산산조각 난 컵의 조각들의 무늬가 밋밋하다. 그다지 애정하지 않았던 컵이라 다행이야.

그런데 어딘가 섭하다. 이제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쉽다. 그런 날이 있었다.


코와 입을 가리고 먼지를 떨어내던 어느 날에, 오래 보이지 않았던 작은 카메라를 발견한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꽤나 아끼던 것이었는데. 마지막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 오래전 일이다.

족히 몇 년은 보지 못했는데, 그 시간이 힘들거나 괴롭지 않았다. 반대였다면 어땠으려나.


찬장에서 카메라가 떨어지고 작별 없이 밋밋한 컵이 자취를 감췄다면

나는 카메라 없이 지낼 날들이 서운했을까. 컵의 묘연함에 무감각했을까.


그런 날이 있었다.

먼 나라로 오래 떠난다던 친구. 멀리, 오래. 그런 말들이 시큼하다.

빠르면 육 년 안에 올 것 같아. 사실 그렇게 가깝지는 않던 사람. 그러나 컵이 깨어지듯이.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하다. 육 년이라니, 지독하게 길군.


그 긴 시간의 이름이 떠올린 누군가의 얼굴. 둘도 없이 지내던, 자연히 교류가 끊긴 오래 전의 사람.

당연히 금방 또 보겠거니 하다 서서히 희미해진 이름들.

마지막으로 본 날이 언제였더라.

작별이 없는 마지막은 냉랭함을 남기지 않아. 서서히 식어갈 뿐이지.


그런 생각을 하자 목 뒤편으로부터 소름이 돋아서

어디에선가 두려움 같은 것이 빠르게 몰려와 나를 지나서

향수 몇 가지를 꺼내 구석구석에 뿌리고 발랐다.


들리지 않게 속삭이면서.

내 향이 지나면 나를 떠올려 줘.

내 향이 사라지면 나를 기억해 줘.

나를 잊지 말아 줘. 내 이름으로 아파해 줘.

내 향기를 지독할 만큼 그리워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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