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십 일 년의 마지막 즈음에 아빠는 기침을 하다가 피를 뱉었다. 병원에 몇 번 다녀온 아버지는 저녁에 가족을 한 자리에 모았다. 폐암이었다. 발견이 늦었고 전이도 진행되었다고 했다. 아빠는 그런 것들을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담담하게 들었다. 동생들은 조금씩 울었다. 나는 아니었다. 그게 아빠의 방식이었고, 그에게서 자라난 나의 방식이었다. 불이 꺼지고 모두 방에 가 누웠다. 나는 침대에 누워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제야 울었다. 이제 와서야 하는 생각이지만 아빠도 그날에 방에 가서 울었으려나.
이천이십삼 년 팔월에, 나는 병장 사호봉이 되었다. 그건 이번 달이면 민간인이 된다는 뜻이었다. 곧 집에 갈 때가 된 나는 핸드폰이 두 개였다. 밤이 되면 모포를 뒤집어쓰고 몰래 핸드폰을 꺼냈다. 하다가 졸리면 베개밑에 넣어두고 잤다.
잠이 한창이던 중에 누군가 내 얼굴에 후레쉬 불빛을 쏘아댔다. 나 불침번도 아닌데, 아니 그보다 어떤 새끼가... 눈을 뜨니 당직사관이었다. 졸린 눈으로 바라본 그의 표정은 어딘가 잔뜩 미안해 보였다. 그러나 그 감정이 단지 내 얼굴에 후레쉬를 쏘아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왜인지 그렇게 느껴졌다. 당직 사관은 나를 복도로 불러내더니 자신의 휴대전화를 주며 전화를 받아 보라고 했다. 작은 아버지였다. 여느 때와 같이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 작은 아버지는 빨리 서울로 와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의 상태가 위독하다고, 오늘이 고비일 것 같다고. 여전히 그 차분한 목소리로.
나는 예상보다 빠른 휴가를 준비했다. 그 새벽에 동기들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짐을 챙기느라 애를 먹었다. 관물대를 여닫는 그 소리가 어찌나 요란하던지. 베개 밑에서 두 번째 핸드폰을 챙기고 이틀 뒤면 전역하는 한민이 형의 얼굴을 잠깐 돌아보고 나왔다. 막내 고모부가 날 데리러 오셨다. 차분함이 우리 집안의 미덕일까. 막내 고모부도 차분함이라면 작은 아버지 못지않다. 그런 막내 고모부가 벌써 부대 앞에 도착하셨다는 건 꽤나 놀라웠다. 어쩌면 그분의 삶에서 가장 빠른 운전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악수와 짧은 인사를 나누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차는 한적한 도로를 달리느라 어느새 하남을 거의 지났다. 서울에 막 진입하려던 대목에서 막내 고모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작은 아버지였다. 고모부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작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지금만큼 차분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수화기 너머의 음성이 다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난 몇 개의 단어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고모부는 작게 몇 번 대답하시고는 전화를 끊었다. 다시 침묵이었다. 나는 통화 내용이 궁금했다. 통화의 내용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묻지 않았다. 내가 물으면 대답을 들을까 봐, 그 대답이 내가 예상하는 대답이 아닐까 봐 무서웠다. 다시 한참 동안 침묵이었다. 곁눈질로 고모부를 살폈다. 무표정한 얼굴. 조금은 눈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운전을 할 때면 원래 눈동자가 흔들리던가. 나는 그 무표정을 해석하느라 침을 연달아 삼켰다. 그냥 물어볼까. 별 것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고비가 지나갔다는 희소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묻지 못했다. 허리가 조금 아팠다. 자세를 고쳐 앉고 싶었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 침묵이 깨질까봐서. 아빠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을까봐서.
침묵을 깨뜨린 것은 고모부의 작은 몸짓이었다. 고모부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는 다른 한 손을 내 손 위에 작게 올렸다. 손이 뜨거웠다. 그 온도의 의미가 안도인지 위로인지 알 수 없었다. 공기가 너무 조용해서 미친 듯이 뛰는 심장 소리가 다 들렸다. 몸이 떨려 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문 너머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 다가와 있다. 그것은 문을 두드리지도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서 있다. 나는 문을 열지 않기로 했다. 차창에 머리를 가져다 대었다. 바퀴가 노면을 지나는 소리가 전해졌다. 아플 만큼 귀를 더 가까이 대었다. 그 소음에 숨어서 이대로 아무것도 듣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