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유히 Oct 07. 2020

02. 같이 사는 중입니다


예전에는 처방전을 자세히 본 적이 없다. 그냥 약국에 가서 건네주고 약을 받아오기에 바빴다. 국가에서 진료비를 지원하는 산정특례에 대해 알고나선 질병분류기호에 대해서도 알게되었고 그게 처방전에도 적혀있다는 것 역시 이렇게 아프고 나서야 알게되었다. 이제 처방전에 적힌 질병코드는 M32.9 상세불명의 전신홍반루푸스와 M350 쇼그렌증후군 2가지다. (최근에는 비타민D 처방으로 하나가 더 추가되어 아주 칸이 비좁다.) 루푸스 확진 이후 주상병이 루푸스가 되고 부상병이 쇼그렌증후군이 되었다. 아무튼 나는 이것들과 같이 산다. 아마 다른 자가면역질환도 그렇겠지만, 친구처럼 동행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다소 예민하고 성격이 좀 있고, 손이 매운지 한대만 맞아도 아픈 그런 친구지만 늘 그렇진 않다. 때로는 조용하고 온화한 그녀와 이왕이면 잘 지내보려 한다.


이 친구를 알게된 지 5년차.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루푸스는 햇빛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선크림을 꼬박 챙겨바르고 양산을 쓰는 것이 좋다. 내가 7월에 부산 출장을 다녀온 이후 루푸스 활성기가 온 것을 보면 한여름 뜨거운 부산의 햇빛을 온몸으로 받았던 것이 원인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병원과 친해져야 한다. 나는 세번의 입원 모두 내가 입원할 정도로 아픈건지 모르는 상태로, 심지어 각각 다른 증상으로 입원했다. 처음엔 열을 동반해서, 두번째는 열은 좀 있지만 괜찮은 것 같은데 외래에 갔다가 염증수치가 높게 나와서, 세번째는 가슴 통증으로. 특히 세번째 입원할 때는 어느정도 경험이 있으니까 내 판단에 열도 없고 입원은 아닐거다 생각했는데 입원 당첨이었다. 특히 나처럼 둔한 사람이라면 혼자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처음엔 약만 잘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불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며 약만 먹는다면, 결국 약을 줄였을 때 또다시 활성기를 찾아오게 할 뿐이다. 내 경우엔 스테로이드를 2알 아래로 줄이면 꼭 활성기가 찾아와서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그나마 최근 1년 동안은 비교적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몸에 나쁜 것을 덜 먹으려고 노력한 탓인지 아직까지 네번째 입원은 하지 않았고 컨디션도 좋은 편이다. 퇴원을 하더라도 한동안 고용량으로 스테로이드를 복용해야 하고, 문페이스와 기타 부작용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에 가능하면 입원하지 않도록 평소에 몸관리를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대신 부담스럽지 않게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주변에 루푸스 환우분들을 보면 식단일기를 써서 내 몸에 잘 안맞는 음식을 가려서 식사하는 분들도 있고, 매일매일 가볍게 운동하는 영상을 SNS에 올리는 분도 있다. 나는 식단일기는 쓰다가 빠뜨리는 날이 많아서 포기했지만 최소한 술은 금주, 카페인은 디카페인으로 바꾸려고 노력중이다. 그리고 몸이 무겁고 찌뿌둥해서 움직이기 싫더라도 동네 한바퀴 걸으면 한결 나아지는 걸 몸소 체험하고 나서는 자주 나가서 걸으려고 한다.


루푸스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한다. 환자 개개인마다 증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의 루푸스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5년차가 되어서야 내 몸의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에 걷기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조금 게으른 탓도 있지만.) 앞으로도 내가 모르는 증상이 나타나 날 계속 당황스럽게 하겠지만, 나 역시 계속해서 탐구할 예정이다. 우린 같이 살고 있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