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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운시티 Jan 18. 2021

공공기관 재직자에 관하여

대한민국 직장인 중 한 무리, 41만 명의 실상

필자는 2014년 말 연구소 생활을 시작으로 2016년부터 지금까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로 지정된 공공기관에 재직 중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의 문턱에서 몇날 며칠을 밤새며 소위 '공공'의 성격을 띠는 안정적인 회사에 들어갈 것이냐, 굴지의 S사에 들어갈 것이냐 두 장의 합격장을 받아 들고 고민하던 시절을 거쳐 어느덧 8년 차 공공기관 재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사회초년생으로 차장님, 부장님, 이사님뿐만 아니라 주무부처, 감사원, 행정안전부 등 수많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집살이를 하면서 때로는 회의감을 느끼기도 하고 밤새 급한 불을 끄고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세종시에서 주무부처 공무원과 치열하게 회의를 하기도 하고, 외교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개발도상국에서 누가 업어가도 모를 숙소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선잠을 자기도 했으며, 민원인의 갑질에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민원인의 따뜻한 응원 한마디에 미생의 주인공처럼 퇴근 버스 길에 씩 웃으며 피로를 씻기도 했다.


대기업 직장인에게는 비교적 낮은 연봉과 복지로 '계륵'같은 존재이며, 중소기업 재직자에게는 비교적 탄탄한 여건을 갖춘 곳으로 인식되고, 시민들에게는 때때로 '방만'을 일삼고 공무원과 결이 비슷한 공직자로 비추어지는 우리는 공무원도 아니고 마냥 안정적이지도 않은 일개 직장인에 불과하다는 표현에 반기를 드는 공공기관 재직자는 없을 것이다.


종종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지 못하는 시민, 우리와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취준생, 고달픈 직장생활에 지친 채 다른 공공기관은 어떤지 기웃기웃하는 또 다른 재직자에게 쉽사리 엿보지 못한 우리의 단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의 실체에 대해서 접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2가지이다.

알리오(ALIO).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이라 불리는 사이트에는 공공기관의 각종 정보에 대해 명시가 되어 있으며, 회사에서 무엇을 하기 위해 몇 명이 모여서 얼마의 연봉을 받으며 어떤 지적을 매년 받으며 어떤 고민을 하는지 상세히 적혀 있다. 취준생이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궁금할 때 열어보는 곳이기도 하며, 방만경영이라는 주제로 공공기관을 후려 패는 기자에게 소스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령, A라는 기관에 10명의 직원이 있다고 하자. 정년퇴임을 앞둔 5명의 부장이 8천5백만 원의 연봉, 3명의 차장이 5천5백만 원의 연봉, 2명의 사원이 2천8백만 원의 연봉을 받으면 평균 연봉은 6,460만 원이다.



기자: '억대 인건비에 다가서는 신의 직장, 성과급 잔치.. 방만경영 우려'

대기업 재직자:'안정적인 건 좋은데, 우리 회사 복지와 연봉, 임금인상률 생각하면 사실 가고 싶지는 않다 ^^'

중소기업 재직자:'역시 연봉도 괜찮고 워라밸에 고용 안정성까지.. 근데 공공기관 본사는 매일같이 저 큰 건물에 왜 불을 켜 두지. 방만 경영한다더니 세금 낭비 아니야..?'

취준생: "이 회사에 다니면 정년이 보장되고 7천만 원에 가까운 연봉도 받을 수 있겠다! 잘리지도 않고 대기업보다 칼퇴하기 쉽겠지? :D"



우리에게 가장 호의적인(?) 태도와 선망의 눈빛을 보이는 취준생은 입사 후, 평균 7천만 원의 나쁘지 않은 월급과 비교적 나쁘지 않은 장밋빛 미래를 생각하지만 입사 후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차장: "공공기관은 말이야. 입사 초에는 성과급이 거의 없다시피 해. 시간이 지나면 연봉이 나쁘지 않을 거야~"


공공기관의 성과급은 소위 사기업에서 플러스알파의 개념으로 주는 보너스 개념이 아닌 연봉의 일부에 가까운 개념이며 그 등락이 미미하다. 성과급이 없는 연봉은 사실 근로의 의욕을 잃을 만큼 매우 적은 편이다. 그런 성과급이 입사 초에 적은 이유는 기재부에서 매년 '경영실적 평가'를 통해 지난해 성과를 평가하고 이를 기준으로 성과급을 주기 때문이다. 일한 만큼 받는 한치의 오차 없는 정직한 성과급이기에 첫 해에는 받을 수 없고 둘째 해는 작년에 일한 날만큼만 받을 수 있다.


3년 차부터 일정한 궤도에 오르는 급여는 비교적 안정적인 고용형태와 함께 내가 대기업 합격증을 버리고 지금껏 재직하는 유일한(?) 이유라 할 수 있다.


알리오는 '임원 평균연봉', '복리후생비', '육아휴직 수' 등 세상 달콤한 숫자들의 향연이기도 하다. 임원이 받는 억대 연봉 잔치, 복리후생으로 제공되는 다양한 혜택, 유명무실한 제도로만 알았으나 마음껏 쓸 수 있는 육아휴직. 아마 공공기관 재직자들은 이쯤에서 미간을 찌푸리며 댓글을 달기 위해 스크롤을 내리거나, 필자가 어떤 회사에서 어떤 복지를 누리기에 이런 글을 쓰는 건지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몇 가지 비유로 팩트를 정리하자면, 공공기관에서 임원 평균 연봉을 받는다는 것은 대기업에 다니는 재직자가 임원을 달 확률보다는 높을지도 모른다. 복리후생을 골고루 누린다는 것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각종 복지정책의 수혜에 대해 자격요건을 다 갖추어서 골고루 누릴 확률보다 높을지도 모른다. 공공기관에 재직하기에 육아휴직과 같은 제도에 마냥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드라마에 출연한 직장인 역할 주인공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마냥 공공기관 재직자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녹록지 않은 대한민국 일개 직장인의 삶에 대해 공감받고 싶은 마음이 한 스푼, 이러한 직장 생활마저 아름다워 보여서 도전하는 취준생(또는 이직을 준비하는 직장인) 기운을 북돋기 위한 마음이 한 스푼, 방만 경영에 찌들어 보였던 공무원 비슷한 사람들이 퍽퍽한 직장생활에도 찌들어 있다고 토로하는 마음이 한 스푼.

한 스푼씩 모아서 이 시리즈의 끝에 필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이다.


새벽을 여는 시장 사람, 펜의 힘을 믿는 기자,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예술인, 달변으로 세상을 바꾸는 정치인, 일각을 다투는 대학병원 의사, 하늘을 가르는 파일럿처럼


대한민국 정책 한 글자 한 글자를 현실로 바꾸어 나가는 우리에게도 그들 못지않은 열정과 그럴싸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41만 명의 공공기관 재직자, 80만 명의 취준생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세상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나머지 국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이번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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