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곁을 떠나는 걸그룹들에 대해.

by LRO

최근 몇 년간 원더걸스와 카라 같은 2세대 걸그룹 시대의 막을 연 팀을 포함하여 2NE1, 포미닛, 씨스타 등 성공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던 걸 그룹들이 해체를 선택했다. f(x)는 오랜 공백기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고, 소녀시대 역시 2017년을 기점으로 각자의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대부분의 그룹들이 손익 분기점을 넘기기 힘든 아이돌 시장에서 이 그룹들은 성공적으로 활동을 지속해온 걸 그룹의 좋은 사례였다. 그럼에도 중견 걸 그룹들이 연이어 해체를 하거나 활동을 오랫동안 쉬고 있는 이 현상은 비슷한 세대의 보이 그룹 상당수가 데뷔 10년을 넘기거나 10년 차에 가깝게 활동하고 있는 것과 사뭇 다르다. 유독 걸 그룹은 우리의 곁을 일찍 떠난다.


보이 그룹은 코어 팬층을, 걸 그룹은 대중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은 아이돌 업계에서 암묵적이지만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구매력이 높은 여성 팬덤을 구축하는 것이 보이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운 걸 그룹은 아이돌의 전통적인 팬층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어필을 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대중적인 곡을 많이 발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예쁘고 날씬한 외모를 유지하고, 수동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재미있고 솔직해야 하며, 무대에서는 강도 높은 노출을 감행하면서도 ‘순수한’ 소녀로 남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조건들은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 2015)>에서 주인공 에이미가 비꼬듯 비판한, 남성들이 바라는 ‘쿨 걸’을 묘사한 대사를 연상시킨다.


"쿨 걸은 섹시하고, 똑똑하고, 재미있으면서 축구와 포커, 야한 농담을 좋아하는 여자다. 쿨 걸은 절대로 화를 내지 않고 사랑스럽게 미소 지으며 남자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둔다.” (‘나를 찾아줘’ 중 에이미의 독백)


걸 그룹은 오랫동안 대중들에 의해 그들의 노래와 춤 속에서, 방송에서, 때로는 그들의 개인적인 생활에서 이러한 요건과 태도를 유지하도록 강요되어왔다. 이를 충족하지 못하거나 그를 거부한 걸 그룹 멤버는 늘 가십 기사와 SNS에 오르내리며 그들의 인간성과 성격에 대해 모욕당한다. 방송에서 웃지 않고, 애교를 거부하고, 자신의 연애사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지 않거나 너무 솔직하게 밝힌 그들에게는 ‘태도 논란’을 제목으로 한 기사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 요건들을 잘 지키기만 하면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 순수하면서도 섹시하고, 솔직하고 털털하고, 꿈속의 이상형 같지만 현실적인 여자친구 같아야 하는 걸 그룹들은 보이 그룹보다 빠르게 그 이미지가 소모된다. 변덕스러운 대중들의 취향에 맞춰 늘 새로운 컨셉의 곡과 춤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걸 그룹은 비교적 일관된 컨셉과 장르의 곡들을 보여주는 보이 그룹과는 달리 사랑에 빠진 여고생이나, 털털하고 스포티한 언니, 섹시한 팜므파탈 등 많은 역할들을 빠른 시간 안에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대중들은 보여줄 만한 것을 다 보여준 걸 그룹에게서 눈을 돌리고 더 어리고 순수해 '보이는' 새로운 그룹들에게 주목한다. 쇼 비즈니스 업계가 아무리 판타지를 파는 곳이라지만, 걸 그룹으로 대표되는 여성 집단에게는 오로지 이 하나의 판타지만이 허락되고 있다. 데뷔 10년을 넘기거나 10년을 바라보는 보이 그룹의 수가, 소위 '장수 걸 그룹'이라 불리는 중견 걸 그룹의 수를 훌쩍 넘기는 반대되는 현실과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이 현상은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고 소비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걸 그룹들이 가지는 음악적, 직업적 부담과 사회적 여성 이슈들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들이 쿨 걸이 되든, 되지 않든, 우리는 유독 걸 그룹들에게 가혹하고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이효리는 2017년 <BLACK>의 쇼케이스에서 후배들에게 “걸 그룹들이 (수명이) 짧고,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눈앞의 일이 다인 것 같지만 다음 단계를 생각하며 자신을 다독여야 한다.”라고 인터뷰한 바가 있다. 공교롭게도 이효리는 2010년 <H-LOGIC>을 발표했을 때 미디어를 통해 비슷한 어드바이스를 한 적이 있다. 2010년은 소녀시대, 씨스타, 미스에이, 레인보우, 2NE1, 카라와 같은 2세대 걸 그룹들이 데뷔를 하거나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그들 중 대부분은 해체를 하거나 사실상 해체 상태에 놓여있다. 그리고 2010년대 중후반, 오늘날에 데뷔한 새로운 걸 그룹들은 분기에 한 번씩 컴백해 새로운 곡과 컨셉을 선보이고 애교와 웃음을 지어 보이는 중이다. 우리가 걸 그룹을 소비하는 방식이 더 관대해지지 않는 이상, 무언가 다른 것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그들의 시도에 지지와 소비를 보내지 않는 이상 이 현상은 몇 번이고 반복될 것이 분명하다. 다시 7년이 지난 후 그들 중 누가 남고 누가 떠나게 될까.



※ 2017년 7월 9일 [디아티스트매거진] 게재한 동명의 칼럼을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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