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에 대한 글을 쓰면서 <프로듀스 101> 시리즈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본인에게는 진실인 이야기다. 이 서바이벌을 통해 데뷔하는 그룹은 전형적으로 ‘아이돌스럽다’고 여겨지는 프로덕션의 곡들을 선보이고, 하나의 특징적이고 일관적인 컨셉보다는 프로젝트 기간이 끝날 때까지 최대한 많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주된 활동 포맷으로 정해진다. 걸 그룹에 비해 더 좁고 경직된 컨셉을 오가는 보이 그룹이니만큼 워너원은 더욱 그랬다. 길고 험난한 경쟁과 투표의 끝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란 게 어디서 본 것 같은 곡과 컨셉이라니, 그것만큼 기운 빠지는 일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쇼에 긍정적인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는 오랫동안 아이돌 팬덤 내에서 자정되지 못했던 병폐들이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팬들을 통해 종합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의 과거 행적과 SNS 사용 기록이 들추어져 소비되는 것은 놀랍지도 않은 수준이다. 아이돌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하는 “홈마”라 불리는 사생팬들이 벌써 대거 양산되어 촬영 데이터를 고가의 돈을 주고받으며 유포했고, 각 멤버를 지지하는 팬 사이에서 특정 멤버의 이미지 실추와 팀 퇴출을 위해 한 멤버의 팬들이 다른 멤버를 비방한 오픈 채팅방을 개설했다는 루머를 퍼뜨리는 등 비상식적인 일들이 숱하게 벌어졌다. 특정 멤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는 의미로 “파양”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은 <프로듀스 101>과 워너원의 팬들이 그들이 아이돌에게 어떤 사고 방식으로 접근라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자신의 ‘최애’의 성공을 위한 정도 이상의 행위들과, "팬들 덕분에 인기와 소득을 벌어들이고 있으니 팬은 그들의 모든 것을 소비해도 된다"는 소유욕이 프로그램과 워너원을 둘러싸고 드러난 셈이다. 내가 지지하는 멤버를 내가 키운다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특유의 이입하기 좋은 오락성과, 이들의 데뷔까지 결정지을 수 있는 권력이 시청자에게 주어지는 프로그램 포맷은 이런 병폐를 더욱 부추겼다.
그럼에도 <프로듀스 101>과 그 우승자들로 이루어진 그룹 워너원에 대한 관심은 시즌 1만큼이나 크고 열정적이었다. 많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들을 불러냈고, 해체하는 순간까지 각종 브랜드의 홍보 모델로까지 발탁되었다. 많은 신인 아이돌 그룹이 거쳐야 하는 인지도 상승과 캐릭터 구축의 과제를 프로그램 내에서 이미 수행했고, 개인별 티저에서는 두 곡으로 이루어진 두 개 버전의 영상을 선보이며 어느 곡을 타이틀 곡으로 하면 좋을지 까지 팬들의 투표에 맡기며 국민 프로듀서의 역할-혹은 권력-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주는 등 소비자들을 손쉽게 만족시킬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걸 그룹보다는 보이 그룹에게 더 많은 팬이 쏠리는 아이돌 시장 특유의 구조까지 거들었다. 그들의 음악적 행보보다도 데뷔와 인기, 사생활, 그리고 얼마나 팬들의 비위를 맞춰주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소비의 기본적 스탠스가 되어버린 현재의 한국 아이돌 시장에서 <프로듀스 101>과 그룹 워너원은 일종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상당수의 아이돌 팬들과 많은 학술 자료들은 아이돌 그룹에 대한 소비가 비이성적인 유사 연애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소비 행태의 부정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쩌면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프로듀스 101>은 각 기획사에서 각자의 방향성을 가지고 트레이닝한, 각각의 목적을 가지고 서바이벌에 참여한 연습생들이 모여 만들어진, 국내 아이돌 시장 역사상 가장 거대한 프로젝트이고 워너원은 그 결과물이다. 이렇게 거대한 기획의 방향성과 프로덕션이 아이돌 시장에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성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 아이돌 그룹의 행보와 프로덕션을 재활용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리고 아이돌 시장이 이미 가지고 있던 병폐를 재생산하고 확대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리고, 2019년의 우리가 지금 두 눈으로 목도하고 있듯이 견고하게 쌓아올려진 팬덤의 벽 안에서 보이 그룹 멤버들이 팬덤을 그저 '수익원'과 방패로 여기고 그들의 영향력과 권력을 반사회적이거나 여성혐오적인 행위와 작업물들을 재생산하는 현상을 공고히 하게 된다면. 우리가 앞으로도 이 시리즈에 관심을 가져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에게는 이 해묵은 유희를 그만둘 이유만이 남아있다.
※ 2017년 8월 4일 [디아티스트매거진]에 개제한 동명의 칼럼을 수정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