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 늘 그 자리에 있던.

by LRO

팀 활동 이전, 그리고 이후의 설리의 행적에는 늘 구설과 해석이 뒤따라왔다. 그의 SNS 활동과 사생활에 따라붙은 비판과 목소리들에 대해, 지금까지는 상세한 (혹은 '친절한') 답변을 한 적 없는 설리의 모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Goblin]은 그 모든 의문과 비판, 옹호와 지지에 대한 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앨범은 설리의 대답인 동시에 또 다른 '떡밥'이기도 하다. [Goblin]은 지금까지의 설리가 그랬듯 친절하고 알기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설리는 그저 하고 싶은 말을, 자신이 하고 싶을 때 할 뿐이다.

판타지 속 괴물의 이름을 한 타이틀 곡 '고블린(Goblin)'은 직관적이면서도 매우 복잡한 곡이다. 맑고 기묘한 글로켄슈필 소리와 얼핏 불협화음인 듯 한 코러스부터 어딘지 그로테스크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의미심장한 가사와 해리성 정신 장애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는 뮤직 비디오까지 보편적이거나 알기 쉬운 이야기란 '고블린(Goblin)'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화자인 '설리'조차도 그들을 제대로 설명하거나 정의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설리의 존재감은 이 모든 요소들이 붕 뜨지 않게 중심을 잡고 있는다. 경쾌한 멜로디와 사운드 속 기교 없이 담담하게 가사를 읊는 설리의 목소리와, 과장되고 다양한 스타일을 했지만 설리 특유의 독특한 태도는 늘 그래 왔듯 꾸밈없고 직설적이다. 레트로스러우면서도 매우 컨셉추얼한 작업물임에도 이 모든 요소들 사이에서 설리의 존재감을 의식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이 존재감은 감성적인 칠웨이브 풍의 '온더문(On The Moon)'과 앰비언트 사운드와 주술적인 가사의 조합이 독특한 '도로시(Dorothy)'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뜻한 멜로디와 사운드, 은유적이기도 직설적이기도 한 가사 사이에서 설리는 매우 뚜렷하게 존재한다. 독특한 이미지와 사운드로 가득한 [Goblin]에서 설리라는 인물 외에서 의미나 해석을 찾으려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앨범은 설리의 온전한 존재를 알리기 위한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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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파편적으로 존재한다. 아역 배우 시절부터 시작해, f(x) 활동기의 설리와 탈퇴 전후의 모습, 배우 활동, 그의 SNS 활동에 크고 작은 구설이 따라붙던 최근의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이 미디어에 비춰졌지만 그 모습들은 하나로 합쳐지지 못하고 조각난 상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설리 이전에도 수 없이 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드러내고 때로는 실수를 하는 모습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그들에게는 논란을 일부러 유발한다거나, 계산적이라거나, 혹은 멍청하다거나 하는 꼬리표들이 붙었고 그들을 매우 제한적으로, 또 파편적으로 바라보고 소비하는 것에 일조했다.


그렇지만 설리는 늘 같은 자리에 있다. 설리는 자신만의 태도와 존재감을 가지고 의연하기도 하고 혼란을 겪기도 하고, 도발적이기도 유연하기도 한 모습으로. 그 모든 구설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SNS 채널을 닫지 않았고, 유튜브 채널을 통해 매우 차분하고 진중한 태도와 생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방송 활동을 통해 자신이 겪은 과정들과 생각을 정돈된 언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잘 재단된 모습이 아닌, 스스로의 온전한 모습을 표현하려는 최근의 많은 시도들 사이에서도 설리는 가장 직설적으로 말을 걸어온다. 그것이 설리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를 어떤 최전선의 위치에 놓이게 했지만, 그럼에도 설리는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한다. [Goblin]은 음악적으로 무언가를 이루려는 음반은 아니다. 이 앨범의 곡과 가사, 뮤직비디오는 매우 간결한 메세지를 전하려는 목적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여기 있는데"라는 아주 분명한 사실 말이다. 설령 그 메세지에서 사람들이 무언가 다른 것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다 하더라도, 설리는 지금 이 곳에 우리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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