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게이트 이후의 K-POP (1)
버닝썬 폭행 사건으로 촉발된 승리 게이트는 클럽이라는 세계의 민낯을 낱낱이 공개했다. 버닝썬 뿐 아니라 다른 유명 클럽을 중심으로 한 범죄 행위들도 나날이 보도되는 중이다. 이 사건이 공개되기 수개월 전부터 이어진 클럽과 칵테일 바의 강간 약물 사용에 대한 폭로와 지탄 역시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기도 했다. 이번 사건들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이 사건들은 우리가 알면서도 모른 척 해온 영역에 속한다. 오랫동안 밤 문화의 상징으로 군림해온 클럽이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들과 징조들은 쭉 있어왔다. 클럽 내에서 일어나는 성희롱, 성추행과 폭력, 마약 사건은 너무 빈번해서 특종 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때로 클럽과 관련된 강력범죄 기사를 접할 때마다 사람들은 섬찟함을 느끼기는 해도 그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버닝썬-승리 게이트는 우리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던 판타지와 안일함을 걷어내고 클럽 조직과 문화에 대한 회의와 경계를 가지도록 한 셈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지금, 다시 클럽과 술,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등을 소재로 한 대중음악들이 또다시 슬금슬금 발표되고 있다. 은근히 남성의 시각에서 술과 여성을 연관 짓거나 클럽이라는 공간을 묘사하고 암시하는 작업물들이. 당연히 경각심을 전달하거나 비판의 메세지를 담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다. 늘 그래 왔듯 클럽과 술, 그리고 비슷한 결의 특정 소재들에 대한 판타지와 클리세를 은근하게 재생산할 뿐이다. 클럽이라는 공간과 강간 약물의 매개로 전락한 술,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이용해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피해와 정신적인 충격을 입힌 여성 혐오자들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음에도, 이 유해한 판타지는 다시금 재생산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판타지가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던 이유는, 클럽이라는 공간이 지금의 문화 안에서 현실의 그것이 지니는 실제 가치를 뛰어넘는 상징적이고 문화적인 의미가 부여된 채 운영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주로 미디어의 몫이었다.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사람들'의 영역, 하룻밤의 '쿨한' 사랑 혹은 욕망의 공간으로 그려진 클럽은 음악과 뮤직비디오, 영화 등의 콘텐츠들 안에서 사람들의 환상에 불을 붙였다. 간혹 클럽을 범죄의 온상지로 그려내는 작품이 나온다 해도 그것은 고발적인 메세지보다는 포르노그라피적 판타지에 기반한 모양을 할 뿐이었다. 이렇게 가공된 판타지는, 그 판타지를 지닌 사람들을 클럽으로 끌고 왔고 이러한 현실을 미디어는 다시 반영하여 재생산해 악순환의 고리를 완성시켰다. 그 안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범죄와 폐단들마저 화려한 조명과 음악, 술로 장식하면서.
단순히 버닝썬-승리 게이트라는 사건이 가진 상징인 클럽과 술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게이트에서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은 승리와 정준영, 이종현, 최종훈, 용준형 등이 서로 주고받은 불법 촬영물과 대화 기록이었다. 이 사건은 최근 수년간 소라넷 파문을 시작으로 시작된 웹하드 카르텔, 성희롱 단톡방 등 무수한 유사 사건들과 동일하게, 여성을 존중받아야 할 인간으로 보지 않고 물화(物化)하는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정서는 범죄 사건에서 뿐 아니라 문화, 예술 콘텐츠 안에서 매우 강한 영향을 미쳤다. 승리가 처음으로 발표한 솔로곡인 'Strong Baby'는 클럽에서 처음 만난 여성과의 성적인 긴장감과 욕망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의 2018년 앨범인 [THE GREAT SEUNGRI] 역시 마찬가지였다. 앨범의 수록곡과 뮤직비디오에서 클럽에서의 만남과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은유하는 가사와 이미지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보다 더한 케이스들도 얼마든지 있다. 2009년에 발표된 G-Dragon의 'She's Gone'은 대놓고 여성에게 집착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남성을 소재로 삼았다. 비스트 전 멤버인 장현승이 2015년에 발표한 '사랑한다고'는 영화 <비스티 보이즈>를 모티브로 해, 현실에 있을 법한 폭력적인 남성을 화자로 삼았다. 직접적이거나 은유적인 표현으로 여성혐오 정서를 재생산한 곡들의 예시를 대라면 끝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자면, 아이돌 씬에서 클럽에서 술을 마시며 옷을 덜 입은 여성들을 끼고 남성성을 과시하며 여성을 품평하는 내용의 곡과 비디오를 발표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이돌 시장의 절대다수 소비자인 여성의 존엄을 존중하는 것보다 남성들 간에 공유하는 여성혐오 정서를 창작 활동의 중점으로 두고 있다는 의미니까. 이런 현상은 단지 업계 종사자들이 여성혐오를 공고하게 지켜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비자들 역시 오랫동안 남성의 시각에서 그려진 여성에 대한 착취를 장르적 법칙이나 클리세, 취향, 관점의 영역으로 치부했다. 그것들이 현실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소비하고 때로는 옹호했다. 예술 행위에서 표현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현실에서 분리해 감상되어야 한다는 변명들과 함께.
그러나 예술은 현실과 분리될 수 없다. 예술은 작가의 사상과 생각에 의해 재해석되고 재생산된 현실이고, 또 감상자에게 크고 작은 영향력을 전달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클럽과 술, 여성혐오를 소재를 창작의 재료로 삼았다고 모두가 승리처럼 실제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창작의 소재로 삼지 않는다고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대중예술 업계에서 저명한 아티스트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표된 창작물은 감상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 콘텐츠에서 그려진 클럽 문화를 학습해온 우리가, 그동안 몇 번이고 그 안에서의 폐단에 대해 고발되었음에도 그마저도 포함시켜 클럽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된 것처럼. 또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와 착취를 예술의 소재처럼 여겨온 것처럼. 이러한 일들을 당장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아니라 현실에서 가끔씩 벌어지는, 비극적이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정도로 치부하게 되어버린 것처럼.
버닝썬-승리 게이트로 잠시 숨을 죽였던 남성 아티스트들과 기획사들이 또 이러한 소재들을 다룬 곡이나 비디오를 만들어 발표하는 지금, 다시금 현실과 예술은 별개의 것이라는 판타지가 우리의 눈 앞을 가리려 하고 있다. 심지어 일련의 사건들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10대에서 20대 여성들이 주축을 이루는 아이돌 팝 씬에서. 불행히도 팬덤과 K-POP 소비자들 역시 오랫동안 여성을 소모적으로 소비하는 남성 문화를 반영한 콘텐츠들에 익숙해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도 역풍을 맞게 될까 목소리를 죽여온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이슈를 둘러싼 사이버 불링과 논쟁들 역시 종종 벌어지곤 한다. 그렇지만 2019년 2월 이후로 일련의 장소들과 그 상징물들, 그리고 그 밑에 깔려있는 남성 카르텔 문화에 대한 여성들의 시각이 영원히 바뀌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련의 사건들은 큰 용기를 내 피해 경험을 고발하거나, 자신이 당했거나 당했을지 모르는 일들에 대한 분노와 고통을 품고 있거나, 이러한 일들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가던 여성들에게 1인칭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말 그대로의 생존이 달린 현실. 지금을 살아가는 한 무시하거나 모른 척할 수가 없는 주제이다. 그리고 한국 대중음악, 특히 K-POP으로 불리는 아이돌 팝 씬은 이런 여성들로부터 시작해 여성들로 끝나는 곳이다. 이러한 인과관계와 사회적 변화를 못 본 척하고 소비자들을 불야성의 세계로 다시 현혹하는 것은 이제 논란의 여지없이 거부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냥 예술인데 뭐 어떠냐"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시절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