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티스트들을 소비하지 않을 의무

승리 게이트 이후의 K-POP (2)

by LRO

승리 게이트와 정준영 단톡방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수사가 진행된 지 벌써 수개월이 지나고 있다. 관련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될지, 혹은 과거의 몇 사건들과 같이 편법을 통해 수사망을 빠져나갈지는 이제 검경의 손에 달려 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그들이 처벌을 받게 되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를 지켜보는 것만이 남은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이 유독 많은 주목을 받은 이유는 승리와 정준영을 비롯한 상당수의 사건 관련자들이 탄탄한 팬덤을 기반으로 한 남성 아이돌 스타였다는 점이다. 승리, 정준영의 넓은 연예인 인맥, 특히 그들과 관련된 남성 아이돌의 팬덤은 용준형, 최종훈, 이종현과 같은 이름이 기사에 오를 때마다 '혹시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도?' 같은 불안과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새로운 이름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지는 않지만, 이 사건이 가져온 충격을 경험한 후의 업계 분위기는 상당히 냉각된 상태다. 이름이 오르내린 많은 남성 스타들을 보며 그들의 팬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친하게 지냈던 건 아닌가', '정말로 아무 관련이 없었나'하는 일말의 의심을 많은 남성 연예인들에게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아이돌 스타들이 클럽 버닝썬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거나, 클럽에서의 부적절한 행동이나 범죄가 고발되었던 뉴스들 역시 그들을 향한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도록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이 의심을 조금이라도 건설적인 방향으로 향하게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잘 생각해보면 징조는 쭉 있어왔다. 몇 년 전 승리가 일본에서 성매수를 한 사실이 폭로된 일이 있었다. - 그는 이러한 사실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오히려 자신의 예능에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방송에서 걸 그룹 멤버에 대한 부적절한 언행으로 질타받은 바 있기도 하다. 정준영은 심지어 이미 불법 촬영 혐의로 한 차례 수사를 받은 적도 있다. 최종훈 역시 '룸'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찍힌 사진이 돌거나, 약물을 탄 칵테일을 여성에게 마시게 한 뒤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제기되었던 적이 있다. 이름이 오르내린 다른 단톡방 멤버들 역시 그들의 부적절한 과거 행적이나 발언 등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러한 징후들이 있어왔음에도 그들은 치명적인 타격 없이 활동을 이어가거나 '자숙'을 명목으로 한 휴식 후에 활동을 쉽게 재개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우선은 그들이 구축한 공고한 남성 카르텔이 그들을 보호해줬다. 실제로 그들과 유착된 것으로 보이는 공권력 인사들이 수 차례 범죄 행각을 뒤에서 덮어준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정준영 정도가 범죄면 대한민국 남자는 다 범죄자"라고 얼떨결에 자백을 해버리는 남자들도 이 카르텔의 일부를 구성한다. 그렇지만 승리와 그 일당들에게는 좀 더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그들은 대중적인 인기, 특히 단단하게 다진 여성 팬덤의 등 뒤에 숨어 활동을 지속해왔다는 것이다. 아이돌로서의 활동을 통한 비즈니스적 성과와 명예 역시 그들을 보호하는 하나의 도구였다. 그동안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적절한 언행을 보인 남성 연예인, 특히 아이돌 팀으로 활동하는 남성들에게는 그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쉽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들에 대한 강한 지지와 신뢰를 보내는 팬덤의 벽을 뚫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판의 대상이 성공한 커리어와 큰 팬덤을 등에 업은 멤버라면 더욱 그랬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범죄나 비윤리적 행위들에 관련되어 있으리라 생각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많은 돈과 시간, 감정을 할애한 만큼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지지 -혹은 투자-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믿고 싶어 하는 것은 팬 활동이 아니라 어느 분야나 영역에서든 인지상정이니까. 그렇지만 은근하게, 혹은 공공연하게 유사 연애 감정을 그 팬에게 심어줌으로써 종종 이성적이지 못한 일탈 행동을 유도하는 업계 풍조나,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이미지와 평판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비판을 제기한 사람에게 불링을 주도해온 문화, 그리고 이런 남자들을 쉬이 용서해온 사회적 인습이 분명히 있어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범죄 카르텔과 유착을 넘어 팬덤, 평판, 이미지 같은 몇 겹의 성벽을 두르고 그들의 범죄 행각은 이루어졌다. 카르텔을 구성하고 유력 인사들과 유착 관계를 형성한 것은 온전히 그들의 죄고 책임이다. 그렇지만, 그들을 보호하는 다른 요소들인 이미지와 평판, 팬덤을 만들어낸 것은 그들 혼자만이 아니다. 그들이 보여온 여러 징조와 비판의 목소리를 못 본 체하고 못 들은 체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 그들의 활동을 지지하거나 방관한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에게 그 책임이 하나도 없다고는 누구도 쉬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습은 '그들'이 다시 우리 사이에 스며들도록 용인해왔다.


어쩌면, 범죄를 저질렀다고 평생 주홍글씨를 새긴 채로 살도록 하는 것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사회에 다시 복귀해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평생 낙인을 찍어 사회적 생명력을 위협하는 것은 부당하지 않느냐고. 당연히 범죄자에게도 인권은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들이 다시 사회로 복귀해 건전한 시민으로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책임져야 하는 의무 역시 존재한다. 그렇지만, 작품에 대한 사랑을 등에 업고 범죄와 반 사회적 행동을 저질러온 이들이 다시 음악 활동 혹은 아이돌 활동을 통해 돈과 명예를 얻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것 역시 우리가 이행해야 할 의무이다. 아동 성범죄자가 아동과 관련된 시설에 접근하거나 종사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고, 누군가를 폭행한 이를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것처럼.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으로 쌓은 부와 허울뿐인 명예로라도 누군가를 현혹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승리 게이트 이후의 사회가 지녀야 할 의무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정말로 그들을 다시는 용인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는 있다. 우리는 정말로 그들을 다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청소년 성매수 혐의로 방송계에서 퇴출된 이수, 불법 안마 시술소에서의 성매수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세븐, 마찬가지로 청소년 성매수 혐의를 받은 바 있는 이경영 등 성범죄와 같은 강력범죄에 연루된 남성 연예인들은 줄곧 있어왔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대가로 방송가에서 쉬이 찾아볼 수 없게 되었거나, 이전과 같이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들이 대중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만큼 그들의 음악이나 연기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나오고 있다. 승리를 포함한 일당은 이들보다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고 또 처벌을 받게 될 것이지만, 그들이 남긴 음악이 다시는 소비되는 일이 없으리라 보장할 수는 없다. 이미 그들에 대한 고발이 한참 이어지던 3월에도 승리와 정준영, 용준형 등의 곡을 연이어 재생했다는 자영 업쳬들에 대한 고발이 SNS를 통해 이루어지기도 했다.


팝 씬에서의 움직임을 살펴보자. 강력 범죄를 저지르거나 그러한 혐의가 있다고 여겨지는, 알 켈리나 마이클 잭슨, 크리스 브라운 등 저명한 아티스트들에 대한 보이콧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팝 시장을 넘어 전 세계의 음악 시장에 영향을 지대하게 미친 이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을 완전히 소비하지 않거나 회자하지 않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그에 비하면, 승리와 정준영, 최종훈 등의 일당이 한국 대중음악계에 미친 영향은 그리 크지는 않다. 그들 개인의 흥행이 매우 컸을지는 몰라도, 우리에게는 훌륭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아티스트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들이 남긴, 그리고 앞으로 언젠가 발표할지 모르는 음악들을 소비하지 않기란 마이클 잭슨의 음악들을 소비하지 않는 것보다는 비교적 쉬울 것이다. 물론 그들의 음악을 듣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누군가에게 그것을 중지시킬 권리는 없다. 그렇지만, -그들과 유착관계에 있던 공권력과 동업자들, 그들의 비리를 알면서도 쉬쉬했던 연예계와 미디어의 책임을 묻기 이전에- 승리게이트 이전의 많은 신호들과 전조 현상들을 무시한 채 그들이 피해자들, 특히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돈과 명예, 영향력을 안겨준 것은 우리이다. 그 도의적 책임으로부터는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휩쓸고 간 자리를 정리하고 그들이 자신들이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돌아올 수 없도록, 그리고 앞으로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어딘가에 숨을 죽이고 있을 제2의 승리나 정준영들에게 분명한 경고를 보내는 것이 우리들이 이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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