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뒤에 숨은 어떤 회사

승리 게이트 이후의 K-POP (3)

by LRO

버닝썬-승리 게이트가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한 지 벌써 4개월이 지났다. 많은 관련자 혹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의 이름이 경찰 조사와 미디어에 오르내렸고, 빅뱅의 전 멤버 승리가 소속된 YG 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인 양현석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현재 탈세와 성접대 혐의에 대한 언론의 의혹을 받고 있다.) 승리와 양현석, 그리고 성접대 현장에 동석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싸이, 마약을 흡입하고 구매한 정황이 드러난 아이콘 멤버 비아이 등 YG의 많은 남성 아티스트들은 이 거대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YG 엔터테인먼트는 행보는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4월에는 블랙핑크의 [KILL THIS LOVE]를 발표했고, 그로부터 한 달 후에는 이하이가 3년 만의 공백을 깨고 새 앨범을 발표했다. YG의 하위 계열사 더블랙레이블에 소속된 전소미 역시 3년 만에 솔로 아티스트로서 데뷔했다. 이들은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는 아티스트 들인 만큼, 높은 음원 성적과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2NE1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YG는 여성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서포트해주는 회사가 아니었다. 2NE1은 해체되었고, CL과 산다라는 컴백에 대한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이하이와 전소미는 긴 '잠수' 상태에 놓였었다. 그런 만큼 갑자기 여성 아티스트들을 쏟아내듯 컴백시키고 있는 YG의 동기는 그다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팬들의 우려대로, 현재 YG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지금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 여성들이 떠안게 되었다. 남자들의 부정과 범죄, 실책으로 무너져가는 방주를 여성 아티스트들이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이 기묘한 현실에 대해 '유리절벽'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기란, 쉽지 않다.


가만히 바라보면 그려낸 듯 전형적이다. 남성 카르텔이 여성에 대한 성범죄를 저지르고 여성들의 몸을 이용한 착취를 가했으며, 그렇게 카르텔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러한 카르텔이 무너지자 여성들을 동원했다. 이 상황을 그냥 해맑게만 바라본다면, 남성 문화의 병폐와 폐단을 자각한 한 회사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여성들에게 주목을 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러한 모습은 유리절벽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남성들이 범한 우를 책임지기 위해 나선 (혹은 그러기를 강요받은) 여성에게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많은 도전과 비난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상황을 잘 이끌어나간다면, 조직의 잘못된 점을 덮으려고 하는 것이냐는 지적을 받고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거나 나빠진다면 '그럼 그렇지' 같은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 그 자질을 의심받는다. "이 상황에서 컴백이 무슨 말이냐"는 팬들의 피드백을 무시한 채로 강행된 블랙핑크의 컴백은 코첼라 퍼포먼스라는 기념적인 성취를 거두었음에도 승리 게이트를 덮으려는 구태의연한 시도가 아니냐는 비판을 들어야만 했다. 그와 동시에 정반대로 곡과 앨범의 완성도를 거세게 비판받고 기대만큼의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이중의 지적은 이하이나 전소미 행보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활발한 방송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은지원과 송민호를 비롯한 YG 소속 남성 아티스트들에게는 이러한 책임론이 잘 동원되지 않았다.)


더 참담한 현실은, 그 비판들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한 상황의 기획사에서 제대로 된 앨범이 준비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또, 이들의 활동이 성공적이면 성공적일수록 YG에 돈을 가져다준다는 인과관계에 대한 불편함 역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유리천장의 비극이란 이런 것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책임을 지도록 밀어 넣고, 강요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성공하든 실패하든 온전히 평가받을 수 없는. 그들의 팬들 역시 마찬가지다. 음원 스트리밍을 돌리고 앨범을 사는 만큼 여성 아티스트들에게 온전히 돌아가는 몫보다 무너져가는 YG를 살리는 것에 더욱 도움을 주게 되고, 그렇다고 불매를 하자니 안 그래도 그 생명력이 위태로운 여성 아티스트들을 사지로 내모는 일이 된다. 오늘도 "탈와이지"를 외치는 팬들의 소원이 무색하게, 대부분의 여성 아티스트가 2020년 이후에 계약이 만료되는 현실은 참담하게만 보인다.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도 많은 제보자들의 고발과 미디어의 후속보도로 YG 소속 남성 연예인들의 추가적인 의혹과 혐의들은 계속해서 드러나는 중이다. 마약을 구매, 복용하고 이를 은폐한 정황이 폭로된 아이콘 멤버 비아이는 팀에서 탈퇴했다. 프로듀서 양현석은 이달 14일 모든 직함에서 물러났다. "하루빨리 YG가 안정화될 수 있는 것이 제가 진심으로 바라는 희망사항"이라는 말과 함께. (여전히 사내이사이자 대표이사는 프로듀서 양현석의 동색인 양민석 대표이고, 양현석은 여전히 최대주주이다.) 버닝썬-승리 게이트로 시작된 이 거대한 스캔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양현석 프로듀서가 말하는 '안정화'가 우리가 바라고 있는 '안정화'와 얼마나 비슷하고 또 다른지 역시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은 채로 모든 것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사건에서 책임을 져야 했던 인물들이 하나둘 YG에서 배제되어가는 이 상황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바라던, 여성들을 앞으로 내세우고 뒤로 숨어버린 인물들을 다시 끄잡아내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처벌을 받도록 하는 일의 시작점에 있음은 분명하다.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그들이 드러난 혐의에 대한 처벌을 받도록 계속해서 압박하는 일이다. 버닝썬 폭행 사건의 가해자인 스태프들을 거쳐 승리, 그리고 그 윗선까지 오는데 장장 4개월이 걸렸다. 아직 누구도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이 압박을 멈춘다면 모든 것이 이전으로 돌아가 '안정화' 될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승리 게이트 이후의 K-POP' 시리즈를 통해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듯)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본의 아니게 제2의 피해자가 되어버렸고, 또 무너져가는 YG의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해 유리절벽으로 떠밀린 여성 아티스트들을 보호하는 것 역시 우리에게 남은 과제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직접 소비의 형태로 응원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들의 행보와 활동에 대해 끊임없이 회자함으로써 연예인으로서의 생명력인 스타성을 유지하도록 할 수도 있다. 어떠한 형태의 전략을 취하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어떠한 방법이든, 그들이 더 이상 YG와는 관계없이 자신들만의 능력과 존재감으로 앞으로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생존을 보장해주는 것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최대한의 연대일 것이다. 그들이 유리절벽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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