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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RO Dec 26. 2019

EXO, OBSESEEION, 반복과 변형

최근 SM엔터테인먼트 소속 팀들이 발표한 앨범들은 SM의 지난 작업물들을 레퍼런스로 해, 세련된 사운드로 재해석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EXO의 경우는 지난 5집을 통해 이미 그들의 기존 음악을 최대한으로 디벨롭하고 정리한 바 있었다. 특히 멤버들의 빈자리가 많아진 지금, EXO에게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를 시도할 과제만이 남은 듯했다. 하지만 정규 6집 [OBSESSION]은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앨범은 아니다. 그렇지만 전작에서 아쉬웠던 점인 특유의 세계관 부재와 멤버 변동을 B 플랜이 아닌 정공법으로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앨범에 가깝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효과적이다.

'Obsession'은 '중독 (Overdose)'이나 'Monster', 'LIGHTSABER'를 대표로 하는 EXO의 공격적인 스타일을 가장 잘 벼려낸 곡이다. 깊은 베이스와 노이지한 보컬 샘플이 반복되는 테마와, 화음을 강조한 R&B 보컬 레이어가 끊임없이 반복되는데, 자칫하면 쉽게 피로감과 단조로움을 유발하기 쉽다. 그렇지만 한 멤버가 첫 번째 절에서 대조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거나 같은 가사와 멜로디를 전혀 다른 톤과 에디튜드로 부른 버전을 레이어로 쌓는 등 구조적인 변화를 시도하며 피로감을 미연에 방지해냈다. 이로 인해 멤버들의 보컬이, 더 정확히는 캐릭터가 강조되었다. 각 멤버들의 보컬은 서로 유기적으로 뭉치기보다는 곳곳에서 곡의 진행을 뚫고 나와 공격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새롭게 개편된 보컬 어레인지와 디렉팅은 카이와 수호의 음색이 이전보다 강조되어 곡의 질감을 날카롭게 다듬고, 또 다른 자신과의 대립이라는 컨셉을 사운드에서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MAMA'나 'History', 'El Dorado'와 같은 기존 곡들이 화려한 소스 사용과 극적인 화음으로 웅장한 세계관의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표현해냈다면, 'Obsession'은 대립되는 코드 테마와 보컬, 그리고 가사를 이용해 은근하게 전달한다. 물론 어떠한 세계관이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자가 훨씬 적합할 것이지만, 멤버 하나하나가 특정한 메세지나 컨셉을 전달할 만한 기량이 있다면 표현 방식을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허용된다. 


보컬 어레인지먼트의 변화는 EXO의 특기였던, 탄탄한 하모니가 강조된 코러스를 담은 곡들에서도 변화를 유도해냈다. 2번 트랙 'Trouble'에서 그 결과가 잘 드러나는데, 'Forever' '오아시스(Oasis)'와 마찬가지로 화음을 쌓은 코러스를 가진 곡이지만 멤버들의 화음을 융합해 하나의 덩어리 진 소리를 들려주는 대신 카이와 수호, 첸의 청명한 톤과 찬열, 백현의 거친 음색을 대비시키며 화성을 이루는 보컬 각각에 캐릭터성을 부여했다. 이 구성은 코러스에서 찬열과 세훈 위주의 샤우팅과 수호와 첸의 부드러운 음색이 대비되는 '지킬 (Jekyll)이나, 수호와 첸의 가성이 강조된 코러스가 안정적으로 이어지며 백현이나 카이의 파트로 이어지는 '춤 (Groove)'에서도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백현과 첸이 보컬 레이어의 양 극단에서 곡 하나하나에 새로운 긴장감을 팽팽하게 만들어낸 새로운 질감의 보컬 레이어는 소녀시대-Oh!GG의 '몰랐니 (Lil’ Touch)'에서 이미 시도된 적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해당 곡에서는 태연과 써니가 보컬의 중심을 양 끝에서 팽팽하게 잡으며 비-보컬 라인이었던 멤버들의 존재감과 색을 드러냈다. [OBSESEEION] 역시 두 메인 보컬 사이의 팽팽한 줄 위에서 카이나 찬열과 같은 멤버들이 곡 안에서 충분히 제 기능을 해내거나, 보컬 라인이었음에도 세 메인 보컬에 비해 비교적 주목받지 못한 수호의 역량을 보여주며 분명히 지금까지의 EXO 스타일임에도 이전과는 다른 텐션을 전달한다.  여전히 힘과 강조의 분배가 불안한 래핑이 곡의 흐름을 막는 점은 EXO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그렇지만 SM의 기존의 색을 유지하고 보완한 수준에서 머무른 앨범이 유독 많았던 한 해였음에도 [OBSESSEION]은 회사의 정공법을 충실하게 따르며 최대한 색다른 사운드를 전달하려 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올해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발표한 앨범 다수가 그러하듯 다양했던 컨셉과 사운드의 다양한 방향성이 점차 하나의 고정된 테마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EXO의 경우 역시 보컬 어레인지의 변화나, 블랙 뮤직 사운드와 아이돌 팝 사이를 교묘하게 이은 사운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5집과 6집 사이의 큰 테마의 변화는 없다. 분명 거친 컨셉의 곡들로 좋은 커리어를 쌓아온 그들이지만, EXO는 'LOVE ME RIGHT'에서 사랑에 빠진 감정을 스포티하고 세련되게 표현했었고, 'Ko Ko Bop', Love Shot'에서 다른 팀들보다 세련되고 장르적으로 섹슈얼함을 시도한 팀이다. 신경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디테일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 [OBSESEEION]은 분명히 올해의 주목할 만한 아이돌 팝 앨범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미래에 대한 대비 요구되는 시점에서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변화는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OBSESSION]은 레드벨벳의 [‘The ReVe Festival'] 시리즈와 함께 SM과 팀의 과거, 현재를 가장 최상의 완성도로 재구성한 앨범이다. 4집과 5집의 특장점이었던 그루비함을 유지하며 아쉬운 점이었던 세계관의 부재를 팀의 변화한 환경에 맞게 변형시켰고 '가장 SM다운' 음악을 다시 한번 만드는 데 성공했다. EXO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팀들이 추구할 만한 교본적인 완성도를 안정적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올해 SM엔터테인먼트의 많은 팀들이 그들의 역사를 반영한 앨범을 발표했지만, 적어도 현재 이 레이블을 가장 잘 대표하는 팀이 레드벨벳과 EXO라는 점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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