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 611화, 박찬휴 작가님 편을 보고 나서
헬스장에서 가슴 밀기 운동을 하다 러닝머신에 달린 작은 TV를 우연히 올려다봤다. '나 혼자 산다'가 방영 중이었고, 그날의 주인공은 박찬휴 작가님이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화면에 홀린 듯 빠져들었다가, 내용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계획한 운동 시간을 끝내지도 못 하고 집에 돌아와 재방송을 찾아 틀었다.
방송 첫 장면에서 전현무 님은 박찬휴 작가님이 뮤지컬 '어쩌다 해피엔딩'으로 토니 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이 세계 4대 예술상을 모두 거머쥔 최초의 비영어권 국가가 되었다고 소개했다. 민족주의에 한껏 매몰된 나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기심이 생겨 검색해 보니, 미국의 4대 예술상은 EGOT로 TV의 에미(Emmy), 음악의 그래미(Grammy), 영화의 오스카(Oscars) 그리고 연극·뮤지컬의 토니(Tony)를 말한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팀이 아카데미를 휩쓸었고, 윤여정 배우가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한국 배우 최초의 오스카 수상자가 되었다. TV에서는 황동혁 감독이 오징어 게임으로 에미상을 거머쥐었고, 음악에서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제 박찬휴 작가가 토니 상을 우리나라에 선물한 것이었다.
업적도 업적이지만 TV를 보는 내내 내 시선을 붙든 건 그의 삶이었다. 생각보다 늦은 나이에 유학을 떠나고, 익숙한 자리도 내려놓은 채 낯선 언어와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삶을 건 결심이었을 것이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초등학교 시절 우주비행사를 꿈꾸던 나는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왔고, 이제야 문장도 아니고 단어 몇 개를 일으켜 세우는 중인데, 그는 멈추지 않고 끝내 그 길을 걸어냈다.
더 인상 깊었던 건, 그 대단한 업적을 이루고 난 뒤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매일 극장에 나와 맨 뒷줄에 서서 관객들의 반응을 살폈다. 작가에게 자리가 주어지지 않아서라는 핑계를 대긴 했지만, 그곳에서 그의 눈빛은 오히려 더 행복해 보였다. ‘작가의 골목길(Writer’s Alley)’이라 불리는 그곳에서 그는 공연을 보았고, 더 깊이 관객을 보았다. 어떤 이에게는 불안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내 눈에는 삶을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있는 지휘자의 모습이 보였다.
방송 후반에는 화려할 것만 같았던 그의 일상이 소개되었다. 으리으리한 대저택이 아니라, 세탁기조차 없는 옥탑방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언젠가 햇살 좋은 집을 마련해 마당에 나무를 심고 싶다고 말했다. ‘나와 비슷한 부분도 있구나.’ 그가 내 안의 욕심을 비추자, 나는 잠시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다른 사람처럼 쉬고, 먹고, 사람을 만났다. 특별하지 않은 하루 속에서 차이를 만든 건 단 한 가지, 매 순간을 바라보는 집중,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행운을 믿는 태도였다.
그의 성취는 마침표가 아니었다. 숨 고르듯 놓인 쉼표, 그 앞에도, 뒤에도 언제나 다른 이야기가 숨 쉬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그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도전 앞에서 주저하는 나, 작은 성취에도 쉽게 안도해 버리는 나. 그의 삶이라는 거울 속에서 낯선 나 자신을 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가. 나는 또 어떤 길을 향해 가고 있는가.”
박찬휴 작가님의 삶은 화려한 드라마가 아니었다. 오히려 소박한 기록처럼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반짝이는 별빛 같은 문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문장을 따라, 나도 오늘 하루를 다시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