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10.22자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문보기)
가끔 유럽연합(EU)에 관한 국내 기사들을 찾아본다. 한동안 선거에 대한 기사들이 많이 나오더니 최근에는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기사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상당수가 ‘유럽연합의 위기’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기사들은 이미 유럽연합의 위기, 탈퇴 도미노가 임박한 것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전혀 틀린 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지나친 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국내에서 제공되는 유럽연합 관련 정보들은 양적으로도 제한적이고 질적으로도 회의주의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어서 사람들의 시각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고 본다. 필자가 바로잡고 싶은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문제들의 성격과 정도에 대한 오해다. 유럽연합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에서 보는 것처럼 연합체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혹은 ‘탈퇴 도미노’를 불러올 만한 수준에 이르는 것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회원국들의 주권(sovereignty)과 유럽연합의 권한 간 긴장관계 속에서 발생하는데 대개는 유럽연합 차원에서 흡수하고 조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통합 속도를 조절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유럽연합은 스스로의 독자성(autonomy)은 물론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럽의회의 권한 확대 등 여러 차원에서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끊임없이 좀 더 높은 수준의 통합에 기여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이제 회원국들의 국제기구가 아닌 연합 시민들(EU citizens)의 대표체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둘째는, 갈등의 구조에 대한 오해다. 언론에서는 개별 회원국들에서 발생한 사건들에 주목하며 이를 유럽연합의 문제와 결부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수사를 떠나서) 실제 개별 회원국들의 산발적인 문제들이 유럽연합에 큰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 거칠게 말해서, 유럽연합의 차원에서 보면 카탈루냐 독립운동도 그 자체로는 주변 문제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유럽연합에 영향을 미칠 만한 갈등이라면 베를린(독일)과 브뤼셀(프랑스 포함 나머지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심각하게 대립하는 경우에만 발생한다고 볼 수 있으나, 마크롱 정부 이후 둘의 관계에서도 심각한 균열은 관찰되지 않고 있다. 물론 재정과 관련한 문제들과 극우정당(Alternative fur Deutschland)의 약진 등 여전히 불안한 요소들이 감지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통화동맹은 점차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후자 역시 아직 현실화된 위협으로 평가할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유럽연합의 27개 회원국들은 연방과 같은 높은 수준의 단일체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으며,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영향으로 이러한 통합은 더욱 가속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개별 회원국들이 아닌 ‘유럽연합’이 유럽을 대표하는 실체로서 점점 더 부각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증거다. 아직 우리가 깊이 체감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유럽연합은 미국 못지않게 우리의 사회·문화·정치·경제·법 모든 분야에서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영향력과 중요도에 비해 이에 대한 국내의 관심과 이해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점차 국가와 같은 독립된 실체로서 부상해가고 있는 유럽연합에 대해 앞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과 연구들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