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 몇 가지 키워드를 걸어놓고 틈틈이 경쟁법, 정책 관련 뉴스들을 받아보는데, 요즘 유독 눈에 띄는,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에 거슬리는' 뉴스가 있다. 바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 뉴스다.
이제 이 합병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간단히 정부(특히 당시 은행장이었던 이동걸의 산업은행의) 주도로 한국의 둘밖에 없던 두 항공사가 서로 합치게 된 사건이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조건부)을 받고 세계 각 경쟁당국의 심사를 마친 뒤 일본과 EU의 심사를 거쳐(EU의 경우 11월 28일 최종 승인 결정) 이제는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의 심사 결과만 남겨놓고 있다. 만약 미국이 마지막으로 승인을 해준다면 세계 유수 항공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형 항공사가 탄생하게 된다고 한다. 이른바 세계 "7위"의 메가캐리어...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풀 캐리어로서는 독점 기업의 탄생이다.
통합 항공사가 나온다면, 된다면, 뭐가 좋을까. 막연히 기업 규모가 커지니 일단 그게 보기 좋을 수 있다. 또 규모가 커졌으니 더 많은 투자도 가능하고 소비자들은 뭔가 더 그럴싸한(?) 품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막연히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오늘날 현대차 그룹의 성공은 아마도 이런 막연한 느낌을 강화해주는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럴싸하지만 잘못된 인식이다. 독점은 (사회적 정치적 영향은 제쳐두고 경제적 영향만 봐도) 거의 항상 비싼 가격, 낮은 품질, 혁신 유인 저하, 진입 장벽 상승, 소비자 선택권 제한으로 이어진다. 현대차가 오랫동안 정부의 보호 속에서 시장을 독점하며 한국 소비자들에게 저품질의 제품을 고가에 팔며 착취해온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현대차 그룹이 지금 와서 잘 풀린 것은 (잘 풀린 것으로 본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게 정책결정 당시 기대할 수 있던 결과는 아니었다. 1999년으로 돌아가서 정책 결정 시점을 기준으로 볼 때, 정부가 현대차와 기아차를 결합시킨 것은 과거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의 언급에서도 확인되는 것처럼 독점을 만들어내는 분명 잘못된 비최적의 비합리적인 결정이었다.
몇 발 양보해서, 현대차와 기아차의 결합 결정은 합리적이었을 수도 있다고 치자. 실제로 지금은 국내외 시장이 개방되어 수입차도 많아졌고 한국의 수출도 많아졌으니까 과거 정책 결정 당시부터 이걸 기대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결합도 그럴까? 항공 운송 산업에서는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왜냐면, 항공 여객 운송 중심으로 설명할 때, 일단 항공 운송 시장은 진입을 허가받기 위한 기본적인 역량 확보가 어렵고, 그게 되어도 운수권을 배분 받기가 어려우며, 또 항공자유화협정 등으로 그게 해결되더라도 다시 슬롯 배정을 받는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거 한국 경제가 어렵고 자동차 산업이 미숙해서 일정 기간 보호가 필요했던 것과 달리, 지금 한국은 경제도 항공 운송 산업도 모두 성숙한 상태인데 이제 독점 기업을 만들어서 성장시킨 뒤 나중에 뭔가 어쩌겠다고 하는 것은 넌센스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정책 결정이 나온 것일까? 한국의 정책 결정권자들이 엘리트 중에서도 뛰어난 정말 스마트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안다. 하지만 예전 현대차와 기아차의 기업결합 추진도 그랬고,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 사건도 그렇고, 최근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추진 건과 이번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 건까지, 가끔씩 이렇게 엉뚱한 정책 결정이 나오고 또 그대로 추진되는 일들이 발생한다. 대체 왜 그런 것일까?
위 같은 연구 질문을 두고 작년 이맘 때쯤 지도교수님과 공저로 논문을 작성했었다. 제목은, '공공선택론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 기업결합정책 —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사례.‘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 차례로 발표를 했고 지난 여름에는 미국에서 부탁을 받아 ProMarket에 기고도 했었다. 제목은 'The Korean Air-Asiana Airlines Merger Shows How Rational Actors May Produce Irrational Outcomes.’
연구의 핵심은 간단히 말해서, 위 사례들, 특히 대한항공/아시아항공 사건은 일종의 딜레마(dilemma)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즉, 이 사건 정책 결정에 관여한 모두는 자연인 개인든 복합행위자(composite actor)든 각자 주어진 상황에서 나름대로는 각자에게 최선인 합리적 결정을 내렸지만 그런 합리적 선택들이 모여 전체의 선택(public choice)으로는 합리적이지 못한 비최적(suboptimal) 결정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제도(institutional arrangements)는 그러한 비최적 의사결정이 반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대한항공 논문에서는 특히 다음과 같은 제도 상황들이 문제라고 보았다.
첫째,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판단에서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도록 하는 제도 설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사건 결합은 산업은행의 결정으로 처음 추진되기 시작하였는데, 산업은행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결합처럼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만한 이른바 '빅딜' 사안에서조차도 시장 경쟁이나 소비자 후생은 고려하지 않고 오직 공적 자금 회수 등 재무적 관점에서만 구조조정 과정을 주도할 수 있었다.
둘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 사건 산업은행의 결정은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확정되었다. 관계장관회의에서는 대통령실 경제수석과 경제부총리를 포함하여 정부 내에서 힘을 가진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이 참여하여 이들이 빅딜 등 중요 정책 결정을 내리는데, 산업은행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쟁 관점의 고려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장치는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셋째는, 공익과 충돌하는 개인의 사익 추구를 통제하는 제도 장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 결합으로 대한항공 대표이사 조원태는 개인 차원에서는 산업은행의 자금 지원과 상당한 우호 지분의 확보로 반도건설 등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이길 수 있었고 회사 차원에서는 독점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이같이 직접적인 이해관계자가 공공 정책 결정에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되지 않고 있었던 점은 큰 문제였다.
넷째, 구조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쟁 정책에 충실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처지였다는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이 사건 빅딜 결정은 먼저 관계장관회의에서 내려진 뒤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게 되었는데, 공정거래위원회의 독립성 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아래 표처럼 정부 내 권력 크기가 중위권 수준에 불과한 공정거래위원회가 관계장관회의에서 내려진 범 정부 차원의 결정을 뒤집기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섯째는 잘못된 정부 결정이 교정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소비자 등의 합리적 무관심에서 기인한다. 즉, 공정거래법상 공정거래위원회의 잘못된 결정에 제3자가 불복할 효과적인 방법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이런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관련 사업자들이나 소비자들이 단체를 구성하고 여론을 조직화하여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개개인의 높은 비용 대비 적은 편익 수준을 비교할 때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논문에서는 위와 같은 제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비슷한 일은 또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고, 이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꼭 이대로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고려해볼 만한 여러 개선 방안들을 제시해보기도 했다.
첫째는 미국 백악관 Competiton Council과 같이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범 정부 차원의 경쟁 정책 추진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었다. 현실적으로 한국 대통령제 하에서는 경쟁 당국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대통령이 직접 경쟁 정책의 실현을 우선하도록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여 제시해본 대안이었다.
둘째는 장관 허가 제도의 도입이었다. 지금처럼 힘도 없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범 정부 차원의 정책 결정을 종국적으로 확정짓도록 해서 높은 정치적 부담을 부담하도록 만들 것이 아니라 독일의 "장관 허가(Ministerial Authorisation)" 제도처럼, 정말 필요한 경우, 위원회의 불허 결정을 추후 경제부총리 등이 뒤집을 수 있도록 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결정을 내릴 때 갖는 정치적 부담을 줄이고 일단 경쟁 당국인 위원회는 경쟁 정책적 관점에서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었다. 이 제도도 나름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다소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겠지만, 경쟁 당국의 입지가 약한 현재 한국 정부의 상황에서는 이것도 고려해볼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셋째는, 미국, EU, 일본처럼, 제3자에게도 경쟁 당국의 처분에 불복할 길을 제도적으로 확실히 보장해주는 방안이었다. 이미 헌법재판소 판결 2012헌마180에 따르면 제3자도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분에 대해 헌법소원으로 본안 판단을 받을 수 있지만 행정 소송은 힘들다는 점을 고려해서 제안하게 되었다.
분석과 제안 모두 허투루 한 것은 없지만, 잘 모르겠다. 이런 연구가 과연 얼마나 의미 있는 건지.
많은 전문가들이 안된다고 했지만 통합은 추진 승인되었고, 조원태 회장은 결국 세금으로 경영권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대한항공은 정부의 힘으로 경쟁자인 아시아나항공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조원태 개인과 대한항공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손해를 본 상황인데 유럽연합의 최종 승인 소식을 전하는 한국의 뉴스 기사들은 그저 마지막 미국에서의 합병 승인만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다. 원인 분석과 문제적 제도의 개선을 논하기 이전에, 정부가 나서서 “two-to-one” 합병을 추진하고 성사시킨 것이 ‘문제’라는 인식조차도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연구가 무슨 쓸모가 있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게 내 주변 일반 사람들을 독자로 하는 글이 아닌, 저 높이에 있는 소수의 정책 결정권자들만 독자로 하게 되는 이런 법학 또는 행정학 류의 글들에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며 살 필요가 있는지 회의가 드는 요즘이다.
잘 읽히지도 않을 이런 논문 쓸 시간에 코인을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내 삶에 유익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