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플랫폼 규제 도입 계획 철회에 대해서 Truth on the Market에 짧은 글을 기고했다. 그리고 어제는 같은 내용으로 한국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하는 인터뷰를 ASCOLA Asia에서 했다. 사실 플랫폼 규제는 워낙 첨예한 주제고 다른 한국 분들이 보면 '잘 알지도 못하는 웬 nobody가 나댄다'고 뭐라 할까봐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무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 왜곡 없이 한국의 상황과 내 해석을 공유하고자 노력했다. 다행히도 링크드인 리액션이나 전달받은 TOTM 편집부 메시지를 보니 호응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번거로운 재녹화까지 해주시면서 영상을 만들어주신 Masako Wakui 교수님께 정말 감사하다.
TOTM 글은 사실 국내 시각에서는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내용들이긴 하다. 2020년 갑작스러웠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제안에서 시작해서, 2021년 방송통신위원회의 인앱결제 방지법 도입과 2022년 자율규제 실험의 부침을 거쳐, 2023-2024년 플랫폼 경쟁촉진법안의 추진과 철회에 이르기까지, 플랫폼 규제와 관련해 있었던 주요 사건들을 돌이켜보고, 이러한 과거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을 추려내는 글이다.
글에서 내가 강조한 교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정부(또는 입법자)가 새로운 규제(regulation)를 도입할 때는 먼저 시장 경쟁과 관련 제도의 상황(institutional arrangements)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얼마나 섹시한 규제를 갖고 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참고는 될 수 있겠지만, 경쟁법(competitin law)과 달리, 특정 부문을 대상으로 하는 (경쟁) 규제는 그 자체로 보편 타당한 것이 아니다.
둘째는, 아무리 규제가 타당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추진하는 방식이 이번 플랫폼 규제 시도처럼 일방적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다들 기억하겠지만, 2020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초안은 도입 계획 발표 후 단 3개월 만에 마련되었고(지난 포스팅), 2023년 경쟁촉진법안 도입 계획은 대통령의 카카오T 비난 발언 이후 한달만에 발표되었다. 멀리 유럽까지 갈 것도 없이 일본과 호주가 규제 도입 전 얼마나 꼼꼼하게 시장 분석을 하고 정책 보고서를 내놓고 차근차근 접근하는지 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 부연하면, 이런 점에서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AI 관련 정책 보고서를 먼저 내놓기로 한 것은 정말 정말 다행스럽고 잘된 일이다.
혹시 관심있는 분들은 자세한 내용은 TOTM 글이나 영상으로 확인해주시길 바라고, 이번 글은 플랫폼 규제 관련 논의를 정리하면서 들었던 아쉬운 점을 두 가지 정도만 적고 마무리할까 싶다.
첫째는, 좀 현실적인 부분인데, 한국 분들이 좀 더 밖으로 나와서 활동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이건 개개인의 마음 먹기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사회가 사람들을 너무 정신 없이 몰아치면서 쥐어 짜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어려운 탓이 크다고 생각하지만(아마 나도 실적 압박이 크지 않은 일본에 있으니까 이런 저런 활동이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논의에서,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몇몇 부분들을 제외하면, 한국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좀 안타깝다. 오죽 했으면, 사람들이 국내에서는 안중에도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 한국 상황을 알려달라고 부탁할 정도일까... 특히 일본분들은 (그분들의 문화적 기본값이 한국과 달리 항상 굉장한 신중함을 견지하는 레벨임을 감안했을 때) 영어 실력과 상관 없이 정말 많은 국제 세미나와 모임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그에 비해 한국의 정말 뛰어난 많은 분들은 너무 국내에만 갇혀 있는 것 같아서 (말 그대로, '안주'가 아니라 뭔가 끝없는 과로의 굴레에 '갇힌' 느낌)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리고 좀 더 본질적인 부분으로 건드려 보면, 이 부분은 일본도 마찬가지인데, 한국의 논의는 항상 너무 수동적인(reactive) 방향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쉽다. 세계 동향을 따라가면서 주요국들의 제도를 참고하고 이들을 한국 현실에 맞게 수용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바람직하다. 한국과 일본 모두 그건 참 잘한다. 하지만 문제는 노력이 거기서 그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과 함께 자국 밖으로 나가서 적극적으로(proactive) 그 움직임을 만드는 일원이 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예컨대 이번에도 한국의 발표 이후 필리핀과 인도가 플랫폼 규제에 유보적 입장을 보였는데, 이런 한국의 영향력을 (물론 두 나라의 결정 또는 기류 변화가 온전히 한국 영향은 아니겠지만) 정작 한국은 잘 모르고 그저 국내에서만 유럽식 규제 도입를 도입하니 마니 논의만 하는 것 같아 아쉽다.
둘째는, 경쟁법(만)을 공부하는 한 무지렁이의 푸념일 수도 있지만, 이번 플랫폼 규제 논의에서도 드러났듯이, 한국은 아직도 정부의 강한 주도권을 전제로 하면서, 시장과 경쟁법의 역할을 무시하고 그저 경쟁법을 정부가 가진 여러 규제 수단 중 하나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경쟁법의 역할이나 규제와의 관계에 대한 정의는 이 분야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분야를 좀 깊이 있게 공부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경쟁법은 정부 계획이 아닌 시장을 전제로 도입 운용되며, 따라서 그 역할은, 규제와 달리, 사회 전체에 최적이 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고, 정부가 무엇이 최적인지를 사전에 정하고 그걸 직접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지 않다'는 점에는 원론적 수준의 동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 현실에서는, 사실 일본도 좀 비슷한 것 같은데, 이런 원론이 잘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긴 이야기를 하긴 어렵지만, 간단히라도 적어두면, 한국은 과거 제조업 시대 정부 주도 성장의 결과가 지나치게 성공적이었던 탓인지, 아직도 개개인들을 그냥 놓아두었을 때 그들의 자유와 창의가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데 너무 인색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즉, 인내심을 갖고 '시장과 경쟁법'이라는 기본적인 방안이 효과를 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며, 입법자와 관료가 뭔가 주도권을 갖고 나서서 경쟁법을 비틀어 쓰든 새로운 규제를 도입해서든 뭐든 법을 도구로 현상을 빠르게 바로잡으려 하는 경향이 너무 강한 것 같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동질성이 높고 제조업 비중이 높은 과거 시대에는 그게 잘 통했는지 모르겠지만, 동질성도 많이 낮아졌고 제조업 편중의 한계가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해진 지금 시대에도 그런 낡은 방식이 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서 이제 무슨 무슨 "공정화"법 도입은 정말 지양하고 가급적 '시장과 경쟁법'의 방안이 우선이 되었으면 한다.
끄으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