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4년 12월 16일 발행했었던 글이지만 얼마 뒤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고 싶어서) 발행 취소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2025년 1월 3일 현재까지도 주 혐의자 체포를 포함하여 수사에 진척이 없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에 글을 다시 올립니다. 내용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래에서 설명하고 있는 가외성 논의가 주는 시사점은 검찰은 물론 공수처의 독점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직 설계에 있어서 기관간 역할 분담과 능률성은 매우 중요한 지도 원리지만, 여전히, 내란죄와 같이 중요하고 파급효과가 큰 예외적 사건에서는 행정기관간에도 중첩과 경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계인 대부분을 놀라게 했던 비상계엄 드라마가 탄핵소추안 가결과 함께 다음 단계로 진입했다. 비상 계엄 선포 당시부터 많은 경우의 수들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한국은 최악의 선택을 피하면서 좀 더 합리적이고 좀 더 나은 선택을 하면서 차근 차근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정말로 불행 중 큰 다행이다.
워낙 많은 뉴스들이 정신 없이 보도되고 있고 전부 따라가진 못하고 있지만, 웬만하면 내란죄 '우두머리' 수사 관련 내용은 그래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편이다. 어쩔 수 없이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헌법 사안과 다르게(탄핵), 이는(내란) 결코 정치적 판단이 이뤄져서는 안되는 형법 사안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한국 법처럼 인간의 많은 행위를 전부 형사법으로 규율하고 조정하는 접근은 정말 잘못된 것이지만, 이렇게 전체 시스템을 위협하는 심각한 행위 특히 소수 권력자의 남용 행위를 통제하는 법은 꼭 필요하고 또 이런 법은 권력자를 상대로 집행되는 과정에서 왜곡될 우려가 크기 때문에 적극적인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내가 현재까지의 상황에서 받은 인상은 긍정적이다.
크게 보면 현재 상황은 기본적으로 내란죄의 공식적인 수사 주체인 경찰과 그리고 검찰이 경쟁하는 모양새다. 경찰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공조를 이루며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체포 구속을 시작으로 대통령실 압수수색, 대통령 출석요구를 시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아가고 있고, 동시에 검찰이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어쨌든 직권남용과 경찰의 공범 가담을 고리로) 독자 수사에 나서며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을 체포 구속하는 등 성과를 내며 지지 않고 달리고 있다. 이들의 수사 노력 끝에, 최종 목적지에, 핵심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12월 16일 현재 기준)이 있음은 물론이다. 복수 기관들의 권한과 수사 범위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우두머리를 잡는다는 공통된 목표에서 중첩적으로 수사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데 나는 이러한 모습이 큰 방향으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검찰이 여전히 수사와 기소 권한을 독점하는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물론 이번 상황은 경찰을 중심으로 한 수사에 검찰이 끼어든 모양새라 좀 다르지만 과거 공수처 설치 이전과 수사권 조정 이점 시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검찰이 여전히 권한을 독점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조직 이론의 측면에서, 행정기관의 독점은 늘 경계할 만한 부분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독점이 그러하듯 행정기관의 권한 독점도 사회적 비효율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William Niskanen (1971) 말을 빌리면, “관료제에서의 경쟁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 사이에서만큼이나 사회적 효율성을 위한 중요한 조건(competition in a bureaucracy is as important a condition for social efficiency as it is among profit-seeking firms)”이다.
물론 지금 다수 언론들이 입장을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기관간 권한 중첩이나 중복이 불러올 혼선과 혼란과 비효율'의 문제가 결코 경시할만한 부분은 아니다. 기본적으로(fundamentally) 효율성(정확히는 '능률성'이지만)은 조직이나 제도를 설계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지도 원리(guiding principle)고 이에 따라 서로 다른 기관 또는 제도 간 역할 분담(division of labor)은 매우 중요한 것이 맞다. 특히 일반 조직들과 다르게 자신의 실패를 증명할수록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형사당국의 특성을 고려하면(예컨대, 범죄율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 형사당국의 실패(failure)를 의미하지만 그 실패가 뚜렷할 수록 당국은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법치주의나 기본권 침해 그리고 공소 제기 절차나 증거 능력의 적법성 문제 같은 어려운 법학 용어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이들 조직 설계에 있어서 능률성 가치가 갖는 중요성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수사 기관의 조직 설계는 불필요한 중첩을 제거하고 혼선을 없애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그래서 형사 집행의 대상이 되는 자의 부담을 최소화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그것은 기본이고 원칙이다. 큰 틀에서는 그렇지만 예외가 존재한다. 여러 기관 또는 제도의 중첩과 중복이 더 좋을 때도 있다.
예컨대, 정부 조직 내에서 한 기능을 담당하는 일부 기관(A)의 실패가 시스템 전부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경우 그 기능을 부분적으로라도 담당할 수 있는 다른 기관(B)의 중첩적 역할은 정당화된다. 효율성 가치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동차의 이중 브레이크 장치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 기관(A)의 실패가 '나서야 할 상황에서 제대로 나서지 않을 오류'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부정 오류(false negative))와 관련된 경우라면, 다른 기관(B)이 그 기관(A)과 서로 별개로 동시에 작동하도록 하는 것은 전체 시스템의 실패 위험을 줄이는 합리적인 설계가 된다.
쉽게 말해서, 내란죄와 같이, 한 담당 기관이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 한 국가의 시스템 전체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복수의 기관이 동일한 기능, 중첩적인 수사권 행사를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행정학에서는 가외성 이론(redundancy theory)으로 부른다.
물론 가외성 이론에 따르더라도, 설사 부분의 실패가 전체 시스템 실패와 연결된 경우라고 하더라도, 과연 얼마나 많은 복수 기관의 중첩이 허용될지는 비용 편익 분석이나 동등잠재성(equipotentiality) 분석 등에 따라 달라지고 구체적 조직 설계는 오류 유형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내란죄 사건에 한정해서 보면 위의 분석만으로도 충분하고 경찰 및 공수처 그리고 검찰 이렇게 크게 두 그룹 정도의 중복적 권한 행사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부적으로, 법적으로는 증거능력의 문제 등 해결해야할 부분들이 있겠지만 이는 제도 설계의 관점에서는 중첩이라는 큰 방향을 유지하는 가운데 해결해 가야 할 부차적인 문제들이다.중첩 자체를 비난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올해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의 공정거래법 집행 기능 중첩 문제에 위 이론을 적용해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논문이 저널에 실린 것은 2월이었고(한국어 논문)이었고 최근 발표는 10월(영어 버전)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검찰이 더이상 (사익편취나 부당지원을 제외하고는) 공정거래법 집행에 더이상 특별한 의욕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공부가 쓸모 없어졌나 했다. 그런데 이렇게 2024년 북한이 아닌 한국에서 내란죄를 이슈로 다시금 가외성의 문제를 꺼내게 되다니… 정말 한치 앞을 모르겠는 세상이다(LinkedIn 포스트).
아무튼 모쪼록 지금까지 그래왔듯 다음 국면에서도 수사 권한 문제를 포함하여 많은 문제들에 있어서 한국의 선택이 부디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