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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年、それでは。

by 이상윤

2024년 마지막 글.


연말 특유의 분위기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 가족을 포함해서 누군가에게 굳이 연락하고 인사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느껴지는 게 끔찍이 싫다. 난 가부장적 아시아에서 나고 자란 남자인데도 기가 약한 탓인지 뭔가 이렇게 온 사회가 인간 관계를 강요하는 시즌인 연말, 연초, 명절 등엔 늘 마음이 무겁고 힘들다;; 다행히 올해는 타지에서 이방인 신분으로 지내고 있어서 이렇게 방에서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해 하고 있다. 다만 아직 벼농사 문화권에 살아가는 몸으로 언제까지 개인으로서 이런 내적 평화를 잘 누리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디 이런 평화가 오래 오래 죽기 직전까지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人-)


내가 좋아하는 저녁. 저녁 약속 싫어요...


아무튼.


돌이켜보면 2024년은 정말 감사한 한 해였다. 무엇보다 그동안 많이 지치고 상했던 몸과 마음을 (그리고 통장 잔고까지) 회복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마 한국에 계속 있었더라면 몸과 마음 모두 (그리고 통장 잔고도) 병든 채로 있었을텐데 감사하게도 4월부터 일본으로 건너올 수 있게 되었고 이곳에서 지내면서 표정도 밝아지고 잃었던 자존감도 다시 찾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힘든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과는 좀 다르게 '나도 열심히 해보면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지만 긍정적인 자신감도 들고 그렇다.


이미 여러 기회에 남겼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초빙해주신 Wakui 교수님을 포함해서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関西 커뮤니티의 교수님들(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께 감사한 마음을 남기고 싶다.


일본에 온 뒤 처음 링크드인에 올렸던 글... 벌써 8개월 전이구나...


그런대로 소회를 썼으니 이만 글을 끝내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ㅋ (할 말은 많지만 브런치 글을 쓸 때면 왠지 자기 검열이 생긴다) 그래도 한 해를 정리하는 글인만큼 짧게라도 기록을 조금은 남겨야 할 것 같다.


먼저 생각나는 최근 일 중에서... 특히 격려가 되었던, 기록해두고 싶은 일이라면,, 첫째로, Pro Market 기고했던 내 글이 올해 블로그 글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힌 글 Top 10 중 세 번째에 랭크된 일이 떠오른다. 이미 브런치에서 몇 번 얘기했듯이, 이 글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논문을 요약해서 실었던 글이다. 사실 연구 내용이 한국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는데 (솔직히 '주목'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민망할 정도로 No 관심이었다ㅋ 심지어 이 논문이 게재된 경영법률의 편집부는 오죽 귀찮았는지 오탈자 수정 기회도 주지 않고 미완 원고를 그대로 실어버리기도 했다...;;) 이렇게 나중에 한국 밖에서라도 관심을 받으니, 게다가 예전 대학원생 시절 열심히 공부해가며 읽었던 블로그에서 '많이 읽힌 글' 순위권이라니, 솔직히 좀 좋았다ㅎ


누구도 읽지 않는 잊혀질 뻔했던 글이 이렇게 다시 조명받을 기회를 얻은 것은 교토대학교에서의 발표 기회와 그걸 본 Filippo의 기고 권유 덕분이었는데, 당시에도 정말 고마웠지만, 이렇게 연말에 또 한번 좋은 결과로 듣게 되니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스티글러 센터 링크드인 포스트


두 번째는, 이번 공정거래위원회의 생성형 AI와 경쟁 정책보고서에 지난 2020년 데이터 착취(페이스북 사건) 논문이 인용된 일이다(주 110).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일이고 인용이 되었다고 해서 어떤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뭐랄까... 나름 성의껏 쓴 논문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읽혔다는 게 주는 기쁨이 있다. 교수님들이야 하루에도 몇 번씩 겪는 흔한 일이겠지만 나같은 nobody에게는 흔치 않은 귀한 기쁨이다.


다음으로,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보면... 플랫폼 규제 이야기로 한창 이곳 저곳에서 발표나 토론 참여를 부탁 받았던 일도 떠오른다.


근데 이건, 마찬가지로 감사한 일이긴 했지만... 앞선 경우와는 느낌이 좀 다르다. 일단 당시에 플랫폼이라는 토픽 자체에 질리기도 했고, 게다가 정부(정확히는 대통령실)의 일방통행으로 EU를 모방해서 디지털 플랫폼 경쟁 이슈에 규제로 접근한다는 발상이 너무 싫고 그래선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마냥 좋다기보다는 불만 또는 걱정도 크게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건 조금 개인적인 맥락인데, 당시 플랫폼 이슈로 (유럽이 아닌) 미국이나 호주 등에 기반을 둔 학자나 변호사들과 교류하면서 영어 스트레스를 정말 매우 크게 받고 좌절했던 것도 있었다. 끄응…


그러고보니... 공부를 늦게 시작한 탓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2024년은 아직 넘지 못한 영어의 높은 벽을 크게 느꼈던 한 해이기도 했었다. 2025년에는 일본어도 그렇지만 영어도 큰 도전이 될 것 같다.


ICLE의 Roundtable 전날 리셉션 파티에서...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글을 쓰다보니 벌써 12시가 넘어 2025년이 되었네... 이걸 핑계로 오늘 글은 그냥, 여기서 마무리할까 싶다.


위에서 다 쓰진 않았지만, 예전 가외성 논문(공정거래법의 형사 집행 관련 '가외성' 측면을 검토한 논문)이 ASCOLA Asia 발표에서는 생각지 않게 꽤 좋은 피드백을 받은 것도, 그리고 Alba와 함께 일본 스마트폰 법 관련 글을 쓰면서 그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은 것도, 모두 소소하지만 자신감을 되찾게 된 참 소중하고 감사한 기억들로 떠오른다. 모두 한국에 그대로 있었다면 겪지 못했을 일들임을 잘 알고 있기에 이번 한 해 주어졌던 시간들에 특별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낀다.


늘 그렇듯 2025년에도, 다가올 날들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다.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움이 앞서는 날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지난 한 해 동안 마음이 많이 편해지고 또 연구하고 글을 쓰는 일 자체에서 다시 재미를 느끼고 내적 동기를 찾게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럽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뭐가 되었든, 앞으로 주어지는 인생의 과제들을 잘 해낼 때도 있고 못 해낼 때도 있겠지만, 어쨌든 감사한 2024년을 보내며, 앞으로는 지난 2023년이나 2024년 초반처럼 '과정'의 의미를 잃는 일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겠다고 다짐한다. 이렇게 과정의 의미를 지켜가면서, 2025년, 2026년, 그 이후로도 계속 남들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2024年、じゃあね。そして、ありがとう。:)


항상 친절하신 Tully’s Coffee KU 스탭분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良いお年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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