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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그린 판결의 의문점들

by 이상윤
출처: https://www.evergreen-shipping.us/


요즘은 Kluwer에서 원고를 하나 부탁받은 게 있어서 그 글을 쓰느라 2024년 한국 경쟁법과 정책에 있었던 중요한 일들을 정리해보는 중이다. 그동안 학위 논문 등 이래저래 다른 일들로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기 때문에 2023-2024년 공정거래법은 업데이트가 안되어 있어서 부탁을 받을까 말까 망설였었다. 그런데 어떻게 받았고, 역시나 후회 중이다.


단 두 해 동안, 완전히 손을 놓았던 것도 아니고 그냥 깊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인데, 정말, めちゃくちゃ, 이렇게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 줄이야... 물론 몇 가지 중요한 사건만 골라 쓸 생각이지만, 선별을 위해서 대강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조차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부질없는 기대란 걸 알면서도 가끔은 나도 로펌에서 한다는 그놈의 "코웍"이란 걸 좀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오늘 저녁엔 잠시 지난 2월 있었던 서울고등법원의 에버그린 판결문(2022누43742)을 읽어보았다. 그동안 서울고등법원 일부에서 특이한 판결들이 나온다는 막연한 소문만 듣고 있다가 그중 하나인 제7행정부의 해운담합 판결을 본 것이다.


아래 글은 판결문을 읽어보며 떠올렸던 생각들을 두서 없이 적어본 것이다.


판결문 결론은 한 마디로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는데, 경쟁 정책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결론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뭐... 다른 법과 비교할 때 해운법 제29조 문언이 특이한 것도 사실이고(판결문 19-20면) 연혁적인 부분도 그렇고(16면 이하), 시각에 따라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물론 그 '시각'이 구체적으로 어떤 시각인지, 이론적 사고로서 타당한지는 다른 문제겠지만. 아무튼. 시장 경쟁이 만능은 아니고 유보될 수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해운담합 사건도 위법이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정이 위와 같다 하더라도 현행법의 규정에 반하는 해석을 할 수는 없다. 만일 해운동맹을 원칙적으로 불허하거나 적어도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는 이를 금지하 고자 한다면, 이를 허용하더라도 그에 관한 실체적․절차적 통제를 보다 강화하고자 한다면, 이를 위하여 규제권한을 소관부처가 아닌 경쟁당국에 부여할 필요가 있다면, 해운법 또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여야 할 것이다. (판결문 25면)


다만, 위와 같은 결론에 이르는 논리 전개에 있어서, 다소 의아한 부분들이 없지는 않았다.


다른 분들도 나와 같은 점을 의아해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기선 화물운송산업의 특수성(12-13면)이나 공정거래법상 적용제외(현 제116조; 예전 제58조)의 해석, 해운법 제29조의 "자기완결적" 성격(그럼 공정거래법 제116조는 행위요건적인 건가?)에 관한 논의는 전부 제쳐두더라도, 이렇게 판결문처럼 적용제외와 관할이라는 서로 다른 문제를 섞어버리는 게(conflating) 맞는지, 난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좀 이상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사건에서 대만 해운사 에버그린은 ‘공정거래위원회는 관할이 없기 때문에 처분이 위법하다’고 주장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정당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적용제외(exception)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한다(8면). 그런데 법원은 아래처럼 이 문제를 '동전의 양면'이라면서 하나의 같은 문제로 퉁쳐버린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의 공적(公的) 집행은 원칙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소관이고(구 공정거래법 제54조 제1항 등 참조), 공정거래법의 적용제외란 그 범위 내에서 위와 같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권한을 배제하는 의미를 가지므로, 공정거래법의 적용제외 여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규제권한의 존부는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문제로서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러므로 보건대, 이 사건의 경우 공동행위의 부당성을 논하기에 앞서 만일 피고에게 이를 규제할 권한이 없다면, 즉 공정거래법의 적용이 제외되는 경우라면 나머지 점에 관하여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 할 것이므로 ... (8-9면)


그리고 이러한 전제에서 해운법은 정기선 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 공동행위에 대한 조치 권한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부여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적용이 제외(exempt)되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권한이 없다고 판단한다.


위와 같은 해운법 제29조의 규정을 종합하면,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자들의 경우 원칙적으로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를 하는 것이 허용되나, 그 공동행위에 따라 결정된 운임이 지나치게 높아 부당한 경우 해양수산부장관은 이를 시정하기 위한 조치를 할 수 있고, 위 조치를 한 경우 해양수산부장관은 사후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이를 통보하여야 한다. 즉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는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로서 원칙적으로 공정거래법의 적용이 제외되고, 설령 그 공동행위에 따라 결정된 운임이 필요한 정도를 넘어 지나치게 높아 부당하다 하더라도(달리 말하자면,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로 볼 수 없는 경우에도) 이를 규제할 권한은 해양수산부장관에게 있으므로, 결국 이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구 공정거래법 제58조에 의한 적용제외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규제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다. (15면)


법학은 모르지만, 상식적으로, 약간, 이상하지 않나...


어떤 행위에 대해서 공정거래법의 적용이 제외되면 공정거래위원회의 소관이 아니게 되는 것은 맞다. 그리고 어떤 행위가 다른 법률에 따른 정당한 행위로서 공정거래법의 적용이 제외된다면, 보통은 그 행위는 다른 법률을 소관하는 규제 당국의 관할이 되는 것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역으로, 어떤 행위가 다른 규제 당국의 관할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문제가 자동적으로 경쟁 당국(공정거래위원회)의 관할이 되지 않는다거나 경쟁법(공정거래법)의 적용이 되지 않는 문제가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절대 그렇게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위의 기본 명제가 역의 명제를 그대로 정당화할 순 없으며 역의 명제를 성립시키는 데에는 그에 맞는 또 다른 이유나 정당화가 필요하단 것이다. 그런데 판결문은 너무 대충 '동전의 양면이다' 하고 퉁치고 넘어간다는 느낌이었다.


이 문제는 이후 판결문 곳곳에서 계속해서 나타난다.


예컨대, 17-18면에서는 공정거래법 입법 당시 기관 간 규제권한 조정에 관한 규정이 없었다고 하면서 입법자의 의사는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자들의 공동행위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니라" 해양수산부장관에게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조정이 없었다는 게 왜 공정거래원회의 권한은 없다는 이유가 되는 걸까?) 그리고 19면에서는, 해운법의 다른 조항에선 해양수산부장관이 아닌 관계부처에 권한을 주고 있지만 제29조에선 언급이 없다고 하면서 "그 반대해석상" 제29조에 관해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일반적 규제권한을 부정하는 취지"라고 해석한다. (해운법에 권한 부여 언급이 없다는 게 왜 다른 법에 따라 부여된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을 없다고 보는 근거가 되는 걸까?) 20면에서도 비슷하게, 해운법과 비교될 수 있는 다른 법들에서는 관계부처 장관에게 공동행위에 관한 제재 권한을 주고 있지 않지만 해운법에서는 해양수산부장관에게 권한을 주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다소 간접적이지만) 공정거래위원회에게는 권한이 없다, 공정거래법 적용이 배제된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리고 22면에서는 다음과 같이 쐐기를 박는다.


적법하게 신고되지 않은 공동행위라 하더라도 이를 조사․적발하는 것은 해양수산부장관의 권한이고, 따라서 그러한 공동행위에 문제가 있는 경우 이를 규제하는 것 역시 해양수산부장관의 권한이라 할 것이다.
한편 피고는, 적어도 해양수산부장관이 위와 같은 신고의무 위반을 제대로 적발․규제하지 못한 경우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취지로도 주장하나, 이는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가 해양수산부장관의 사무를 감독 · 시정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바, 특별한 법령상 근거가 없는 한 공정거래위원회에게 위와 같은 권한을 인정할 수는 없다.


흠... 역시 이상하다.


일단 해양수산부장관이 위법한 경쟁제한적 공동행위를 적발하는 데 있어서 제2종 오류(false omission)를 범했을 때 공정거래위원회의 개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것이 왜 판결문의 표현처럼 부정적 의미의 "감독 · 시정"이 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법원의 시각을 따른다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지하고 있지 못하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를 검찰이 먼저 수사하고 의무고발요청제를 이용해서 기소하는 것도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감독 · 시정이 되기 때문에 법원은 검찰의 형사집행도 부정해야 한다. 물론 이 사례는 형사절차는 다르다는 주장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다. 그럼, 좀 더 마일드한 사례로,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하는 영국의 Concurrency 제도는 경쟁 당국과 규제 당국들이 서로의 사무를 감독 · 시정하는 나쁜 제도인가? 물론 나쁘다고 보는 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왜, 어떤 이유에서? 긍정이든 부정이든, 이유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 왜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을 인정"하는 데 왜 다른 특별한 법령상 근거가 필요한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정거래법에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이 있는데, 그렇다면 오히려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을 부정하려면 특별한 법령상 특별한 근거가 필요하다고 봐야하는 것은 아닐까? 고등법원의 입장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이 부분은 판결의 중추가 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따라서 설득력 있는 이유 제시가 필요한 부분인데, 계속 쉽게 넘어가고 있어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법원이 이에 관한 설명을 아예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래처럼, (예측가능성과 법적안정성이라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은 그보다 좀 더 현실적인 이유에서) 행정기관간 싸움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관들의 권한은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만일 이와 달리 본다면 하나의 행위에 관하여 복수의 대등한 규제기관이 존재하는 것이 되고, 이러한 경우에는 양 기관의 입장이 서로 상반되더라도 그러한 충돌을 해결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바, 이는 수범자의 예측가능성을 침해하고 법적안정성을 저해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 이 사건에서 위와 같은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이 사건 공동행위에 대하여 해양수산부장관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음에 반하여, 공정거래위원회는 반드시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바, 이로써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도 해운법상 공동행위에 대하여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권한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24면)


그런데 역시 잘 모르겠다.


'하나의 행위에 관하여 복수의 기관이 존재하면서 상반된 입장을 갖는다'는 게 나쁜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꼭 해양수산부장관의 배타적 권한을 인정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조금 オーバー하자면, 위 부분을 읽으면서 난, 법원이 월권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등법원이 스스로 확인했듯이, 해운법과 공정거래법 어디에도 행정기관의 규제 또는 집행 권한의 범위와 관계를 명시하는 부분은 없다. 입법자는 별 단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둘의 권한 범위는 중첩적일 수도 있고 배타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판결문에서 고등법원은, 별 고민 없이, 기관의 (규제)권한이란 것은 배타적이어야 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논리를 전개한 뒤, 마지막에 갑자기, 권한 중첩의 경우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을 유발 수 있기 때문에 법원처럼 보는 게 맞다고 한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 행정기관 간 권한의 범위와 관계 문제는 사법부의 법 해석 영역이라기보다는 행정부 또는 입법부의 조직, 제도 설계 영역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다른 기관의 배타적 권한을 침범하고 있는 것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니라, 행정부와 입법부의 일에 간섭하고 있는 서울고등법원이 아닐까…?


애초에 법원의 역할인 법 해석에 어울리는 적용제외(exception)의 문제에만 집중하면서, 이 사건 운임담합이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였는지 아니였는지만 따졌다면, 결론이야 어찌되었든, 간명하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법원이 왜 이렇게 외항 '정기 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에 관한 공동행위' 문제에 대한 경쟁법 적용을 면제(exemption)시키면서 굳이 경쟁법의 배제하면서 문제를 이렇게 어렵게 풀려 했는지 모르겠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짐작할 뿐이다.


졸려우니 오늘은 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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