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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서기 Feb 23. 2022

가난했던 어린시절

나의 아버지



직업군인이셨던 친정아버지께서 전역을 하실 무렵, 큰 집으로부터 퇴직금을 한순간에 사기를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어머니 눈치가 워낙 빨랐던 까닭에, 누군가에게  속는다던가, 사기를 당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아버지께서 전역을 일 년 정도 앞둔 어느 날부터 큰집 식구가 할머니를 대동해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버지가 계신 부대를 찾아갔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아버지의 퇴직금을 4형제가 나눠 쓰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며 아버지를 괴롭혔다. 할머니까지 합세하여 협박에 가까운 회유를 했으나, 이 일에 대해 어머니에게 한마디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는 것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몇 달을 고통 받았던 아버지는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홧김에 퇴직금을 큰집으로 넘겨버리고 말았다.

어머니가 이일을 알고 맨발로 큰집을 쳐들어가서는 날마다 문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시며 돈을 내놓으라며 소리를 치셨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는 매우 현명하신 분이었고, 돈을 불리는 지혜가 있으셨던 까닭에 아버지의 퇴직금을 놓고 큰 그림을 그리셨으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고, 급기야는 여러 번 혼절까지 하셨다.

그즈음 나는 갓난아기였기 때문에 나를 제외한 언니와 두 오빠가 엄마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으나 큰집 식구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너무나 가난한 살림살이에 퇴직금이 유일한 탈출구였으나 모든 꿈이 바람처럼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올망졸망 넷이나 되는 어린 자식들이 어머니를 바라보며 울자, 어머니는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고, 우리 집 가세도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반, 화폐개혁이 단행된 일이 있었는데, 가구마다 5만 원 이상은 환전 불가라는 공지가 내려졌다.

이일로 큰집은 그야말로 초비상이 걸렸다. 우리 집의 생명 같은 전 재산을 강탈해간 뒤로 큰아버지와 큰엄마는 우리만 보면 돈을 다 써서 줄 게 없다며 돈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당시 그 사건이 동네에서도 워낙 유명하다 보니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큰아버지는 가진 돈 일부만 환전을 하고는 나머지는 서랍 깊숙이 감춰두었다. 또 한 차례의 화폐개혁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일로 큰엄마는 스트레스를 받아 간암에 걸렸고, 동네에서는 큰어머니가 천벌을 받았다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그때가 내 나이 5살이었는데, 큰 어머니가 임종을 불과 며칠 앞두고 어머니에게 미안했었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돌아가셨다.  큰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제일 아래 서랍 안쪽 깊숙이에서 꼬깃꼬깃한 돈뭉치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큰어머니의 원대로 한복 몇 가지와 같이 태워서 하늘로 올렸다.      

아버지께서 전역을 하신 후 두 분은 세상 말로 가랑이 찢어지듯 먹고사는 일이 매달렸다.

동네 시장한가운데서 찐빵과 만두를 만들어 파셨었는데, 솜씨가 좋았던지 단골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악착같이 돈을 버셨고, 내가 초등학교를 막 입학할 무렵 우리는 새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토록 원하던 집이 생긴 것이다. 셋방살이를 살면서 모진 수모를 당하는 일이 많았었는데, 어린 나였지만 너무나 기뻤고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하늘이라도 날 거 같았다.     


전역후


고등학교 2학년쯤에는 치킨가게를 했었는데, 어느 날 가게로 웬 허름한 차림의 남자가 아버지를 찾아왔다.

뼈만 앙상히 남은 몰골이 마치 노숙자를 연상하게 만들었는데, 그 남자가 아버지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 상사, 오랜만입니다, 내가 많이 변했죠? 하긴 세월이 얼만데…."    

아버지는 한참을 쳐다보다가 생각이 났는지 조금은 충격을 받는 눈치였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부대에서 대령으로 근무하면서 오랫동안 아버지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었다. 돈을 쓸어 모으다 시피 했었고,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는 근거 있는 소문이 있었는데, 행색을 보니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듯 보였다.

그 남자는 대령으로 보직하면서 돈을 물론 값나가는 물품들을 뒤로 빼돌리는 일이 많았다.

하루는 우연히 그 일을 아버지가 목격을 하게 되었고, 그 일이 알려질 것을 우려했던 나머지 틈나는 대로 아버지에게 몰래 봉투를 내밀었다.

아버지가 절대 받지 않자, 켕겼는지 그 사람이 부대 전체에 아버지에 대해 온갖 악담은 물론 험담을 퍼뜨렸다. 당시 아버지는 억울한 헛소문으로 인해 바보라는 소문이 퍼졌고, 급기야는 정상이 아니라는 소문마저 돌았다. 그 일로 인해 아버지는 큰 상처를 받았으나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셨었다.

아버지께서 전역을 하시면서 그 사람과는 완전히 멀어졌었는데, 십여 년 만에 아버지를 찾아온 것이다.  그 남자는 아버지를 끌어안고는 한참을 울었다.

"당시 이 상사는 참 이상한 사람이었지요. 돈은 물론 부대 내의 물품은 그 어느 것도 하나 손을 대지 않는 이상사가 내 눈엔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소. 그랬는데 결국 이상사가 옳았어요. 그렇게 정직하더니 이렇게 성공했네 그려. 난 많은 돈을 모았지만 사기를 당해 가진 거 다 잃고, 이혼도 당했고, 급기야는 몸에 병 얻었어요. 천벌을 받은 거지. 난 얼마 못 살아요. 죽기 전에 꼭 잘못을 빌고 싶었소. 나를 용서하시오."

그렇게 며칠을 아버지를 찾아왔고, 올 때마다 눈이 퉁퉁 부은 체 돌아갔다. 그게 그 사람을 본 마지막 모습이었고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  


한참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 이 일은 내게 있어서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믿음도 없던 내게 이일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성경의 법칙을 일깨워준 사건이 되었다. 그 일로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되었고, 무뚝뚝한 아버지가 새삼 멋져보였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막내인 나를 평생 단 한 번도 안아주신 적도 없었고 칭찬을 해주신 적도 없지만 그 나름대로의 사랑을 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에는 곡선만 있는 것이 아닌, 색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지만 그 역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법이 다를 뿐 사랑은 사랑인 것이다.

부모님의 나이가 되고서야 그 진심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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